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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9):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 (고전 12:10-11)

2009.08.16 22:48

윤사무엘 조회 수:3608 추천:51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

              (The Gift of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감람원 장로교회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단 5:25-29, 행 2:1-4. 고전 12:7-11

요    절: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2:10-11)

주    제: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통변의 은사도 받아 바른 뜻을 바르게 알고 전하자

교 독 문:  14번(시 46편),  예배의 부름: 행 19:1-4,  예전색: 녹색

찬    송:  44장(개회),  172장,  173장(설교후),  174장(축도전)


오늘은 성령님의 은사 중 아홉 번째 은사인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핀 대로 성령의 은사 중 하나가 방언인데, 통변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자신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합니다. 대략 짐작은 되어도 정확한 뜻을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통변의 은사가 있는 분에게 가서 통역을 받든가, 자신이 통변의 은사를 간구하여 받아 방언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말씀이라도 언어가 틀려서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언어로 통하지 못해도 수화(sign language)나 부호(signal) 같은 것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NASA에는 우주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소리나 부호를 해독하는데 예산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이를 듣지 못해서 지나가는 경우가 많으며, 꿈으로나 환상으로 말씀하시는데 이를 해석하지 못하면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방언도 반드시 통변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언은 영적으로 바로 그 뜻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 방언은 통변이 없으면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방언기도를 통변 은사가 있으신 분에게 가서 그 해석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고전12:10에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할 때 ‘통역’이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hermeneia'인데 영어로는 interpretation 혹 translation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의 내용을 풀어 설명한다’는 의미입니다. 번역이나 통역은 두가지로 나눕니다. 직역(문자적 통역 literal interpretation)과 의역 (free translation, 그 뜻을 충분히 살려 쉽게 풀어 통역함)으로 나눕니다. 법정에 가거나 공문을 번역할 때는 직역을 요구합니다. 설교나 강의, 일상대화에서는 의역을 쓰기도 합니다. 방언 통변은 직역을 뛰어넘어 역동적인 동의어로 전하는 메시지(dynamic translated message) 자체입니다. 방언의 통변은 직관적으로 주어지는 느낌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한마디의 방언이 열 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고, 열 마디의 방언이 한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방언을 번역하면 통변자가 알지 못하는 내용이나 방언을 하는 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방언은 죄 고백을 시키며, 드린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며, 예언의 내용이 담긴 경우도 있으며, 신유의 능력이 있기도 합니다. 통변을 통한 교육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19)


이런 방언을 통변하는 은사는 성령을 통한 초자연적인 계시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미 '방언'으로 말하여진 내용을, 그에 대한 역동적인 동의어를 사용하여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능한 언어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통변자는 이 방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통변은 그 순간 성령님으로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때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며, 그 순간이 지나면 통변자도 기억하지 못할 수가 많습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방언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니 늘 감사하고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4장 17절에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네게 있는 것들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에게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1장 17절에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 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모든 은사를 기억하십시다. 각각 은사를 받은 것을 먼저 기억하십시다. 통변의 은사도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신유의 은사, 능력의 은사,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처럼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 중 소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였습니다. 바울의 말씀 전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게 되었습니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Jupiter)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Mercurius)라 했습니다.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the priest of Jupiter)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 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행 14:8-18) 바울이 허메(Hermes, Mercurius)라 추대 받을 만큼 그에게 통변의 은사가 있음을 이방인들도 알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겸손했으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고 전도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이를 하나님의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데, 선교하는데, 전도하는데, 신앙 교육하는데, 봉사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요셉의 해몽도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왔습니다. 그가 꾼 두 가지 꿈은 해석을 하지 못했지만 훗날 그가 이집트의 총리로 있을 때 가나안으로부터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와 그 앞에 부복을 할 때 그 해석을 받았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장관)의 꿈 해몽, 바로 왕의 두 가지 꿈 해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통변의 은사였습니다. 다니엘도 느부갓네살이 꿈의 내용을 조차 기억하지 못한 것을 내용과 해석을 전해준 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언한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을 이어 통치한 벨사살 왕이 귀인 1000명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술을 마실 때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하였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습니다 (단 5:2-4)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겠습니까?

이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고서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 뜻은 알지 못해도 영적으로 느끼는 것은 있었습니다.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였습니다. 때에 왕의 박사들이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여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랐습니다.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 왔더니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하고 태후가 아들 왕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단 5: 5-12)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입어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the spirit of gods)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지금 여러 박사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로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능히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단 5:13-16) 벨사살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기에 다니엘 속에 ‘신들의 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신교의 생각 속에는 다신(多神)만 생각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단 5: 13-28)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통변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이 글자를 정확하게 읽고 해석해 주었으며, 이 해석대로 그날밤 벨사살은 살해를 당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단 5:31) 다니엘은 그 시대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이 글자를 통역하기 전 전도설교를 한 후 글자의 통역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통역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가 말이나 노래를 통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타났을 때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됩니다. 치유사역에서는 심령의 비밀을 밝혀냄으로 감추인 질병의 원인을 해소하는데 활용됩니다. 성령님에 깊이 사로 잡혀 방언 기도하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와 성령님께서 책망하시거나 권면하시거나 안위하시는 방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의 깊은 경지에 도달하면 통변으로 연결되어 성령님과의 영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통변 후에 더 나아가 예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통변 혹 통역의 은사를 구하는 이들은 다음 사항을 유념해야 합니다.

1)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방언'을 말하는 것에 비하여 더욱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보퉁이나, 통역은 전체 회중들의 교화를 위하여 공개적으로 행하여지며,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일이 뒤따르기 때문에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교회에 덕이 되지 아니하는 통역은 자제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불러서 권면해야 합니다. 어떤 방언이 그릇된 것이거나 공개적인 자리에 은혜 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통역한다면 단지 혼란을 더할 뿐이라고 판단될 경우, 지도자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2)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또한 통변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통변을 의존할 수 없습니다. 통역의 은사를 구하여 기도함으로써 그 은사를 받는 체험,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과 똑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는 체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켜 줍니다.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성령의 임재와 그 역사하심을 놀랍게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3)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통역의 처음 부분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에 이어지는 부분 또는 끝 부분의 말씀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 통역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압도' 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통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고전 14:26-30)

4) 통변하시는 분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발음해야 합니다. 모두 알아듣도록 하며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통변하시는 것이니 대변자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5) 통역을 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해서는 안됩니다. 방언 통역이 자기가 받은 것보다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잠잠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내 판단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통역이 그릇된 것이어서 영 분별의 은사를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통역이 교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마음을 냉담하게 만들거나 불안하게 하면 다시 영 분별로서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6) 통역이 끝이 났는데 같은 맥락에서 추가적인 계시를 받는 경우 2차적인 통역은 보충할 수 있으나 1차적인 통역과 상충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통역과 상충되는 내용을 전하라는 진정한 명령이 있을 경우 그것은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오게 됩니다. 이때 그것을 통역의 형태로 행하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은사의 가치를 격하시킴과 동시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7) 공개 집회에서는 외부로부터 온 사람들보다는 지도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통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름 부으심'을 충만히 받았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떤 집회에서도 세 사람 이하의 사람에게만 '방언' 및 통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성경적이다(고전14: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아홉 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자백하면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받게 됩니다. 봉사와 예배와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시며 은사((The spiritual gifts)를 주십니다. (고전 12:7-11)

(1) 지혜의 말씀(the word of wisdom)  (2) 지식의 말씀(the word of knowledge)  (3) 믿음의 은사(faith)  (4) 병 고치는 은사(the gifts of healing) (5) 능력 행함(the working of miracles) (6) 예언함(prophecy) (7) 영들 분별함(discerning of spirits) (8) 각종 방언 말함(divers kinds of tongues) (9) 방언들 통역함(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그러나 제일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고전 13장).


고린도 전서 12장 27절 이하에 보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 (고전 12:27-31) 한 후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의 장” (Song of Agape)를 소개하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고 하십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데 모범되고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는데 쓰임 받는 귀하신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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