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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 슬픈 밥이

2013.01.07 15:20

김성찬 조회 수:485 추천:23



영혼일기 1174: 슬픈 밥이
2013.01.07(월)


슬픈 밥이


밥이 슬퍼
밥을 푸다가 떨 군 눈물 한 방울
내 여윈 몰골은
슬픈 밥이 만든 자화상

밥 앞에서
밥에게 부끄러운
내 안에 도사린 수치심을 본다

서럽다

수고의 열매를 훔친
나를
고발한
깨알 같이 연대한 밥알들이
날 서럽게 하는 밥이

밥 한 술 입에 떠 넣지 못한 채
수치심에 떨 군 고개

턱 밑에서

밥 달라고 애원하는

미물 아지와 눈을 마주친다

삼백 예순 날
오직 한 일이라고는
주인 보고 반기는 꼬리 흔든 일 밖에는

쌀 한 톨, 물 한 모금 생산해 본 적이 없는
저 무노동 노조원이
내 밥까지 달라고 아우성이다

밥이 슬퍼
울컥댔다가
무(無)노동 유(有)임금을 부담 없이 즐기는
미물 아지의 살랑대는 꼬리에서
영감이 번뜩인다


꼬리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일평생 호사를 누리는 저 미물처럼

당신 앞에
지렁이 같은 나도

당신 앞에서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당신 곁에서 몸을 뉘는 것만으로도
당신 품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나도
밥을 기쁘게 할 자격이 있다는
좋이, 그렇다 하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낸다
나도
밥 먹을 용기를 얻는다

갑자기
밥알들이 춤을 춘다
밥알들이 산소처럼 하늘을 난다
밥이 밥 되어 내게로 온다
나풀나풀 하롱하롱
살아 오르는 식욕

되살아오는 
땀 냄새 없고 

해산의 고통도 없이
당당했던
하늘 당신도 보시기에 좋았던

에덴의 밥상

썩은 생선 대가리나 찾아 헤매는 선창가 갈매기 떼처럼
염려 근심의 밥을 구하는 노역보다도

단지,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