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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당신의 올인

2012.05.20 21:45

김성찬 조회 수:640 추천:35





영혼일기 1004: 당신의 올인
212.05.20(주일)

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가 현역 은퇴를 하면서, 세가지 회개 제목을 공개했었다. 그중 하나가 성경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었다고 했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적 평등 ? 같은 성경적 원칙을 그 강단에서 발할 수 없었노라고 했다. 기득권을 쥔 정치-경제적 지배 집단에 속하는 교인들에게 감히 그런 광야의 소리를 외칠 수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듣기 싫은 소리?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그럴 수도 있다. 그 교인들이 나가든지, 아니면 목사가 쫓겨 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거다.

아니다. 그들이 아예 성경적 가치관에 귀 기울, 들을 귀가 없는 부류였기 때문이리라. 들을 귀조차 없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마땅히 바로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아픔은 비단 이동원 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범접할 수 없는 확신 속에 거한 성도가 있다.
나는 딱 한 번 그 성도에게 그녀의 새 직업에 대해 조언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딸 같은 그 여성도가
"목사님께서는 나에 대해 어떤 기도를 해주고 계시는가?"
문자로 물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 성도가 하고 있는 새 일에 대해 내가 마뜩찮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녀가 느꼈던가 보다. 그랬을 거다. 전문직에 종사하던 그녀가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직종에 투신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음을 그녀가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나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을 그녀는 그렇게 표출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올인하게 된, 그 직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순간 그녀에게 엄습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새 직업에 대한 나의 평가를 그런 식으로 물었던 것같다.

나는 그 당돌한 ? 질문에 당황해 했다.
그리고 이내 맘 잡고, 첨이자 마지막으로 들을 귀를 잃은 그녀에게 이렇게 문자로 답했다.

안정성
건전성

그후 우리는 더 이상 그녀의 새 욕망에 대해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가정이 오늘 예배를 끝으로 먼데로 이사를 간다. 신앙적으로 그렇게 모범적일 수 없는 가정이 교회를 떠난다. 그네들은 꼭 다시 돌아 올 거라고, 굳게 다짐했고, 나는 그녀의 바램처럼 거부가 되어 강남으로 가라고 물신주의자의 덕담을 해줬다. 그래, 나는 정말 해주고 싶은 조언을 오늘도 아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도 그녀는 단단하고, 그녀에게는 내 조언을 들을 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그 강한 신념에서 우러른 무서운 확신을 나는 어거할 수 없었다.

그런 아픈 맘으로 교회를 나서, 오후에는 먼데 교회 헌신예배를 인도했다. 

나보다 못한 목사가, 우리 교회보다 못한 교회가 없는 현실에서, 내가 그 어느 교회 예배를 인도한다는 것이 정말 맘에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속맘으로는 백번 거절할 일이나, 날 모른 이들이 나에게 뭔가 기대하고 설교를 부탁해 대서 나는 억지춘향, 속으로 울면서 그 사명의 길을 오가고 있다. 천 년 전에는 어느 교단 모(母)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나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처럼 나는 울면서 그 교회 집회 강사로 갔다. 가면서 나는 기도했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 강단에 오르기 전에 맹장이라도 터지게 해 주시어, 나로 그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그렇게 절박하게 간구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대꾸하지 않으셨다. 그런 적도 있었다. 그후 지방회, 총회적으로 남들 앞에 서거나, 이런 저런 강단에 서서 설교하거나, 말할 기회를 나는 자주 얻었었다. 쉽지 않았다. 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늘 맘이 아프고, 불편했다.  

오늘도 그랬다. 날 초청해서 여전도회의 참된 헌신을 깨우쳐 보려는 그 교회는 날 잘 몰랐다. 그래서 나를 초청했을 거다. 그 누가 소개했다는데,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 그래서 힘든 나는 그 힘든 길을 갔다.

그런데 뜻밖에, 돌아 오는 길은 신명이 일었다. 있는 그대로, 당신이 나를 옥외에 내 말리는 작업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IMB-BJR 이미 버린 몸-배 째 라. 그런 뱃심은 아직도 나에게는 없다. 나를 밖으로 내돌리시는 당신의 의중을 나는 이렇게 파악한다. 그분은 나를  통해 발할 메시지에 당신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습기찬 앰프에서 무슨 옥음이 울려나겠는가? 하여, 내가 강단에서 뭔 말을 하든 그건 당신의 관심 밖이고, 그분의 관심사는 오직 나를 그 음지에서 끌어내 양광에다가 바짝 말리고 싶으신 것뿐이다. 그분의 나에 대한 올인은 병든 무서운 확신 속에 은거한 나를 양지로 끌어 냄에 있다. 영적 자폐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나를 당신은 오늘도 사람 속으로 내 던졌다. 좋은 사람들 - 다정다감한 사람들, 고향사람들, 친구들에게 나를 내 던지셨다.

그분의 나에 대한 올인으로, 나는 오늘 대인공포증을 다소 해소했다.
가기 싫은 곳, 서기 싫은 강단, 접속하기 꺼린 친구.
거기, 그 시간, 그 사람들에게서.


당신은

오늘
당신의
올인은

나에
대한
당신의
구원을
들켰다

들킨
당신의
머리카락이
꼭꼭
숨고픈

양광에
노출
시켰다

그래도 사람이다.
사람.

당신이
나를 위해
다말처럼 변장한
사람, 사람, 사람들이

불편해도
몸 섞어
당신의 구원
그 대(代)를 이어가게 하시려는

윤리도 없는
당신의
절대 고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