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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 묵시(黙示)의 계절에

2013.02.22 21:12

김성찬 조회 수:448 추천:19



영혼일기 1207 : 묵시(黙示)의 계절에

2013.02.22(금) 

 

 

묵시 (黙示)의 계절에


 

윗목을 덥힌 지구 온난화로

극점에서 내 몰린 정수리의 한기를

우주로 토해 내지 못해 회군한 한랭전선의 기습으로 

냉가슴 앓게 된 금수강산엔

전통으로 즐기던 삼한사온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한반도 신() 계절일기 삼한사냉(三寒四冷)

공룡조차 도태시킨 빙하기가 재 도래한

날 선 한기로 죄다 서슬 퍼런

어느 한 날에

 

북극곰처럼 치장하고 아파트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선 순간

 

중력의 법칙 따라 설치 된 배수관이 뭔가에 막혀

범람한 물줄기가 시류를 투영해

살얼음판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무슨 악한 것이 남의 몸에 파고들어 순리를 거역 하는가

괘씸한 생각을 품고 한나절 외출했다가 돌아 온 을씨년스런 해질녘

누군가 배수관을 뚫느라 헤쳐 놓은 내장들이 널브러져 있다

 

가만가만 다가가다가 뭔가 들킨 듯 뒷걸음을 친다

 

간빙기를 맞은 배수관 옆에 수북이 쌓인

배수관 금형 같은 얼음 원통들

물관을 역류시킨 투명한 얼음 몸통엔 그 어떤 이물질도 끼어 있지 않다.

비벼 끈 담배꽁초도, 토해 낸 라면 찌꺼기도, 닳고 해진 걸레 조각도,

없다.

 

물을 막아선 건 순전히 물이었다.

물 뿐이었다.

얼어붙어 본색을 드러낸

물이
제 물길을 막아 버렸다

 

텅텅 통통

손들어 주먹 쥐고

내 가슴을 두드려 본다

비운 듯 꽉 찬

얼음 원통이다

 

병원 순례로도
이유를 알 길 없었던 고질병
내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을

발 견 했 다

 

구역질나는 내 일상이란

너와 저 세상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를 막아선 건

저 빙괴(氷塊)

저 얼음덩이 보다 더 단단하고 냉담한
내 심사에서 기인했음을
눈 치 챘 다

 

제 물길 제 몸으로 막아 선

역류하는 생의 낭비를

얼어붙어

일깨워 준

묵시(黙示)의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