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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 아내가 사라졌다.

2013.07.01 22:07

김성찬 조회 수:629 추천:20



영혼일기 1340 : 아내가 사라졌다.

2013.07.01(월)

 

눈 뜨면 없어라

 

통속소설의 제목 같은 현실이 내게도 임했다.

 

아내가 사라졌다.

 

사라진 아내를 나는 치사하게 이내 수배했다.

그냥 진득하니 못 본 체 내버려 둘 걸.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오늘도) 술래 ♬

 

못 찾겠다는 말이 아니다.

찾을 수 있지만 술래가 숨은 이를 바로 찾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숨은 이들이 숨어 든 자리가 어딘지 빤히 알면서도, 머리카락이 발견됐어도

못 찾은 척 앞뜰과 뒤란을 오가며 뜸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술래잡기의 묘미는 숨은 이가 숨어 들키지 않는, 그 짜릿한 찰나적 희열에 있음 잘 알기에.

술래는 모처럼 숨어든 이가 누리는 안식과 쾌감을 이내 앗아버리지 않는다.

술래는 즉시 찾아내고픈 욕망을, 숨은 이를 위해 절제한다.

절제 된 욕망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예술혼으로 

술래는 노래를 빚는다. 

술래잡기 내내 찾고 싶으나 찾지 않음으로 더 애절해진 사모곡을

숨은 이에게 들으라고 수탉처럼 목청을 드높인다.

그렇게 폼 나게 고백한다.

나는 술래잡기에 있어서 영원한 당신의 술래라고.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아들에게는 엄마가, 딸아이에게는 아빠가, 피앙세에게는 사내가

술래였다.

나는야 언제나 술래였다.

 

그런데 나는 술래잡기를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나는 늘 장독대 뒤로 숨어들어 누리는 찰라적 안온함조차 그녀에게서 즉시 앗아버렸다.

잔인하게 바로바로 그녀를 찾아 내버렸다.

그것이 족집게 같은 내 투시의 능력이라고

이내 들켜버려 재미가 없어진, 다시 술래잡기를 나와 하고 싶지 않아버린

그녀 앞에서 나는 으스대며 뽐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가 아예 집을 나가 버렸다.

 

술래잡기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넓어 봐야, 우리 집 앞뒤 뜰이다.

그 이상 경계를 넘어서면 반칙이다.

내 집안에서 잘 숨는 재미로 술래잡기는 이어진다.

 

내 한 몸 숨기기도 좁은 공간에서 즐겨야 하는 게임이기에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 찾고도 못 찾은 척 해줬어야 했다.

그래야 집안에서의 술래잡기가 가능했다. 

그런데 나는……

그랬다, 그래 버렸었다.

 

그랬더니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다.

당신하고는 숨바꼭질을 할 수가 없어

 

그녀는 안식 없은 집을, 안식을 매번 앗아가는 나를 피해 훌쩍 떠나버렸다. 

내 체력으로 뛰어다닐 수 없는 광역 지대로 날아가 버렸다.

이아침에.

 

자, 이제 내가 숨을 테니 잘 찾아 봐

라는 술래잡기 식 예고도 없이

사 라 져 버 렸 다

 

눈 뜨면 없어라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

 

나는 이 노래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아침부로 술래의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 술래잡기 놀이에서

판을 깨고 나간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밀당의 기술조차 없는

나였다.

 

좁은 방안에서라도 숨 쉴 여유를 찾고 싶은 연유에서 시작 된

우리들의 술래잡기에서

 

나는 내 여유와 관용의 품으로 숨어들려는 그녀에게

한 치도, 촌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

나는 더 이상 나는야 언제나 술래 ♬ 라고 부를 수 없는

술래 직을 박탈당했다. 

숨 막혀 죽어 가던 그녀가 까맣게 숨어 버렸기에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꺼야

 

그래 

그녀는 오늘 파랑새 되어 먼 남쪽 나라로 날아갔다. ㅠ,ㅠ 

 

하여, 

홀로 쓰디 쓴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털어 넣는

하루를 나는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