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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스페네르

2008.09.30 12:32

관리자 조회 수:16

(43) 필립 스페네르 (1635-1705년)

http://www.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5859&section=sc80

“교리보다 중생 강조”

조대준 목사

“교리보다 중생 강조”

권위 종식∙기독교적인 삶 목적

주관적 영성으로 흐를 염려있어

립 스페네르(스페네르)는 독일 경건주의의 아버지이다. 스페네르는 17세기 교권주의와 의식주의와 교리주의로 무능해진 독일의 루터교를 새로운 삶을 강조하는 경건주의를 가르치며 개혁을 시도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경건주의는 존 웨슬리를 통하여 영국과 미국에, 진전도르프를 통하여 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스페네르는 루터가 주장한 교리의 개혁으로 이루어진 독일의 루터교를 삶의 개혁으로 교회의 개혁을 완성시키고자 하였다. 오늘날 스페네르는 존 웨슬리(John Wesley)와 진 전 도 르 프 (Nicholas Zinzendorf)와 슐 라 이 어 마 허 (Friedrich Schleiermacher)를 통하여 현대 신자들의 영성에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졌다.

독일 루터교회 개혁완성 시도

스페네르는 독일 라폴쯔바일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건한 가정에서 자랐고, 스트라스부르그대학에서 성경언어학과 사학을 공부하였다. 스페네르는 대학시절에 중생과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 교수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졸업후에 스트라스부르그, 프랑크푸르트, 드레스덴, 베를린에서 목회를 하였다. 스페네르는 영국의 청교도 서적들을 즐겨 읽었고, 1659년에는 제네바의 칼빈주의 목사인 라바디(Jean de Ladabie)를 만나서 칼빈주의의 신비주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서 그는 교리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루터의 종교개혁 교리인 칭의보다는 중생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스페네르는 1675년 그의 대표작인 Pia Desideria(경건한 갈망)를 펴 내면서 독일 루터교의 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교권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게되자 그는 소그룹들을 만들어서 성경공부와 기도를 강조하면서 신자의 변화된 삶을 가르쳤다. 이런 스페네르의 노력으로 할레대학교가 설립되고, 이 대학은 유럽의 경건주의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젊은 동역자 프랑케(August Francke)가 할레대학에 오게 되면서 할레대학은 유럽의 경건주의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스페네르는 독일루터교의 개혁을 외쳤으나 분리는 원치 아니하였다.

스페네르는 구원을 칭의보다는 중생으로 보았다. 그는 독일의 루터교가 타락하고 무능한 것은 사변적인 교리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경건한 갈망에서 독일루터교의 개혁을 위하여 여섯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의 삶에 더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한다. 스페르는 성경은 교회를 개혁하는데 최고의 방편이라고 하였다.

둘째, 스페네르는 영적 제사장제도의 갱신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루터의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섬기는 사역에 다 동참해야 한다. 스페네르는 교역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없애고자 하였다.

셋째, 스페네르는 크리스천의 지식보다는 삶을 강조하였다. 기독교는 지식을 아는데 있지않고 지식을 아는대로 사는데 있다.

넷째, 스페네르는 교회에서 종교적 논쟁을 삼가하고 사랑을 더 보이라고 강조하였다. 신자는 불신자들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한다고 하였다. 스페네르는 신자는 불신자하고 논쟁하여 그들의 머리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섯 번째, 스페네르는 신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을 교육시키는데 학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경건과 영성도 훈련시켜야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여섯 번째, 스페네르는 목사들이 설교할 때 교인들이 알아들을수 없는 학술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알아들을수 있고 은혜받을수 있는 내용를 전해야 한다고 외쳤다.

스페네르의 이 여섯가지 제안은 독일 루터교회를 교리위주에서 영성위주로, 의식위주에서 경건한 삶위주로 개혁하고자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 스페네르는 자신의 제안을 좋은 목적을 위하여 내 놓았으나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그의 제안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교권주의자들은 그때까지 내려온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자 이것을 반대했고, 또한 지 않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스페네르의 주장은 잘못하며는 과격한 주관주의로 흐를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사실 스페네르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교리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주관주의로 흐르게 된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둘째, 스페네르의 주장은 교회를 분리할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네르는 독일 루터교 안에서 개혁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그를 따르는 일부 추종자들은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스페네르 가르침의 단점

스페네르의 가르침에 의하여 일어난 독일의 경건주의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첫째, 경건주의는 신자의 영성과 경건을 자라게하는 좋은 동기로 시작했지만 확고 하고 단단한 교리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반교리주의로 흐르면서 뿌리가 없는 영성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네르는 영국청교도들의 서적을 즐겨읽었다. 특별히 그는 베일리(Lewis Bayly), 펄킨스(William Perkins), 박스터(Richard Baxter), 번연(John Bunyan)의 책들을 탐독하였다.

칼빈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던 청교도들은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어도 반교리주의로 흐르지 않았으나, 루터의 신학에 근거를 둔 스페네르는 영성을 추구하면서 반교리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현대신학(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슐라이어마허가 18세기에 경건주의의 중심지인 할레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주시할 만하다. 그러므로 영성의 동굴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길을 잃지 않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경건주의는 처음에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쳤으나 결국에는 주관주의로 흐르고 말았다. 이것도 경건주의는 청교도들에게 배워야 한다.

청교도들은 아무리 신비한 체험이고 영성이라고 해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시켰다. 이런면에서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영성운동, 특별히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않는 퀘이커인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와 달라스 윌라드(Dallas Wiilard)가 리드하는 영성운동을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러나 우리는 스페네르의 영성에서 긍정적인 면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스페네르의 영성은 교권주의자들에게 굴복되지 않는 영성이었다.

교회사를 볼 때 교회의 문제는 거의 다 교역자들의 문제이었다. 그리고 교역자들 중에서 교권주의자들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 교역자의 가운을 입고 파워(power)가 주어지면 그것이 어찌나 그렇게 달콤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 교역자들이 이 맛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교권주의자로 탈바꿈을 하는가 보다. 스페네르는 이런 거룩하게 쇼하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교역자들이 교권주의자들에게 굴복하지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서 진실하게 살고자하는 영성을 보인다면 신자들의 영성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 스페네르의 영성은 삶 자체에서 나오는 영성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이론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쳤다. 그의 삶은 모든 신자들 앞에서 본이 되는 삶이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보러 나의 삶을 보고 본받으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주일동안 누가 우리도 모르게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찍는다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19세기 영국의 선교사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을 찾기 위하여 미국 뉴욕 헤랄드의 기자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가 아프리카로 파견되었다. 얼마후에 스탠리는 리빙스톤을 찾아서 정글에서 약 6개월정도 같이지냈다. 스탠리는 미국에 돌아와서 자신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리빙스톤이 당신에게 무슨말을 했기에 크리스천이 됐습니까?" 스탠리가 대답하였다. "리빙스톤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보고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이런 말을 할수 있을까? 세상은 혀로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전에 몸전체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영성을 가진 신자들을 요구하고 있다.

2005/06/16 [06:16]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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