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 대게 세상
2012.10.15 23:59
영혼일기 1096: 대게 세상
2012.10.15(월)
대게 세상
내 신상을 털어 귀빠진 날을 확인한 후
내 귀에 언제나 솔깃한 원족(遠足)을 기도(企圖)했노라며
험산 준령을 넘어 큰 바다로 나가서
대게나 함께 맛보자는 은밀한 전통을 받고
생각지도 않은 과분한 도모(圖謀)에
당혹스럽고 멀쑥해진 심사로 따라나선 대게 행차
금쪽같은 대게가 밀물처럼 밀려든 거한 밥상 앞에서
함께 대게를 나누고 싶었다는 말을 재차 들으며
대게만이 아닌 대게가 전하는 말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는
이내 감춘 대게의 눈빛을 접한다
철갑을 두른 대게 껍질처럼
험한 세파를 견뎌내느라 철옹성처럼 단단해진 모진 심사를
불 칼에 확 녹여 마디마디 조각 낸 대게의 속살처럼 열어젖히며
내밀하고 입에 단 대게 속살 같은 속내를
심해 조류하고도 나누지 못했던 골수에 찬 속말을
벌린 각골 사이로 게 속살 빼내듯 쏙쏙 뱉어 놓는다
방파제를 타고 넘는 거친 해일 소리를 듣는다
천년 응어리진 마리아나 해구 파도소리를 듣는다
홀로 견고해 질 수밖에 없었던 외진 시련에 대해
수압에 눌려 공중 부양할 수 없었던 진실이
제 살에 들어 박힌 핏빛 앙금에 대해
두발로 걸을 수 없어 온몸이 다리 된
넋잃은 횡보橫步 그 연유에 대해
순백의 설원을 펼치듯
제 가슴 열어 밥상 가득 채운 백색 진실을
쓴 입에 반찬 삼아 토해 냈다
한 식경이 흘러
한 입 가득 채운
꽉 찬 진실이 선사한 포만감에 젖어
살로만 꽉 찬
대게 속처럼 가득한 고단백 영양 밥상을
활짝 가슴 연
대게의 찬연한 형광 빛으로
회색 온 누리를 환히 밝힐 순결 밥상을
세상 앞에 차려 놓는
대게 잔치 한마당을 함께 펼쳐 보자며
허허로운 지갑을 죄다 열어 젖혔다
한 바다
대게 세상을
다 사들일 요량으로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5 | 1024: 해미海尾 에서 | 김성찬 | 2012.07.13 | 757 |
104 | 산책 | 김성찬 | 2007.11.05 | 755 |
103 | 1329: 고마웠어, 아지야 ♡ 2013/06/20/A.M10:50 [6] | 김성찬 | 2013.06.20 | 719 |
102 | 772: 詩/ 예쁜 말 | 김성찬 | 2011.08.14 | 710 |
101 | 770: 詩/ 휴가 | 김성찬 | 2011.08.11 | 707 |
100 | 955: 축시-여호와의 싹, 예수제자교회 | 김성찬 | 2012.03.25 | 696 |
99 | 797: 3/12 부디, | 김성찬 | 2011.09.10 | 696 |
98 | 696: 봄에 | 김성찬 | 2011.04.07 | 694 |
» | 1096: 대게 세상 | 김성찬 | 2012.10.15 | 692 |
96 | 1092: 맨드라미 | 김성찬 | 2012.10.11 | 690 |
95 | 997: 사랑, 그 무례함에 대하여 | 김성찬 | 2012.05.13 | 690 |
94 | 716: 산책 길에서 [2] | 김성찬 | 2011.05.05 | 688 |
93 | 1030: 천 길 135km | 김성찬 | 2012.08.02 | 685 |
92 | 965: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 김성찬 | 2012.04.09 | 685 |
91 | 751: 詩/ 태풍 메아리 | 김성찬 | 2011.06.27 | 679 |
90 | 736: 詩/ 빈 배 2 | 김성찬 | 2011.06.06 | 678 |
89 | 725: 속내털기 | 김성찬 | 2011.05.17 | 669 |
88 | 943: 하늘 소리 | 김성찬 | 2012.03.01 | 666 |
87 | 1085: 고향은 벅차다 | 김성찬 | 2012.10.04 | 663 |
86 | 697: 처음처럼 | 김성찬 | 2011.04.08 | 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