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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사/힘찬교회

2018.05.03 20:17

관리자 조회 수:16

격려사/힘찬교회 설립 9주년, 청소년밥차 3주년 감사 예배 /  안수집사 임직식

2018.04.29(주일) 오후 5시

 

먼저, 담임 임태석 목사님과 힘찬교회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벌써, 힘찬교회 창립 9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4월 26일 주일에 힘찬 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에베소서 6:10-13절 말씀을 본문 삼아 <그 힘찬 능력으로>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

이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탄식입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앗수르의 18만 5천 군사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살 길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위기, 민족 멸절의 위기에서 히스기야는 그렇게 탄식했습니다.

 

이런 해산할 힘도 없는 영혼들의 탄식이 지금 이 산천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 위기의 시대에 힘찬 교회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그렇습니다. 유다의 위기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37:36) 

 

교회가 이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낼, 최후의 보루입니다. 힘찬교회가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세상이 악에 대해 무력해도, 힘찬 교회만은 오직 그의 영으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3:6-7절)”는 말씀을 이루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감사하게도, 오늘 여호와의 사자-힘찬 교회는 해산하는 아름다운 수고와 영광스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해산 중의 해산, 임직자를 세우는 이 귀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오늘의 임직식은 임태석 목사가 앞장 선 힘찬교회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한 영적 증거입니다. 

 

무엇보다도 힘찬교회가 양떼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고 하는 단적인 증거는, 오늘로 3주년을 맞는 청소년 밥차 운영이 바로 그것입니다. 힘찬교회는 그 어떤 규모 있는 교회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힘들고 어려운 사역을 온 성도들이 합심협력하여 감당해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개교회주의가 팽배한 이기적인 시대에 힘찬교회는 드높은 영적 비전으로, 개교회를 넘어 지역사회를 영육간에 섬기고 있습니다. 이는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는, 세상의 빛인 복음을 드높이는 일입니다. 세상에 밥으로 오신 예수. 예수를 먹이고, 마시게 하는 광야의 기적을 창조적 소수 힘찬교회가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로 칭송하기는 쉽지만, 매주 1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밥을 해 준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숭고한 사역입니다. 임태석 목사네 힘찬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주께서 맡기신 이 착한 일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룰 줄 확신합니다.

 

오늘 9주년을 넘어, 앞으로 힘찬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슴 벅찬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이후에도 주께서 공급하시는 그 힘찬 능력으로 태산이라도 평지되는 기적을 힘찬교회가 반드시 이룰줄 믿습니다. 이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격려합니다.

 

둘, 

오늘 임직 받은 서도원 안수 집사님께 드리는 격려입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러주신 심판의 표준과 근거는,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이 기준을 눈치 빠르고, 영리하고, 실리에 눈먼 교인들이 적잖은 작금 교회 현실에 적용해 보자면, 작은 교회에 임직자로 헌신하는 것이 바로 상급 주실 하나님께 큰 상 받을 일입니다. 

 

2.

임태석 목사님은 무서운 게 없는 분입니다. 못하는 것도 없는 분입니다. 그 에너지가 수소폭탄만 이상 갑니다. 그 창조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

바울은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는 자신의 빛나는 영적 전투에 늘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접두사 syn('함께‘라는 뜻)으로 시작하는 복합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함께 한 사람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제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함께하는 일꾼이라는 의미의 동역자, synergos였습니다. 그가 목숨을 건 그 치열한 영적 전장(戰場)에는 외로움으로 옥쇄하지 않을 만큼의 전우들이 늘 함께 했다고 그는 술회했습니다. 

 

한때 극렬한 복음의 핍박자가 그 임무수행을 위해 나섰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 극적으로 예수의 추종자가 된 사건은 그를 일순 외톨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그는 일순간 옛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나니아와 다메섹의 제자들(행9:10,23-25,행22:12-16)이 그와 함께 해 줬습니다. 복음에는 함께하는 동역자가 늘 수반 됩니다. 그 후 그는 고향 다소 주변에서 10여 년간 선교사로 일하던 중 구브로에서 온 레위 자손 바나바(행11:24-26)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바나바와 함께 역사적인 전도여행을 떠나는 행운을 얻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도여행을 통해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한 지체 실라(실루아노)(행15:40), 루스드라의 디모데(롬16:1-3), 사랑받는 의사요 문필가인 누가(몬24), 안디옥의 디도(고후8:23), 고린도의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롬16:3), 바나바의 사촌 마가(골4:10;몬24) 등이 그의 사명의 길의 동역자들이었다고 그는 전합니다. 

 

또, 갇힌 자되었던 바울은 그와 '함께 갇힌 자’(synaichmalotos)된(단어의 원 뜻은 함께 포로된 자) 동역자들이 그에게 있었다고 전합니다. 데살로니가 출신의 마게도냐인 크리스천 아리스다고(골4:10), 그는 로마에 감금되었었거나, 아니면 전에 에베소나 가이샤라에 같이 감금된 적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함께 갇힌 자’라고 불리우는 이는 골로새의 에바브라(몬23)입니다. 이 에바브라는 리쿠스 계곡의 전도자였고, 그곳에 세워진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라오디게아교회(골4:13)의 목회자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느라 그 교회들을 찾아다닐 수 없게 된 때에도 언제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분명 바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감옥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16:7), 그리고 로마감옥의 골로새의 오네시모-그는 바울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10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멍에를 같이한(synathleo) 여인들에 대해 말합니다. 협력자들입니다. 빌4장 3-4절에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보호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겐그레아의 여집사 뵈뵈였습니다.

 

바울은 아킵보(골4:17)를 가리켜 ‘함께 군사된 자’(synstratiote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그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된 자’(빌2:25)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함께 군사 된 자’인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골로새서 1장 7절에서는 ‘함께 종 된 자’(syndoulos)로 부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 모은 헌금을 에바브로디도에게 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위임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그 헌금을 바울에게 전하고, 옥중의 바울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들의 사명을 대신 수행하다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바울은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병든 에바브로디도의 형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안타까워하던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자신 곁에 두고 팠던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 성도 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그리워하면서도, 바울곁에 있어 주길 원했고, 바울은 그 필요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교회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여 빌립보 교회로 자신이 돌려보낸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곁에 있지 않고 왜 돌아왔느냐 추궁당할까 봐, 에바브로디도가 그동안 자신에게 베푼 온정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사람이야말로 귀한 영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이상, 바울과 함께 했던 이들의 공통점은  

Paul First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Jesus First였던 바울과 동역했던 이들은 Paul First 삼았습니다. 오늘 힘찬교회 Jesus First 임태석 목사님과 동역하는 서도원 안수집사 또한 임태석 First를 주창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함께한 성도들도 함께 외쳐 봅시다.  

 

임태석 First!

 

안수 집사(임직자)의 모델 

에바브로디도. 그는 목회자와 교회를 잇는 가교였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동시에 돕고, 소통시키는 아픈 자였습니다. 

임직자란, 에바브로디도에게서 발견한 견우와 직녀를 잇는 오작교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잇는 사랑의 가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형제요, 동역자인 함께 군사 된 자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주경가 F.F.부르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2장 전반부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에바브로디도 안에서 아주 귀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1-5절.

 

이 마음이 성경이 말하는 함께 군사 된 자의 마음입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서로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적 전장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오늘 최초로 홀로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은 서도원 안수집사의 사명이 큽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임태석 목사의 빛나는 영적 전투에 늘 함께하기로 한, 오늘 아름다운 결단을 격려합니다. 목회자와 교회를 잇는 가교가 되기로 하심을 격려합니다. 그 사랑의 가교되어 머지않은 장래에 힘찬교회 장로로 장립되는 영광을 반드시 누리길 격려하며, 기원합니다.

 

먼저, 담임 임태석 목사님과 힘찬교회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벌써, 힘찬교회 창립 9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4월 26일 주일에 힘찬 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에베소서 6:10-13절 말씀을 본문 삼아 <그 힘찬 능력으로>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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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

이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탄식입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앗수르의 18만 5천 군사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살 길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위기, 민족 멸절의 위기에서 히스기야는 그렇게 탄식했습니다.

 

이런 해산할 힘도 없는 영혼들의 탄식이 지금 이 산천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 위기의 시대에 힘찬 교회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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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유다의 위기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37:36) 

 

교회가 이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낼, 최후의 보루입니다. 힘찬교회가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세상이 악에 대해 무력해도, 힘찬 교회만은 오직 그의 영으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3:6-7절)”는 말씀을 이루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감사하게도, 오늘 여호와의 사자-힘찬 교회는 해산하는 아름다운 수고와 영광스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해산 중의 해산, 임직자를 세우는 이 귀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오늘의 임직식은 임태석 목사가 앞장 선 힘찬교회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한 영적 증거입니다. 

 

무엇보다도 힘찬교회가 양떼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고 하는 단적인 증거는, 오늘로 3주년을 맞는 청소년 밥차 운영이 바로 그것입니다. 힘찬교회는 그 어떤 규모 있는 교회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힘들고 어려운 사역을 온 성도들이 합심협력하여 감당해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개교회주의가 팽배한 이기적인 시대에 힘찬교회는 드높은 영적 비전으로, 개교회를 넘어 지역사회를 영육간에 섬기고 있습니다. 이는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는, 세상의 빛인 복음을 드높이는 일입니다. 세상에 밥으로 오신 예수. 예수를 먹이고, 마시게 하는 광야의 기적을 창조적 소수 힘찬교회가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로 칭송하기는 쉽지만, 매주 1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밥을 해 준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숭고한 사역입니다. 임태석 목사네 힘찬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주께서 맡기신 이 착한 일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룰 줄 확신합니다.

 

오늘 9주년을 넘어, 앞으로 힘찬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슴 벅찬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이후에도 주께서 공급하시는 그 힘찬 능력으로 태산이라도 평지되는 기적을 힘찬교회가 반드시 이룰줄 믿습니다. 이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격려합니다.

 

둘, 

오늘 임직 받은 서도원 안수 집사님께 드리는 격려입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러주신 심판의 표준과 근거는,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이 기준을 눈치 빠르고, 영리하고, 실리에 눈먼 교인들이 적잖은 작금 교회 현실에 적용해 보자면, 작은 교회에 임직자로 헌신하는 것이 바로 상급 주실 하나님께 큰 상 받을 일입니다. 

 

2.

임태석 목사님은 무서운 게 없는 분입니다. 못하는 것도 없는 분입니다. 그 에너지가 수소폭탄만 이상 갑니다. 그 창조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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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는 자신의 빛나는 영적 전투에 늘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접두사 syn('함께‘라는 뜻)으로 시작하는 복합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함께 한 사람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제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함께하는 일꾼이라는 의미의 동역자, synergos였습니다. 그가 목숨을 건 그 치열한 영적 전장(戰場)에는 외로움으로 옥쇄하지 않을 만큼의 전우들이 늘 함께 했다고 그는 술회했습니다. 

 

한때 극렬한 복음의 핍박자가 그 임무수행을 위해 나섰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 극적으로 예수의 추종자가 된 사건은 그를 일순 외톨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그는 일순간 옛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나니아와 다메섹의 제자들(행9:10,23-25,행22:12-16)이 그와 함께 해 줬습니다. 복음에는 함께하는 동역자가 늘 수반 됩니다. 그 후 그는 고향 다소 주변에서 10여 년간 선교사로 일하던 중 구브로에서 온 레위 자손 바나바(행11:24-26)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바나바와 함께 역사적인 전도여행을 떠나는 행운을 얻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도여행을 통해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한 지체 실라(실루아노)(행15:40), 루스드라의 디모데(롬16:1-3), 사랑받는 의사요 문필가인 누가(몬24), 안디옥의 디도(고후8:23), 고린도의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롬16:3), 바나바의 사촌 마가(골4:10;몬24) 등이 그의 사명의 길의 동역자들이었다고 그는 전합니다. 

 

또, 갇힌 자되었던 바울은 그와 '함께 갇힌 자’(synaichmalotos)된(단어의 원 뜻은 함께 포로된 자) 동역자들이 그에게 있었다고 전합니다. 데살로니가 출신의 마게도냐인 크리스천 아리스다고(골4:10), 그는 로마에 감금되었었거나, 아니면 전에 에베소나 가이샤라에 같이 감금된 적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함께 갇힌 자’라고 불리우는 이는 골로새의 에바브라(몬23)입니다. 이 에바브라는 리쿠스 계곡의 전도자였고, 그곳에 세워진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라오디게아교회(골4:13)의 목회자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느라 그 교회들을 찾아다닐 수 없게 된 때에도 언제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분명 바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감옥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16:7), 그리고 로마감옥의 골로새의 오네시모-그는 바울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10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멍에를 같이한(synathleo) 여인들에 대해 말합니다. 협력자들입니다. 빌4장 3-4절에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보호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겐그레아의 여집사 뵈뵈였습니다.

 

바울은 아킵보(골4:17)를 가리켜 ‘함께 군사된 자’(synstratiote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그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된 자’(빌2:25)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함께 군사 된 자’인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골로새서 1장 7절에서는 ‘함께 종 된 자’(syndoulos)로 부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 모은 헌금을 에바브로디도에게 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위임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그 헌금을 바울에게 전하고, 옥중의 바울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들의 사명을 대신 수행하다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바울은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병든 에바브로디도의 형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안타까워하던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자신 곁에 두고 팠던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 성도 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그리워하면서도, 바울곁에 있어 주길 원했고, 바울은 그 필요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교회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여 빌립보 교회로 자신이 돌려보낸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곁에 있지 않고 왜 돌아왔느냐 추궁당할까 봐, 에바브로디도가 그동안 자신에게 베푼 온정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사람이야말로 귀한 영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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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바울과 함께 했던 이들의 공통점은  

Paul First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Jesus First였던 바울과 동역했던 이들은 Paul First 삼았습니다. 오늘 힘찬교회 Jesus First 임태석 목사님과 동역하는 서도원 안수집사 또한 임태석 First를 주창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함께한 성도들도 함께 외쳐 봅시다.  

 

임태석 First!

 

안수 집사(임직자)의 모델 

에바브로디도. 그는 목회자와 교회를 잇는 가교였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동시에 돕고, 소통시키는 아픈 자였습니다. 

임직자란, 에바브로디도에게서 발견한 견우와 직녀를 잇는 오작교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잇는 사랑의 가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형제요, 동역자인 함께 군사 된 자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주경가 F.F.부르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2장 전반부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에바브로디도 안에서 아주 귀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1-5절.

 

이 마음이 성경이 말하는 함께 군사 된 자의 마음입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서로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적 전장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오늘 최초로 홀로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은 서도원 안수집사의 사명이 큽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임태석 목사의 빛나는 영적 전투에 늘 함께하기로 한, 오늘 아름다운 결단을 격려합니다. 목회자와 교회를 잇는 가교가 되기로 하심을 격려합니다. 그 사랑의 가교되어 머지않은 장래에 힘찬교회 장로로 장립되는 영광을 반드시 누리길 격려하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