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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4 : 설교 화목의 공식

2020.02.16 09:20

관리자 조회 수:34

경건회 설교 (제75회기 서울중앙지방회 정기지방회 2020.02.11(화))

제목 : 화목의 공식
본문 : 로마서 3장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3장 25절)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렸던 의사 리원양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그의 입을 막아버림으로, 우한은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가 발한 진실에 당국자들이 귀를 기울였다면, 이 재앙을 일찍 막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나는 이 자리에서,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리원양처럼 우리 신앙공동체의 실상에 대해 호루라기를 불고자 합니다.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흑암이 가득합니다. (개구리, 이, 파리, 가축 돌림병, 악성 종기, 우박, 메뚜기, 장자의 죽음 등등) 갖은 재앙을 자초한 애굽 왕 파라오의 거역이 보입니다.

성경에 난해 구절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 중 , 하나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라는 표현입니다.
괴연 하나님께서 그러셨을까요?

출애굽기 4장부터 14장 사이에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다, 강퍅하게 하다’라는 표현이 20번이나 나옵니다. 그렇다면, 누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을까요? 스무 번이나 거듭해서 나오는 ‘강퍅’이라는 표현 중, 먼저 열 번까지는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그 나중 열 번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다.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나눌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단지, 선악과를 두심으로, 자유 의지를 지닌 사람에게 적어도, 그 자유 의지로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음을 알게 하시어, 자유 의지를 선용하는 사람이 되길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왕)은 수 차례 거듭 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는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하는 방향으로 자유 의지를 열 번이나 악용했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듯, 은혜를 아는 은혜로 은혜를 누리듯, 자유 의지를 선용하는 사람은 큰 믿음과 더한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에 반대, 거부에 거부, 불신에 불신, 불순종에 불순종을 더해 가는 방향으로 자유 의지를 악용하면, 결국 그 사람을 사탄의 종이 되고 맙니다. 바로가 거듭거듭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먹자,’ 반복의 기적인 학습 효과로 바로는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가 스스로 되어 버렸고, 하나님께서도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시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누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는가?>
정답 : 바로 자신입니다.

우리는 창조주께 받은 자유 의지를 선용함으로, 창조주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흑역사는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선용하지 않고 악용하는데 더 열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 유다 지파는 때마다 일마다 자기 희생과 헌신에 앞장 서 다윗과 메시아를 배출한 지파의 조상이 되었지만, 악행만 일삼던 시므온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폭력의 도구로 사용 되어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우리 지방회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불법과 폭력과 음해공작이 난무하는 지방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지방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검찰 지방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입에 발린 화목을 운운합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역설적으로 불화덩어리라는 말입니다.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리원양을 가두어 입막듯으려는 듯 갖은 모략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온오프라인 상에서 거짓부렁과 음해살해 공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 해 연예인 구하라 양이 자살을 했습니다. 악플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연예인에 관한 기사에 댓글을 붙일 수 없도록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런 터무니없이 사람 죽이는 익명의 음해살해공작이 난무했습니다. 그 음해 문서로 선거에 악용했고, 자신의 눈의 들보를 감추는데 사용했습니다. 복음적 상상력을 가동해도 부족한 목회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그렇게 더럽게 배설했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악플을 달고 또 달다가 악귀가 되어버린 형국입니다. 글이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고는, 그런 범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음해살해 문서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남을 음해살해공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것도 익명으로, 추적이 쉽지 않은 해외아이피로, 선한 도구를 악마의 발톱으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글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만큼 많은 글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이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내가 그런 류의 악마의 글에 대꾸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쓰레기 광장에 글을 쓰지 않습니다. 익명으로도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류의 음해살해 글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손가락 지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에도 지문이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동물주의 7원칙을 박아놓았습니다.

첫번째,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두번째,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친구다.
등등.

네 다리는 옳고, 두 다리는 나쁘다. 이런 정의에 새들이 발끈합니다.

그러자 이런 해석을 내놓습니다.
새들의 날개는 인간의 손과 같이 조작하는 기관이 아니라 추진하는 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날개는 다리로 간주한다. 인간의 특징은 손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도구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 1장 28절)

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롬1:29) 공동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불화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불화덩어리인 우리 신앙공동체를 화목하게 하는 성경적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나,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사사기 19장에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의 베냐민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합니다. 이에 분개한 레위인이 첩의 시신을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보냅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총회로 소집합니다. 미스바로 모인 이들 중 칼을 빼는 보병이 사십 만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에게 이스라엘 중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 행악자들을 넘겨달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를 회개는커녕 자기반성이나 피해자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영적 이스라엘에 맞섰습니다. 전형적인 집단 소시오패스입니다. 그 악인들의 모략이 일시적으로 승리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동맹군이 적잖은 피해를 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올라가서 치라(사사기 20:23,28)” 명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베냐민 지파를 진멸해 버립니다.

그후, 도망쳐서 림몬 바위 숨어 있던 베냐민 지파 500명을 하나님의 긍휼로 이스라엘이 그 신부를 안겨줌으로 베냐민 지파가 되살아납니다. 사도 바울이 베냐민 지파의 후손입니다.

불의에 맞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공동체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사탄의 궤계를 쳐부수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명하십니다. 마귀를 대적하라(야고보서4:7)

방관하지 맙시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 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죄는 집합적인 죄(collective sin)입니다. 일 개인의 죄에 대해 이스라엘은 집단으로 움직여 그 악을 스스로 제거했습니다. 잘못 채운 첫 단추를 바로 채웁시다. 이에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한 마음으로 마귀를 대적합시다.

작금 우리가 당하는 이 재앙은 하나님께서 무능한 분이라거나 하나님께서 내게서 얼굴을 돌리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명백하게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산 증거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강력으로 이 견고한 사탄의 진을 우리는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신앙공동체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4,5)

둘, 화목을 이루려면, 화목의 공식을 성경에서 배워서,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화목의 공식을 우리는 배우고, 익혀서, 실천해야 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3장 25절)

우리는 입에 붙은 종교적 말버릇으로 화목 운운합니다.
성경은 위와 같이 화목의 과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실재 상황으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인간과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의 방식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화목의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 제물로 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 대신에 독생자 아들을 제물로 삼으셔서 단 한 번에 영원한 화목 제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공의로 이루신 사랑의 표지가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구현을 위해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공의를 몸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화목 제물로 삼으신 것은 단순히 그의 사랑의 결과만이 아닙니다.( 요 3:16)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방회의 화목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정기지방회 회무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지방회 행정은, 목회가 아닙니다. 지교회가 평안하게 목회해 나아갈 수 있도록. 공명정대한 행정과 투명한 재정집행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회무입니다. 우리 지방회가 마피아식 음해살해 공작을 버젓이 자행하는 세력들을 단호하게 척결해야 합니다. 지방회의 화목은 바로 공명정대한 행정과 투명한 재정집행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규례에 있어서, 화목제가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다음, 맨 마지막 드리는 제사가 화목제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속죄제, 속건제 없는 화목제는 없습니다. 물건 훔친 것 토해내고, 음해살해, 무고한 것 회개한 다음에 화목제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화목의 공식>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봅니다.

우리는 곧잘 요셉의 용서를 쉽게 화목의 공식으로 다음 구절만 떼내어 내밉니다.

하지만 이제는 염려하지 마세요. 저를 이 곳에 판 일로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으로 보내셔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까요.(창45:5)

이 구절만 보면, 요셉이 하해와 같은 도량으로 형들을 하나님의 섭리만 내세워 무조건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를 착각하게 합니다.

요셉이 이 단계에 이른 화목의 공식, 그 과정이라는 성경의 맥락을 잘 살펴야 이 본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한 구절만 떼내어 요셉의 용서를 말해서는 안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게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 본 후, 요셉의 용서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이 구절에 이르기까지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얼마만큼 시험했는가도 살펴야 합니다. 형들의 자기 반성의 진정성을 확인한 후, 그는 형들을 품습니다.

오늘 정기지방회가 화목을 이루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하고, 자기 아들을 내어주기 까지 공의로 그 사랑을 이룬 하나님의 화목의 공식대로 행정을 해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요한일서는 이렇게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한일서2장1~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공의를 완성하신 그 사랑을 우리도 행해야 합니다.
신앙공동체의 회생과 화목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화목의 공식>을 준행하는
서울중앙지방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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