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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용기 내도

2008.08.01 21:42

김성찬 조회 수:5

[이청준 타계] 이승우, 용기 내도

선생님 뵐 수 없다니…

2008년 8월 1일(금) 2:45 [한국일보]

이청준 선생님 영전에
선생님께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난 해 연말 무렵, 처음으로 선생님께 연하장을 한 장 보내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라 반나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가슴속에는 수많은 말들이 용솟음치고 있었지만 그 어떤 말도 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말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무력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금 심정이 꼭 그때와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서 선생님을 잃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0년쯤 전부터 새해가 되면 선생님께 세배하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번번이 찾아가 뵐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께서 넌지시 초청까지 했었는데, 생각나시는지요?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김화영 선생님께서 선생님과 저를 같이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헤어지는 악수를 하며 선생님께서는 그 은근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형, 술 한 잔 사, 하셨지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술을 얻어먹고 싶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다음날 당장이라도 선생님이 계시는 용인으로 찾아갈 마음이었는데 그래놓고도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요? 이제야 드리는 변명을 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은 만나면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신다는 걸 알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높기만 해서 감히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저의 용렬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밤새웠던 젊은 시절이 없었다면 저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소설의 영광과 광휘를 작품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소설의 길로 달려가고 싶은 들끓는 의욕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흉내도 내지 못할 그 경지에 대한 절망으로 좌절하게 했습니다.

저는 의욕과 좌절을 되풀이해서 겪으며 소설을 썼습니다. 쓰다가 글의 길이 막히면 읽고, 읽다가 길이 보이면 다시 쓰고 하면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수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제 멋대로 선생님을 스승이라고 부른다고 나무라진 말아 주십시오.

제가 가는 길의 저만치 앞에 선생님이 먼저 걸어가신다는 생각을 하면 알 수 없는 자부심으로 흥이 나곤 했습니다. 때때로 선생님과 함께 소설가로 불리는 내가 송구스러우면서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저희 소설가들을 자랑스럽게 만드신 분이었습니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과 삶에 대한 선생님의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에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불가능한 희망이지만, 선생님만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쓰고 선생님처럼 살면 된다고 주문을 외며 먼발치에서 바라보곤 했습니다.

글이 막히고 사람에게 절망하고 삶이 버거울 때, 캄캄한 밤길에 혼자 버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시대와 세태에 곁눈질하지 않고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의젓하게 걸어가신 선생님의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뵙지 않아도 저는 늘 선생님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뵐 용기를 더디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용기를 내도 선생님을 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마치 고아가 된 듯한 심정입니다. 선생님 떠나시기 전에 정말 술 한 잔 샀어야 했는데, 아니, 선생님께서 사는 술을 얻어먹으며 은근하고 다정한 육성을 더 들었어야 했는데, 술의 힘을 빌려 응석이라도 부렸어야 했는데, 고아가 된 지금에야 뒤늦게 한탄합니다.

지난 연말에 한나절을 고심한 끝에 제가 겨우 써 보낸 연하장의 문장은 단 한 줄, ‘선생님, 사랑합니다.’였습니다. 그 문장을 쓰는데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고 있던 사랑을 힘들게 고백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어쩐 일인지 눈물도 좀 나왔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왈칵 솟구치는 울음을 삼키며 다시 그 말을 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