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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어떤 낙화

2012.01.26 15:03

김성찬 조회 수:763 추천:42

영혼일기 916: 어떤 낙화
2012.1.26(목)

그 낙화는 눈물겨웠다.
그 자의반타의반 외유해야만 했던 망명정객처럼,
그 낙화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25시의 에필로그다.


그 필름은 연출된 대한제국의 종말.
을사늑약.
칼을 품은 국화는 금수강산을 웃으며 유린했다.

그것은 이형기의 ‘꽃답게 죽는 내 청춘’이 아니다.
뭍에서 상어를 만난, 현대판 헤밍웨이의 ‘노인의 바다’다.

꽃이 시들다 져 떨어져 내린다는 것은
그 누구도 거부할 길 없는 중력의 힘이다.
너도 떨어지고, 나도 떨어진다.

그러나 꽃이 져서 떨어지는 것도 때론 예술일 수 있다.

나락이 아니고, 하롱하롱 낙화란, 잘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인생을 예술처럼 산 자만이 예술처럼 낙화할 수 있다.

예술처럼 산다는 것은 산 듯 산다는 말이다.

산듯하게 산다는 말은 산뜻하게 산다는 말이다.
산뜻하게 산다함은 발걸음이 경쾌하다는 말이다.

경쾌하다 함은, 허허로운 호주머니처럼 비우고, 털어 내버리고 산다는 말이다.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 수소풍선처럼 산다는 말이다.

홑청만 걸치고 민들레 홀씨처럼 난다는 말이다.

중력 이하로 떨어지는 욕심 무장으로는 종국엔
여지없이 땅에 처박히는 추락만 자초할 뿐이다.

자신만 올곧다고 결 고운 낙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길벗을 잘 만나야,
시절을 잘 만나야,
바람을 잘 만나야,
추방이 아닌 축복에 싸인 분분한 낙화를 즐길 수 있다.

길가다가 강도만난 이웃들이 얼마나 많던가?
강도를 만나 죽어 가는데도,
외면하고,
비방하고,
조롱하고,
저주하고 떼거리로 덤비는
불한당들에게 포위되어
죄를 뒤집어쓴 채 짓밟히는 봉변은
살다가며 피해야할 우리들의 염원이다.

날이 갈수록 새롭게
뱀도 허물을 벗는데
한 겹 한 겹
알몸이 되기까지
세상을 내던지고
나를 벗어 내던지는 전력투구

꽃다운 낙화란 전력투구다
나를 벗겨내는 몸말이다.
간구가 실천된 몸말로써의 기도다.


그 누구도 애절해 하지 않는
가는 봄날도 없는
우리네 사전엔 없는 단어
퇴출

퇴출은 NO 꽃다운 낙화는 YES
NOYES21을 희원하며
내뿜는
애잔한 결기

하여, 강영우의 낙화는 산뜻하고, 숭고하다.

"늘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여러 번 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 받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