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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거인 조용기- 그 짧은 50년 목회

2008.11.09 23:38

김성찬 조회 수:683 추천:25

영혼일기 121: 거인 조용기- 그 짧은 50년 목회

2008.11.09(주일)

 

 

그 거인은 뜻밖에 잔잔했다.

파도여 잠잠 하라 하시니 잔잔하여지던 호수 표면처럼.

그 전능자 앞에서 모든 것 내려놓은 물 떠온 하인처럼,

그분은 다소곳했다.

 

첫 대면한 조 용기 목사.

카리스마 없는 권위의 아우라만 번뜩였다.

그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다.


오늘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회 선교대회 강사로 오신 그분을 중앙성결교회 당회장실에서 영접했다.

"형님, 교회를 왜 이런 산꼭대기에 세워 사람을 힘들게 합니까?“

그분은 평소 형님이라 부르는 이 만신 원로 목사님께 이렇게 농을 던졌다. 그 말씀이 내 귀엔 찾아오기 힘들다는 말보다, 부흥 성장해야 할 교회 장소로써는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느냐는, 교회성장 전문가의 시각을 드러낸 거라 여겨졌다. 이런 내 해석이 틀리지 않았다고 감히 내가 보증하는 것은, 그분이 설교 도중에 이 만신 원로목사님에게 “형님 내가 강남으로 가시라 안했습니까?”라고 다시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순간 이 만신 원로 목사님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난 안다. 그분의 그 불콰함에 대한 가슴 아픈 내력을. 내가 교회를 개척한지 1년 만에, 30평짜리 교회에서 107평짜리 교회당으로 교회를 옮겨 놓은 후, 그 교회 이전 감사 부흥성회 강사로 이 만신 목사님을 모셨었다. 바로 그 성회에서 이 만신목사님께서는 설교 시간 중간 중간에, 강남으로 교회를 이전하지 못한 아픔을 토로하시곤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 때문이다. 당회원 몇 사람의 반대 때문에, 결국 강남으로 옮겨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무산됐었다고 말씀 하셨다. 그런 이룰 수 없었던 성장통을 그분은 매우 가슴 아파하고 계셨다.


그 무슨 차이였을까? 개척자의 만능과 청빙 받은 목회자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오늘 조 용기 목사님께서는 “내 ‘짧은’ 50년 목회”라고 말씀의 운을 떼시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내 짧은 50년 목회”


‘짧은’, ‘50’년? 50년이 짧다니, 얼마나 신바람 난 목회였을까? 순간 내안에 기대가 충만해졌다.

그분은 자신의 짧은 50년 목회를 회고하며, 여전한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한마디로 그분은 '+예수' 또는 '예수+'였다.

이런 예화가 생각났다. 뒤란에서 아빠와 아들이 힘겨루기를 한다. 아들이 혼자 들 수 없는 돌덩이를 아빠가 아이에게 들어 보라고 요구한다. 젖 먹던 힘까지 사용하여 역부족인 돌덩이를 들어 올리려 몇 차례 시도하다 무너져 내린 아이에게, 아빠가 다시 한 번 더 “네 힘을 다해 봐”라고 요청한다. 아들은 울먹이며 대답한다. “보셨잖아요, 내가 온 힘을 다한 것을.” 이어 나오는 아빠의 대답이다. “아니야, 넌 네 힘을 다하지 않았어.” 아이의 어이없어하는 답이다. “네에? 내가 온힘 다하지 않았다고요?” “그래 넌 네 힘을 다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너는 내게(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거든.”


그렇다. 그 아들은 그의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조 용기 목사님의 설교는 바로 이상과 같은 예화의 강조점과 동일했다. 아버지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아들의 행위 같은 크리스천의 신앙하는 자세를, 그분은 인본주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안드레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예수님'이 믿음의 법칙이요, 기적을 이루는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기적 없는 믿음은 없고, 그 기적을 이루는 믿음은 예수님이심을 굳게 믿고 실천한 바, 오늘의 기적을 이루셨다는 말씀이었다.


그분은 불광동에서 서대문으로,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확장해 나아갈 때마다 부딪혔던 당회원들과의 갈등을 그분은 정면 돌파해 내셨단다. 돌파해 낼 수 있었단다. 자신을 앞서 끌고 가던 꿈과 믿음이 그 반대파들의 이론과 계산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제직들 특히 장로들의 반대에도 그분은 ‘예수를 바라봄’ 그 바라봄의 법칙으로 앞서 나가셨다고 한다. 한세대학교를 세울 때도, 국민일보를 창간할 적에도 그분은 “계산 안하고 꿈속에서 살았었다.”라고 말씀하셨다.


희망을 적어 꿈 되게 하고, 그 꿈을 바라보면 이뤄진다. 무엇으로? 오직 믿음으로! 믿음을 사용하여 그 꿈을 이루라! 그리고 그 꿈을 이룰 도구는 긍정적인 말이다. 희망, 꿈, 믿음, 말 이 네 가지 중에서 제일로 중요한 것이 말이다. 긍정적인 말을 하라. 그럴 때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실로 단순 명쾌했다. 


그동안 서적, 세미나, 신문, 방송 매체들을 통해 간헐적으로 들어오던 그분의 성공적 목회사역의 비결을 이렇게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생동감 속에 전해 들었다. 여러 깊고 오묘한 간증과 그 배경되는 말씀을 직접들을 수 있었고, 큰 감동과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날 부끄럽게 했던 숱한 말씀 중, 이 말씀은 내 귀에 깊이 파고들었다.

군인들에게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정훈교육을 실시하고, 군번을 암기시키듯, 성도들에게 자신들이 크리스천임을 각인시키는, 성경의 기본이자 필수복음을 탐구하던 중, 그분은 우리 성결교단의 사중(四重)복음이 젤로 명쾌한 복음의 요약이라고 생각하셨단다.


중생(重生), 성결(聖潔), 신유(神癒), 재림(再臨).


하여 그분은 거기다 ‘축복’을 더해 오중복음을 강조하기 시작하셨단다. 그리고 이 성령 충만과 오중복음을, 그 성도들에게 군번 외우듯 자다가도 깨어 일어나 좔좔 외우게 하며, 그 기독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케 하셨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성결교 목사로서 그 사중복음에 대해 성도들에게 강론해 본 적이 없다. 내 것이 부끄러웠고, 촌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벌 받을 헛된 허세였다. 이런 비린내 나는 허세 류(類)는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귀한 복음의 정수를 하찮은 구호로 여겼던 것은, 그동안 우리 교단과 신학교에서, 그 사중복음이 우리 교회의 교리냐, 전도표제냐 라고 말장난만 하던, 그 빈말 논쟁의 폐해와도 무관치 않다. 그 누군가는 그 사중복음을 각색해서 복음을 복음 되게 하려 뜨거운 실천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부질없는 교리논쟁에만 몰두 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교육을 받은 나와 우리는 당연히 이념논쟁에만 몰두 했던 것 아닌가?


그분은 오늘 말씀 중,

“네 있는 것을 가지고 나아오라” 말씀하셨다.

벳세다 들녘, 제자 빌립의 ‘있지도 않은 것(이 백 데나리온도 부족하다는)’ 가지고 푸념하는 부정적 보고가 아닌, ‘네 가진 것’,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지닌 아이를 발견한 안드레의 믿음의 눈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신앙 유산으로 전해 받은 사중복음.

그 복음을 증거하는 것. 능력되게 하는 일이, 나는 이제부터라도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 회개하며 인정했다.


“네 있는 것 가지고 나아오라.”

기적을 허락하실 주님의 음성 앞에 내 가진 것 무엇인지. 내 가진 것 중에 정말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선용할 ‘내 가진 것’에 대해 깊은 기도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그의 책「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에 이런 희극적인 예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 전과자가 내 저서「적극적 사고」라는 책을 읽고서, 엄청난 강도 행위를 시도하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내가 조용기 목사도, 이만신 목사도 아니다.

난 나다. 오늘 설교 제목인 그 ‘성공적 목회’의 원리는 수용하지만, ‘내 있는 것’ 중 그 무엇을 주께 드려야 할는지는, 사전에 걸러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내 안의 욕심, 욕망이 앞서선 안 될 것이다. 이백 데나리온은 없는 내가 아닌가? 기적만 탐내며 내 안의 헛된 꿈의 성취를 바라는 영적 강도짓이 아니라, 지금, 오늘 내가 감히 주께 보여 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주께 드리는 실천이 중요하다. 


근데, 난 그 무엇이 없다. 없는 것 같다.

주께 내어 드릴 그 무엇이.

반환점을 돌아 버려, 반환할 수 없는 목회.

그래도 있다면,

오직 결승선을 향한 줄달음, 그 끝까지 가는 것이다.

끝까지, 

 

그리고 나도 회고할 수 있기를

“내 ‘짧은’ 목회 50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