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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봄에

2011.04.07 23:19

김성찬 조회 수:694 추천:50

영혼일기 696: 봄에
2011.04.07(목)



봄에


마이크만 쥐어주면
확성기를 망가뜨리던
메아리 없는 구령만을 핏대 세워 발하다가
자기도 귀 먹고, 눈도 먼
돌봄 센터
된소리 나팔수가


귀먹고, 눈 먼 이들과 함께 한 일생에
목청 돋울 일 밖에 뭐가 있었겠느냐며

귀 뚫리고, 눈 훤한 세상을

청중 삼는 화사한
잔결꾸밈음^이고 싶었다며

얼고, 마른 헛헛한 세상에서
한 평생 연마한

피를 토한 발성법을
홀로 탓하다가

봄에
볕 낀 영창이 절로 열린
한 컷 삽화 같은
봄 창가에 기대어

귀머거리도 듣는 뇌성벽력 대신

나직이 속삭이며 대지를
촉촉히 분무하는

봄비의 가는 몸말에

들을 귀 된
마른대지의
천지에 가득한 별난 환호성을
귀로
듣는다.

처마 끝, 거꾸로 생을 매달아
혹한에 구사일생한 한기를
온몸으로 녹이는

한 줌 봄볕에
알알이 살아 오르는
아지랑이 군무(群舞)로
말랑말랑해지는 동토(凍土)의 기이한
생동감을
눈으로
본다.

차고 거친 옥타브를 높이며
이목(耳目)없는 동장군을 무장해제 시키려다가
제풀에 겨워 노곤해진
눈귀 먹은 나팔수의

눈귀 열린
봄에

_____
주(註) ^ 잔결꾸밈음 -모르덴트((獨)Mordent) 주요 음에서 그 아래 2도 음을 거쳐 다시 주요 음으로 되돌아오는 장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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