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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 : 이스라엘 36

2019.12.01 14:44

관리자 조회 수:19

사행천(蛇行川 ; meandering stream) 이스라엘 36

다시, 골고다
2019.11.11(월)

십자가의 사람들은

그리고 십자가의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갈라디아서 5장 16절-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바울 사도는 권면하고 있다.(갈 5:16~26) 그리스도인들은 시작도 끝도 성령이어야 한다.(갈3: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왜냐하면, 율법을 놓고 이야기할 때, 구약에서의 율법은 사람 혼자 지켜야하는 하나님의 법이었다. 그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사람을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율법은 복음 안에 있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게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 따라 행한다는 말은 붙어 있을 때 가장 잘 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성령을 따라 행하여 온전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해야 되는 게 아니라,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사람은 없다. 완전(perfect)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그러나 온전(unimpaired)은 방향성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침반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합한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주신다. 온전치 못한 삶의 태도를 바로(방향) 잡아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마지막으로 형제들이여,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고후13:11).”

그 정방향은 골고다이다. 십자가를 푯대 삼는 거다. 죄에서부터(from)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한(for)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율법과 은혜라는 이분법적 경악의 진술문 같던 서두 갈라디아서는 그 마지막 결론으로, 이웃 사랑을 위한 구체적인 권면(갈 6:1~10)을 내놓고 있다. 이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범죄한(발을 삐끗한) 형제를 대하는 태도(갈 6:1~5), 구제-물질 사용에서 드러나는 이웃 사랑을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14)”는 권면이다. 십자가는 사랑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십자가 신앙은 희생이다. 희생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 모범을 제시한다. “나를 본받으라(갈4:12~20)” ‘나’ 바울은 본받으라. 이는 무슨 자신감인가? 바울 사도는 그 신앙 의식 속에 ‘나는 너희들의 영적 부모다’라는 신학이 전제 되어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 곳곳에서, 예를 들어 고전 4:15~16절에서 자신을 영적 부모로 표현하고 있다. 오만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의 성도들의 영적 부모라는 목회 정체성으로 성도들을 대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나는 우리 성도들을 과연 내 자녀 같이 여기어 인내하며, 사랑하고 있는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갈4:19), 즉 갈라디아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중심이 되실 때까지, “나는 영적 아비된 심령으로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가?” 성령께서 내게도 물었다.

갈라디아서를 다른 복음, 이단 감별서로만 인식해 왔던 내게, 성령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서로서의 갈라디아를 계시했다. 맞다. 말씀을 쥐어짜면, 피가 나온다는 루터의 통찰이 옳다. 날 위한 대속의 피가 요단처럼 흘러 나를 관통하길 기도한다.

Flowing the precious blood!!
나의 겟세마네,를 희구하며. 갈라디아서가 일깨워 준, 십자가의 충족성.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갈 6: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새번역)

But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Gal 6:14)”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