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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청학리에서

2008.11.02 23:00

김성찬 조회 수:745 추천:20

영혼일기 114: 청학리에서

2008.11.02(주일)

 

 

“누님이라서 교횔 나온 것이 아닙니다. 누님이라서 충성하고 헌신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청학교회의 창립표어인 성실한 생활을 그 삶에서 실천하고 계시기에 저는 황 은연 목사님을 목자로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본을 보이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 교우들은 그분의 본을 받는 것이 곧 주님을 본받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분의 본을 받아 성장하여 내가 이 영광스런 자리에 선 것입니다.”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위치한 청학성결교회가 설립 9주년 만에 장로 한 분과 명예권사 두 분, 시무 권사 세 분, 안수집사 세 분을 일꾼으로 임직했다. 장로장립을 받은 황 술연 장로가 답사하러 나와서 이상과 같은 고백을 만장하신 여러분 앞에서 토로했다. 신임 황 장로님은 바로 청학교회 개척자며, 담임목사이신 황 은연 목사님의 둘째 동생이다. 그리고 또한 오늘 집사 안수를 받은 황 동연 안수집사도 황 목사님의 큰 동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린 지들끼리 다 해먹는다며 웃어댔지만, 난 그네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황 목사님이 숭고해 보였다. 


황 은연 목사님은 지난 10여 년 간 병상의 시어머니, 극한 중병에 시달리는 남편 원 유동 장로님을 받들면서, 교회를 개척해 오늘 든든한 청학성결교회의 기틀을 이렇게 훌륭하게 마련하셨다. 수도여사대를 수석으로 들고 나며, 교편을 잡다가 퇴직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분은 독수리같이 주를 앙모하는 신앙심으로 서울신학대학 신학대학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내가 그 속사정을 깊이 알지 못하지만, 그분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던 교단의 현실을, 현장의 담임교역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 잠시 외유를 했다가, 다시 목사로 본 교단에 진입해 오는 과정에서 법적 제재도 감내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살리는 문법을 구사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분은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 그분네들의 얼굴은 함박꽃이었다. ‘술 못’이라 불리던 술연 장로는 한때 술독에 빠져 살던 대단한 주당이었단다. 오늘 임직식은 온통 술 이야기 뿐 이었다. 헌 술 버리고 새 술에 취한 남매 이야기였다. 큰 남동생도 이 교회의 태동과 함께 신앙의 길에 들어서 오늘 집사 안수를 받았단다. 그 누구나 가족잔치라고 농을 칠 수는 있어도, 그 육에 속한 동생들을 신앙으로 거둬 일꾼 되게 한, 황 목사님의 목양적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난 여긴다.


오늘 격려사를 하신 윤 의광 목사님은 황 목사님 부부의 영적 맨토다. 나도 교육전도사 시절에 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와 교사로 함께 일했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은 각별하다. 30년지 기다. 윤 목사님께서도 격려사에서,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교하면서, 가족들을 참 신앙인 되게 한, 황 목사님을 칭찬했다.


그래 모범을 보이기가 결코 쉽지 않은 형제들 사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분은 동생 황 장로의 말대로 본을 보였단다. 어떤 본이었을까? 예수의 본.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들이 그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고 쉽게 말한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형제 구원이라는 말이다. 아니 형제들에게 그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일이란다. 그렇다. 어렵다. 정말로 어렵다. 나보다 그 어려움에 대해 더 진하게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끝내 그 동생들을 믿음에로 이끌어 내셨고, 십자가의 순교자가 되게 하셨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강조가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만인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또한 그 형제들을 위해 그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제는 형제들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형제가 십자가의 원수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비가, 어미가 가장 큰 십자가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완전히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그 형제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십자가의 증인들 되게 하셨다.


내가 죽어야 그네들이 사는 형제 구원의 비법을 그렇게 완벽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형제들 간의 목회란, 기대가 큰 만큼 간섭도 크고, 공적 공간만이 아니라 사적 공간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만큼 피울 냄새도 만만치 않은, 장점을 보기보단 허물이 더 잘 보이고, 남들 소곤거리는 소리가 내게 대한 소리 같은, 이런 저런 지뢰가 도처에 매장된 목회가 아닌가?


그런 미묘한 인적 관계 갈등을 극복해 내는 비결은, 목회자가 죽는 일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살아생전에 늘 함께 사역하셨던 양 태윤 목사님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망나니 동생을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온갖 행패와 수모도 넉살좋게 웃어넘기며 그 동생을 품어 냈다는 말씀이다. 그 양 목사님은 대교회로 청빙을 받아 가셨고, 그 교단을 품는 총회장까지 역임하셨다.


난 어머님의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여 난 일찍이 총회장될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런 대망은커녕, 오늘 청학성결교회의 가족잔치가 부러운, 부끄러운 목회자인 나를 발견했다. 아내든, 자녀든, 형제든 자매든, 아버지든 어머니든 그 누구든 형제를 품지 못한, 형제에 대해 라가라라고 말하는(말했던) 이들은 오늘 소박한 청학가족교회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리의 고하(高下), 규모의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2-24).”


난, 기원 드린다. 내 죽어 그네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나도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예수의 형제 야고보처럼 그가, 죽어 부활한 예수를 내 안에서 만나, 십자가의 순교자가 되기를 기도드린다.


황 목사님의 예수의 본을 받은 삶의 본을 받은 청학성결교회는 영원하리.

그 삶의 본으로 형제를 구원한 황은연 목사님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리.

축하하며, 존경의 염을 표하며,


그 목장에서 난, 다시 한 번 더 확인 했다.

믿음은 강요 될 수 없으나, 때때로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