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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김기우 원로목사님께

2008.08.03 21:23

김성찬 조회 수:1076 추천:42

영혼일기 25: 존경하는 김기우 원로목사님께

2008.08.03


10분만 더 수고하면 날 수몰시키지 않을 터인데, 그 선배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기 집 앞에서 나를 짐처럼 부렸다. 그 뙤약볕(Strong sunshine)에, 아니 그 벌건 사막 한가운데에. 다신 그런 거래 안한다고 맘 굳게 먹었었는데, 내 기억력이 딸려서 냉큼 그 차에 올라탄 것이 문제였다. 온몸을 미역 감듯 땀으로 적시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걷고 또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원로목사 취임 및 담임목사 추대예배 설교에서, 원로 목사로 추대된 선배 목사님의 목회여정을 회고하면서, 오늘 설교를 맡은 지방회장 전현석 목사는 “목사란 교회 안에 있어도,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 그 원로로 추대된 목사님은 1941년생이신데 서둘러 은퇴하셨다. 30여 년 전, 목사 안수 받던 그 젊은 시절부터 30여 년을 시무했던 교회에서 법적 정년을 다 못 채운 채, 8회 말에 은퇴하셨다. 내가, 내 차가 아니라서, 차안에 있었으나 차밖에 있던 것처럼, 그분도 9회 말까지의 완투를 누리지 못하고 물러서셨다. 교회 안에 있었으나 교회 밖에 있었기에, 그가 처한 환경에 지혜롭게(?) 대처하신 것이다. 스스로 감독되어 자진 강판을 단행하신 것이다.


“재승덕(才勝德) 하지 말고, 덕승재(德勝才) 하란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그분이 저에게 ‘나 이가 아파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라는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목회를 해 나가면서 왜 그 이가 아픈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늘 그분은 말할 듯,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덕(德)으로 이 어려운 마무리를 멋지게 일궈내셨습니다.” 연이어진 지방회장 목사의 설교는 골 깊은 그분의 애환을 대변하는 듯 했다.


“남은 생애 다신 이 아픈 일이 없으시길, 선한 일만이 기다리길 기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우린 씁쓸히(?) 아멘, 했다.


그러나 재승덕(才勝德) 하지 않고, 덕승재(德勝才) 하신 그분은, 나처럼 9회를 다 채우지 못한 강판에 투덜거리지 않고, 전처럼 한결같이 8회 말 원로승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계실 것이다. 허나, 만년(晩年)에 신학을 한 관계로 나이 어린 선배들에게 눌려 살았는데, 이젠  원로로는 그들의 선배가 돼서 얼마나 통쾌, 상쾌, 유쾌한지 모른다며 파안대소하던 그분을 바라보며. 이 밤 자리에 누우면 엄습할 허탈을 그분이 어떻게 극복해 내실지 난 궁금해 했다. 


“한 교회에서 목사안수부터 원로목사추대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분 김기우 목사는 소리 높여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올렸다.

함께해 준 당회원들과 성도들에게, 그리고 긴 목회여정 동고동락(同苦同樂)해준 몇몇 권사님들께 눈물로 감사해 하셨다.


그러다가 30년 전, 소 한 마리를 팔아 자신의 개척목회를 뒷바라지 해 주셨던 작고하신 아버님께 그 소 값을 제대로 셈해드리지 못한, 가난하고, 단정한 목회생활로 인해 당신의 자녀들을 그 지척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조차 한번 데리고 가보지 못한, 아픔에 울먹이셨다. 그러나 그 자녀들은 아버지의 피나는 헌신을 함께 견디며, 달동네 왕십리에서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함께 가주는 왕십리 정신으로 잘 성장해 줬다. 그래서 큰 아들, 김용주 목사는 아버지 대를 이어 개척 목회자의 길을 오늘도 묵묵히 가고 있다.


“장한 제 아내를 위해 박수 한 번 쳐주세요.”


그분은 후임 이두상 목사에게도 미안한 맘을 잃지 않으셨다. 교회를 신축해야 하는데, 신축할 재정을 확보해 놓지 못하고 물러서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


축하 한마당이어야 할 자리가, 은근히 우리네 눈물샘만을 자극하고 있었다.

떠나고 보내는, 미운정고운정 다든 이들 사이의 석별의 무대는 실로 애틋했다. 맨 앞좌석의 원로목사님께서 눈시울을 적시자, 바로 뒷좌석의 수석 장로님 또한 연신 눈가의 눈물을 훔쳐냈다. 취임하는 이두상 목사도 예까지 이른 기억들을 추억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원로 목사는 떠나는 것이 아니에요. 동의하십니까?”
라고 시위하듯, 만장하신 여러분의 동의를 반강제(?)로 이끌어 내셨으나,

난 맘속으로, 그 존경하는 원로목사님께 이런 글월을 올리고 있었다.

 

김기우 원로목사님,

목사님은,

이제 원로목사님이십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이젠 정말 주님만 사랑하셔야 합니다.

감히, 이 어린 것이, 죄송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그 글월을 잇고 있다.


원로 김기우 목사님!

저는 지금 원로목사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 『성결서원』을 손에 들었습니다. 딱 책을 가르는 순간, 기이하게도 2008년 은퇴를 앞두고 쓰신 ‘내려놓음’이 펼쳐졌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내려놓음을 설파하셨더군요.


“때로 능력이 없어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더 좋은 은택을 기대하면서 내려놓음이 있겠으나 이러한 내려놓음은 오히려 자기를 괴멸의 자리로 인도하기 쉽게 된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높은 자리, 잘된 자리, 평안한 보장된 자리,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스스로 물러서는 거룩한 행위이다.”

   

“인간의 육정을 막을 길이 없다고 하나 그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경건의 훈련을 쌓고, 절대자와 쉴 새 없이 교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없이 그 육정을 다스리고 내려놓음의 길을 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안일, 후손의 형통, 더 많은 소유, 인기의 상존, 힘의 과시, 고진감래의 보상, 현재의 능력과시에서 내려놓음은 상당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 숭고한 결단이 없으면 항상 불안하고 괘씸한 마음에 사로잡혀 우울증과 증오심이 발동하므로 중병에 걸리게 된다. 이를 속히 털어 버리고 하나님의 순리에 모두 맡기는 생활은 최고의 행복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처럼,
말씀만이 아니라 그 숭고한 결단을 몸소 보여주신 목사님.


허나, 우리가 목사님의 진정한 내려놓음에 찬사를 올리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함은

목사님의 목회 일생이,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하며(마5:40)라는 자기희생으로 일관한 '내려놓음'이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놈의 왕십리정신으로 늘 이가 아팠고, 항상 호주머니가 헐거웠지만, 오히려 그 고단한 삶을 즐기셨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어림짐작이  틀림없을 겁니다. 우리 눈치 9단이거든요.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지방회, 총회적으로도 서로가려고 혈안이된 총회대의원 자리를 목사님께서는 몇차례나 헌신짝처럼 버리곤 하셨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교단 정치의 부패상에 대해서도 지극한 염려를 보이시며 유혹을 차단하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며 자중자애 하셨습니다.

 

그래, 목사님은 시린 인고의 세월을 희생과 인내의 무릎으로 이겨내시고, 

자기비움의 예수정신으로 종국엔 승리하셨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하신 우리 김기우 원로목사님! 

네, 목사님은 진정 최고의 행복자이십니다.

우리 후배들이 닮아가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익힌 바대로, 은퇴는 영어로 Retirement 입니다.  re- tire, 타이어를 새로 갈아 낀다는 말입니다. 오늘 축사하신 조종남 전 서울신대총장께서는 원로목사님께 새신을 신고 팔짝 뛰어보듯, 새 타이어 갈아 끼고 시동 한번 걸어 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이제 후로, ‘성결서원’을 통해 은퇴자로서의 새 사명을 찾아보시겠다고, 원로 목사님께서는 잔잔히 그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기대됩니다.

원로 목사로서의 귀감이 되는 그 내려놓음의 실천과 성결서원의 순항을 기대해 봅니다.


저도, 내려놓음 일지를 쓰라고 하신 분부대로,

괴멸이 아닌 거룩한 행위로써의 내려놓음을 실천하여,

그리스도를, 원로 목사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사례를 못했습니다.

한번 모시겠습니다.


이 밤,

단잠을 주무십시오.



未及, 

김성찬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