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존속살해
2008.10.26 23:49
영혼일기 107: 존속살해
2008.10.26(주일)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토템과 터부』에서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라고 끝을 맺는다. 그 행위는 최초 집단의 아버지 살해다. 원아버지의 가부장적 독재(주변 모든 여자를 자기 것 삼고, 살의를 발하는)에 시달리던 최초의 집단(아들들)이 원아버지를 때려죽인다. (이것이 금기다.) 그리곤 그 아들들은 맛있게 그 아버지의 인육을 나눠먹는다. 그러다가 전리품 분배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 전멸의 위기에 빠지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이 같은 ‘터부’를 만든다. ‘아버지를 죽이면 안 된다.’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할 제물인 ‘토템’을 만든다. 이는 아버지의 규율이다. 그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은 질서와 규범을 잡아 간다. 하여 존속살해는 터부(금기)가 된다. 그리고 이 최초의 집단(아들들)의 행위, 즉 아버지 살해의 결과 형성된 터부는 그 이후 모든 집단, 모든 개인에게 강요된다. 또한, 외디프스기의 소망을 포기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우린 근친상간의 터부를 마주한다.
이상의 이론이 성경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늘 아들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극복해야할 존재다. 아버지를 제거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드는 시도는 다윗과 압살롬과의 관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압살롬은 파멸한다. 존속살해의 금기를 깬 형벌이다.
그러나 아들들은 오늘도 그 음모를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감히 범하기 힘든 가장 큰 금지인 존속살해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원로들의 수난시대.
오늘도 두 곳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서울 북과 서울 중앙에서.
“브루터스 너마저도.” 그 아들들은 새 역사를 쓰고 싶어 한다. 자신들도 남자임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공모하여 ‘아버지를 죽이면 안 된다’는 터부를 깨고 말았다. 이제 공은 그 아버지의 인육을 나눠먹는 아들들에게 넘어 갔다. 그들은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쌈박질을 해댈 것이다. 그 필연코 도래할 공멸의 위기에서 그들은 다시는 ‘아버지를 죽이면 안 된다’는 터부(금기)를 재확인할 것이다.
문제는 그 믿음의 아들들이, 그 믿음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멀쩡한 젊은 목회자에게 그 아버지의 탈을 씌워 놓고, 그 탈을 표적삼아 독침을 날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목회자를 희생제물삼아 자신들의 분풀이 대상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집단 살해다. 더군다나 만장일치로 그 당회원들이 그 누군가를 추대해 놓고, 뒤로 조직적 공작을 꾸며 사람 죽이는 일을 도모했다는 데에 신앙 윤리적 심각성이 내재한다.
원아버지의 가부장적 독재에 대한 일정한 반발이야 이해할 수 있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 성장에 있어 본능적 과정이랄 수 있지만, 생사람 잡는 식의 비열한 음모와 공작만큼은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젊은 피의 출혈은 반드시 보상되어야하고, 그 명예도 회복해 줘야 한다. 그것이 적어도 인간의 도리이다.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겠지만, (아니 그런 비열한 집단이라면 차라리 잘된 결과일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반드시 예비 되어 있다는 믿음 하에) 적어도 그들은 그들이 죽인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만 할 것이다. 내 비록 먼데 있어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이 악행을 보고, 들은 이들은 비느하스의 분노를 발해야 한다. 그간 이력서를 받은 90여명의 목회자를 검불처럼 날려버리고, 온갖 치사한 검증을 거쳐 당회가 만장일치로 뽑은 젊은 목회자를 간악한 공작으로 파리 목숨처럼 날려 버린 이 악행. 반드시 공동의 응징이 필요하다. 레위인의 처에게 악행을 범한 베냐민 지파를 응징한 온 이스라엘처럼. 그 첩의 시신을 열 두 조각내어 온 지파에 그 악행을 호소한 레위인 처럼, 난 저 북쪽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사사기 19:29-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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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판단 근거로 하였답니까?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나아가 심각하게 왜곡된 잣대로
진실한 목회자 한 사람을 그렇게 절단내는 무차별성을 봅니다.
산아래 마을, 목양지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주어진 바 사명을 혼신의 열의로 감당하여 온
성실한 사역자를 마구 흔들다가 아예 구렁텅이로 던지는 군요.
맘 같아서는 그 현장에 가서 청원변호를 하고픕니다.
위로와 격려, 함께 가슴아파함은 생각이 안듭니다.
그저 마구 마구 홧기가 올라옵니다.
이를 어찌 할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