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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화신(花信)처럼

2008.04.01 17:09

김성찬 조회 수:3357 추천:60

봄을 알리는 화신(花信)처럼  


늘 궁금했다. 무슨 낙으로 살아가시는지. 염려스러웠다. 어떻게 살아가시는지. 안타까웠다. 한번 왔다 가는 생이 그리도 처절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녀의 안락한 삶은 8·15 민족해방과 함께 무너졌다. 북녘 땅에 진주한 붉은 세력들에 의해 소위 지주(地主)였던 그네들은 자기 땅에서 맨몸으로 쫓겨났다. 해서, 모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깊은 산 속에 틀어 박혀 살다가 6·25 동란 통에 남하(南下)했다.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빼앗기는 과정에서 깊은 충격을 받아 정신병력을 갖게된 무능력한 남편과 함께. 당연히 딸린 자식들은 전적으로 그녀의 짐이었다. 둘째는 소아마비로 제 몸을 가누지 못했고, 이 날까지 한 평생을 노상에서 푸성귀를 팔아 근근히 연명해 가고 있다. 거기다 더해 이젠 단단히 믿고 의지하던 몸조차 성한 곳 없이 병약해져 있다. 이렇게 내 친족 되는 그 늙은 아낙네는 목사인 내 눈에도 소망 없는 마른 고목 나무일 뿐이었다.  

늘 그렇게 내 눈에 밟히곤 했던 그분을 우연히 만난 것은 따스한 봄날 어느 심방 길에서였다. 몸이 아파 그날따라 시장엘 나가지 못하고 있던 그분이 심심하다며 심방 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새 봄의 경이(驚異)

그런데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나는 내 귀를 한동안 의심했다. 그 마른 막대기 같아 뵈던  늙은 아낙네의 독백 때문에. 그것은 경이(驚異)였다.

“새 봄이 되었다고 저 마른 나무들도 앞다투어 꽃을 피어내고, 새순 내밀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나는 그분께 드리는 것이 너무도 없어 얼마나 송구스러운지…(혼잣말) / 나도 그 여성 장관들 이야기하는 것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예수 안 믿는 장관 보다 예수 믿는 내가 더 낫지. 대통령보다 내가 못하지 않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의 딸이니까. / 기계도, 사람이 만든 기계도 사람이 고치는데, 나를 친히 빚으신 당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내 병을 고치실 수 있지 않느냐며 아픈 다리를 쥐어 잡고 울며불며 한 시간 동안 간절히 매어 달렸더니, 글세 그 심한 통증이 싹 달아나 버리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신기했는지… / 나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 이렇게 기쁘고 신날 수가 없어. 너무도 감사해. 나 같은 것을 대신해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대신 당하신 주님을 생각 할 때마다. 정말 감사해. 그래 지금 나는 행복해 너무도 행복해.”  

순간, 차안에 탄성이 일었다. 여기저기서 사심 없는 아멘, 아멘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세상에나 마른 땅에서 샘물 터진다는 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구나. 고목 나무에도 꽃이 피고 새가 깃들 일 수 있다니. 우리는 이내 숙연해졌다. 나는 그동안 그녀에 대한 내 안의 절망이 민망하여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건 한편의 완벽한 신앙고백이야. 국문도 다 깨치지 못한 까막눈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저 소리들이란? 참된 경외(敬畏), 건강한 영적 자부심, 진정한 간구, 참 평안. 그 어디에 숨어있다 저리도 화사한 자태를 홀연히 드러내는고. 잿빛 체념에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산천이 깨어나고 있다. 산이 훨훨 불타 오르고 있다.

패배를 받아들이는(뒤집는) 능력

유대인은 어떻게 해서 살아 남게 되었는가? 어떤 사학자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그 대답을 요약하고 있다.
어떤 민족이 살아 남는 비밀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래, 그녀가 살아 남은 비밀은 바로 그녀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탁월한 영적 능력에 있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런 귀한 신앙을 갖게 되었느냐고? 누가 강권했었느냐고?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내 스스로, 내 발로 자진해서 그분 앞에 나아갔었노라 고. 그녀는 고단한 인생 길 그 끝없는 좌절과 낙담에 굴복해 무너지지 않고 되려, 적극적으로 맞섰던 것이다. 패배를 받아들이는(뒤집는) 탁월한 영적 능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직감하자 스스로 가장 고귀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분 앞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편 1절).

그리고 오늘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다니엘 학습법」의 저자 김동환 전도사의 글 중에 내 눈에 띤 한 구절. 종교학과 출신인 그가 여러 종교를 학문적으로 섭렵해가면서 얻은 소중한 결론 하나.  기독교의 신(神)만이 지닌 유일한 특성. 그 하나님은 ‘내가 연약할수록 날 더 귀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

그래, 그녀는 봄을 알리는 화신(花信)처럼, 우리 앞에서 당당히 증거하고 있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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