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는 수고
2007.11.20 18:00
헛되지 않는 수고
때론, 필연은 우연이란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필연적인 우연한 만남.
무너져 내린 성지(聖地) 에베소 교회.
그 폐허더미 속에서,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실로 필연적인 우연이었다.
파란 눈의 여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제임스 게일 입니다. 그분은 조선 선교사였지요. 그러니까 1886년 언더우드 선교사 뒤를 이어 당신네 나라 한국 땅에 복음 전파를 위해 들어 가셨었지요. 장로교 연동교회에 시무하셨구요. ”
그리고 우리는 이내 헤어졌다. 그들 부부와 함께 찍은 한 장의 스냅 사진만 남긴 채.
그것은 사실이었다. 공적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된 첫 선교사 언더우드를 뒤이어 한국 땅을 밟은 여러 선교사들 가운데 게일 제임스 스카스(Gale James Scarth) 선교사가 있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이 미국 견학을 갔다. 우리는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이라고 부른다. 바로 그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견미단 일행과 동승한 기차 속에서, 조선을 알게된 청년이 바로 게일 제임스 스카스(Gale James Scarth)였다. 이내,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드디어 1888년(그 손녀딸이 기억하는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선 땅을 밟았다. 제물포에 도착한 게일 선교사는 한국어를 배우며 순회 전도를 시작했고, 그러다 한때 부산에 머물면서 데이비스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기도 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최초의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던 존 헤론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존 헤론의 미망인 헤티와 결혼을 하였고, 순교한 선배 선교사의 두 딸을 키우면서 조선선교의 장을 활짝 열어갔다. 그는 문인으로서 수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 「코리언 스케치」라는 책은 구 한말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그 책은 증언한다. “나는 그 이후로 노란 개만 보면 군침을 흘렸노라.” 그렇다. 그는 조선의 개고기까지 사랑한 토종(?) 선교사였다. 또한 그는 야소교 회보의 주필을 비롯 각 기독교신문에 관여했고, 예수교 서회의 문서활동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혁혁한 공헌을 남겼다. 한 예로 『천로역정』의 원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인바 우리말로는 『순례자(Pilgrim)의 여로(Progress)』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천로역정』이라고 이름하여 이 후 모든 번역본들이 이 제목을 취해왔다. 그리고 그는 서울 연동교회 목회를 하면서 현 정신여학교와 경신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평양신학교 교수 활동도 했다. 젊었을 때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인을 보고,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워오다가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간 게일 선교사. 그는 1937년 별세하였지만,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이용남, 선교사 열전 한국을 사랑한 젊은이(13) 조선을 품은 그리스도인 - 게일 선교사)
필자는 몇 해 전 소아시아 지역(터키) 일곱 교회를 돌아보고 왔다. 바로 그 폐허더미 속에서 그 교회들의 몰락의 이유와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있던 순간, 이상과 같이 우연히 게일 선교사의 손녀와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뜻밖의 감격적인 만남은 이런 영적 통찰을 제공했다. 그것은 성지 투어도, 성지 답사도 아닌 나에게는 성지 순례였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 에베소 교회는,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복음의 창조적 생명력을 억누를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 에베소는 영원하다. 에베소 교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하나, 주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제자 제임스 게일. 그 손녀딸이 에베소 교회 그 폐허더미 속에서 듣게 된 조선 성지 순례단원들의 그 우렁찬 찬송소리. 그녀가 느꼈을 영적 감동과 확신케 되었을 진리의 말씀.
그 밤, 베갯잇을 적시며 나는 이내 이 말씀을 떠 올렸던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전서 15장58절).”
때론, 필연은 우연이란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필연적인 우연한 만남.
무너져 내린 성지(聖地) 에베소 교회.
그 폐허더미 속에서,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실로 필연적인 우연이었다.
파란 눈의 여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제임스 게일 입니다. 그분은 조선 선교사였지요. 그러니까 1886년 언더우드 선교사 뒤를 이어 당신네 나라 한국 땅에 복음 전파를 위해 들어 가셨었지요. 장로교 연동교회에 시무하셨구요. ”
그리고 우리는 이내 헤어졌다. 그들 부부와 함께 찍은 한 장의 스냅 사진만 남긴 채.
그것은 사실이었다. 공적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된 첫 선교사 언더우드를 뒤이어 한국 땅을 밟은 여러 선교사들 가운데 게일 제임스 스카스(Gale James Scarth) 선교사가 있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이 미국 견학을 갔다. 우리는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이라고 부른다. 바로 그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견미단 일행과 동승한 기차 속에서, 조선을 알게된 청년이 바로 게일 제임스 스카스(Gale James Scarth)였다. 이내,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드디어 1888년(그 손녀딸이 기억하는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선 땅을 밟았다. 제물포에 도착한 게일 선교사는 한국어를 배우며 순회 전도를 시작했고, 그러다 한때 부산에 머물면서 데이비스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기도 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최초의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던 존 헤론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존 헤론의 미망인 헤티와 결혼을 하였고, 순교한 선배 선교사의 두 딸을 키우면서 조선선교의 장을 활짝 열어갔다. 그는 문인으로서 수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 「코리언 스케치」라는 책은 구 한말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그 책은 증언한다. “나는 그 이후로 노란 개만 보면 군침을 흘렸노라.” 그렇다. 그는 조선의 개고기까지 사랑한 토종(?) 선교사였다. 또한 그는 야소교 회보의 주필을 비롯 각 기독교신문에 관여했고, 예수교 서회의 문서활동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혁혁한 공헌을 남겼다. 한 예로 『천로역정』의 원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인바 우리말로는 『순례자(Pilgrim)의 여로(Progress)』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천로역정』이라고 이름하여 이 후 모든 번역본들이 이 제목을 취해왔다. 그리고 그는 서울 연동교회 목회를 하면서 현 정신여학교와 경신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평양신학교 교수 활동도 했다. 젊었을 때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인을 보고,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워오다가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간 게일 선교사. 그는 1937년 별세하였지만,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이용남, 선교사 열전 한국을 사랑한 젊은이(13) 조선을 품은 그리스도인 - 게일 선교사)
필자는 몇 해 전 소아시아 지역(터키) 일곱 교회를 돌아보고 왔다. 바로 그 폐허더미 속에서 그 교회들의 몰락의 이유와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있던 순간, 이상과 같이 우연히 게일 선교사의 손녀와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뜻밖의 감격적인 만남은 이런 영적 통찰을 제공했다. 그것은 성지 투어도, 성지 답사도 아닌 나에게는 성지 순례였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 에베소 교회는,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복음의 창조적 생명력을 억누를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 에베소는 영원하다. 에베소 교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하나, 주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제자 제임스 게일. 그 손녀딸이 에베소 교회 그 폐허더미 속에서 듣게 된 조선 성지 순례단원들의 그 우렁찬 찬송소리. 그녀가 느꼈을 영적 감동과 확신케 되었을 진리의 말씀.
그 밤, 베갯잇을 적시며 나는 이내 이 말씀을 떠 올렸던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전서 15장58절).”
댓글 2
-
강남철
2007.11.21 17:31
-
김성찬
2007.11.21 22:34
피의 권능입니다.
마19장 27절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아오니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반문 했을 때, 28절에 주님께서 열두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할 권세와 영광을 주시겠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서 30절에 먼저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도 있음을 일러주십니다.
모든 것 다버리고 주를 좇았지만, 이 땅에서 그들은 종래 목숨까지 주를 위해 버려야만 했습니다. 기쁨으로, 그들은 모두 순교했고 그 순교로 영광을 얻었습니다. (가룟유다는 먼저된 자였으나 탈락자가 되었습니다.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이지요. )
우리는 버렸다고, 할만큼 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버릴 것이 많고, 못한 일이 많습니다.
죽음으로 영광을 얻는 십자가의 의미를 입으로만 외치며 삽니다만 삶은 너무도 미진합니다.
주여, 내 눈을 밝히사 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살게하옵소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 | 대못박힌 이 발뒤꿈치 뼈를 보라! [2] | 김성찬 | 2008.05.06 | 5084 |
21 | 참 부모 되기-parenting | 김성찬 | 2008.05.05 | 3427 |
20 | '어린이의 이해’ -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 김성찬 | 2008.05.04 | 3591 |
19 | HEVEN(천국?) 그 'A'가 빠진 이유는? [2] | 김성찬 | 2008.05.02 | 3338 |
18 | 바벨과 새예루살렘 - 그 일색(一色)과 일치(一致) [2] | 김성찬 | 2008.05.01 | 3367 |
17 | 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 은혜 [2] | 김성찬 | 2008.04.28 | 3748 |
16 |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1] | 김성찬 | 2008.04.23 | 3430 |
15 | 성지컬럼-에베소에서-헛되지 않는 수고 | 김성찬 | 2008.04.10 | 3434 |
14 | 우주시대-그 때에 걸맞는 양식을 [4] | 김성찬 | 2008.04.10 | 3369 |
13 | 난 베데스다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 | 김성찬 | 2008.04.08 | 3352 |
12 | 봄을 알리는 화신(花信)처럼 | 김성찬 | 2008.04.01 | 3357 |
11 | It's a gloomy night. | 김성찬 | 2008.03.12 | 3239 |
10 | 그녀의 서울 구경 제 2탄 [3] | 김성찬 | 2008.02.28 | 3458 |
9 | 숨겨진 세 쌍의 십자가 [1] | 김성찬 | 2008.02.24 | 3550 |
8 | 절대로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없는 이유 [2] | 김성찬 | 2008.02.15 | 3446 |
7 | 누가 활천 보나요? [4] | 김성찬 | 2008.01.27 | 3400 |
6 | 대선 - 그 멀고도 험한 국민통합을 이룰 기회일 수 있을까 | 김성찬 | 2007.12.11 | 3221 |
5 | 함께 갑시다 [2] | 김성찬 | 2007.11.30 | 3148 |
» | 헛되지 않는 수고 [2] | 김성찬 | 2007.11.20 | 3502 |
3 | 더한 성장이냐? 고른 확장이냐? | 김성찬 | 2007.11.19 | 3173 |
게일 선교사가 쓴 한영사전을 본 기억이 납니다. 금액이 한 십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살 걸 그랬단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보니 없더군요...
호주출신 데이비스 선교사는 4월에 입국해서 서울에서 한국말 배우고 수원 천안을 거쳐 아랫쪽으로 전도하는 도중에 병이 나서 10월에 그만 소천하고맙니다. 그러나 이 죽음도 결코 헛되지 않은게 이후 데이비스 선교사의 조카딸들이 한국 땅에 삼촌의 뒤를 이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