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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8): "각종 방언 말함의 은사" (행 2:1-4)

2009.08.12 02:47

윤사무엘 조회 수:3565 추천:54

                             “각종 방언 말함의 은사”
                   (The Gift of divers kinds of tongues)
                               
감람원 장로교회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창 11:1-9, 행 2:1-4. 고전 12:7-11
요    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4)
주    제: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열심히 선교하자
교 독 문:  14번(시 46편),  예배의 부름: 행 19:1-4,  예전색: 녹색
찬    송:  44장(개회),  172장,  173장(설교후),  174장(축도전)

오늘은 성령님의 은사 중 여덟 번째 은사인 각종 방언 말함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 성도들이 모여 그날도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님 승천하신지 열흘이 지났고, 저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님의 부탁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00문도 중 380명은 이미 포기하고 제 갈 길로 나갔지만 120명은 이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3대 순례 절기인 칠칠절(Shavuot)을 맞이하여 세계에 흩어진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던 중 갑자기 예수 믿는 이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듣고, 특히 자기들이 온 지역의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수천명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행 2:2-5)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 2:6-13)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선교를 위해 방언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방언의 은사도 주십니다.

 

방언이란 그저 언어, 말, 혀라는 뜻입니다. 노아 홍수 후 노아의 세 아들 야벳, 함, 셈으로부터 자손이 온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기록하면서 세 아들들의 후손을 언급하면서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 10:5)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 대로이었더라” (창 10:20)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창 10:31)라고 함으로 각 아들에서 출생된 이들이 방언, 지방, 종족, 나라별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구음과 언어는 하나여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며, 그저 각 지역별 사투리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바벨탑 기사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창 11:1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And the whole earth was of one language, and of one speech.) 이들이 모여 시날 평지에서 벽돌을 굽고 성과 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의 목적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홍수가 왜 일어났었는지를 모르는 세대입니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습니다. (창 11:5)  인간이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닿을 수 없습니다. 에덴에서 뱀이 유혹한 것을 기억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벨탑을 쌓는 인생들은 에덴에서 왜 추방되었는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입니다. 신앙의 전수가 되지 않으면, 교육이 없으면 이런 실수가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매일 조금씩 놓아지는 성과 대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내려 오셔서 심판의 내용이 언어의 혼잡 즉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막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창 11:6-8) 바벨이란 이름도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9) 는 뜻입니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는 하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 가운데 각종 방언을 말할 수 있게 하심은 각종 방언의 벽을 허물어서 복음의 진리를 누구다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나 의사소통이 됩니다. 지금도 우리는 얼굴 표정, 제스처, 눈빛 등 비언어적 말(non-verbal language)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습니까? 야구 경기 때 타자나 투수나 포수는 모두 수화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축구 경기시 감독이 많은 수화로 작전을 지시합니다. 또한 음악이나 예술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소리와 그림, 춤과 동작으로 무슨 뜻과 느낌을 전달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추상명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가령, 사랑, 진리, 철학, 이념 등에 대해 말로 다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천국의 신비한 것을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1차 선교여행시 소아시아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을 때(행 14:19) 낙원에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이라고 했습니다(고후 12:4) 너무나 감동이 되고 인간의 언어의 장벽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9:15, Thanks be unto God for his uspeakable gift.) 고 합니다. 방언도 이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되지 않으니 그저 영적인 언어로 나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 5:9-10)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에 대한 질문이 왔을 때 바울 사도가 답변한 것이 고린도전서 12장과ㅣ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신 은사 중 방언이 대표적입니다. 예언은 공동체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1-7)

 

은사를 구하되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권면하십니다.(고전 14: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함으로 방언속에 사랑이 빠지면 시끄러운 소리 밖에 되지 않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기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고전 14:4). 교회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방언을 통역해야 하나(고전 14:5) 많은 방언들이 수치스런 죄의 고백들이 나오기 때문에 통변의 은사가 있는 분은 개인적인 일은 절대 공개해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들보다 방언의 은사를 받아 방언 기도를 잘 하였지만(고전 14:18) 그는 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는 입장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고전 14:13). 단지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있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입니다 (고전 14:22).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언이어야 합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하면 됩니다 (고전 14:26-28)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야 합니다 (고전 14:40). 초대교회에 모든 성도들에게 방언을 주신 목적은 전도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님의 역사가 임하여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면 먼저 매우 기쁩니다. 죄를 철저히 고백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고 입술이 둔하여 지는 듯 하더니 목이 막히고 그리고는 주체할 수 없이 저도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쁨이 넘치고 마음에 평화가 오는지 하늘을 날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릅니다. 그 후 저는 성령의 임재를 등 뒤에서 따스한 느낌이 있으며 목이 막혀 구토가 날 듯 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 후 주님께서는 제게 병고침의 은사,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찬양의 은사도 주셔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섬김의 은사로 주셔서 사심 없이 봉사하는 자비량 선교에 수년간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할 때마다 방언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있어서 그런지 늘 방언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며 기도하면 방언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 오래 하지는 않습니다. 방언 기도하라고 하면 바로 방언을 하시는 분들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학의 은사를 주셔서 몇 가지 언어를 읽고 쓰고 말하기도 합니다. 학문을 위한 언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제게 방언의 은사를 계속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영어 잘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일진데 이를 위해 늘 기도를 합니다. 영어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기도합니다. 남미 선교하면서 스페인어를 잘 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이 시작된 것은 아볼로가 전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과 세례만 알던 저들이 말씀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 사도가 안수를 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 정도 서원을 시작했습니다(행 19:5-7)

 

성령이 임하시면 반드시 방언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으니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도 당신은 평생 방언 기도를 한번도 해 보지 못하셨다고 고백하신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한 목사님께서는 말씀은 은사와 지혜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봉사의 은사를 누구보다 많이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이에게 주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원하십니까? 구하십시다. 베드로가 수 천 명의 군중들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결신의 시간에 나오는 것을 보고 말하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 2:38-39) 하신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 각종 방언을 말함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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