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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김용은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2008.08.05 14:25

임재복 조회 수:995 추천:55

    최고의 유산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나아가서 자녀에게 높은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찰스 스윈돌- 부모 된 우리에게는 꼭 해야 할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복음과 영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그가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 합당한 귀한 생명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자녀를 위한 최고의 유산, 세상을 이기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믿음의 기초를 세워주십시오. [새벽종소리]

                                                                                            내가 알고 있는 김용은 목사님을 소개 합니다.



                                                                                            1.효자 목사님

                                                                                            어머니를 말하실 때는 늘 눈물지었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의지할 때 없는 전신 마비 노인을

                                                                                            모셔다가 8년 4개월 동안 대, 소변을 받아내셨고,

                                                                                            그 후에도 외롭고 소외된 노인들을 가족처럼 보살폈습니다.


                                                                                            2.스승을 공경하는 목사님

                                                                                            교단 사부이신 이명직 목사님을 맨 처음 비행기를 태워 드려 기쁘게 하신일,

                                                                                            이로 인하여 이명직 목사님의 자녀들이

                                                                                            이명직 목사님의 기념 사업회는

                                                                                            초대회장은 김용은 목사님이 해야 한다고 해서

                                                                                            선배를 세우려던 목사님들이 자녀의 뜻을 따라

                                                                                            김용은 목사님을 회장으로 세워

                                                                                            10년 동안 기념 사업회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세계적 부흥강사 이성봉 목사님 사랑을 생각하며

                                                                                            성봉선교회를 창립 하신일,

                                                                                            교단 어른들을 찾아 잘 대접하는 소문난 목사님 이셨습니다.


                                                                                            3.정의감이 강하신 목사님

                                                                                            8.15해방 직전에 고향에 내려와서

                                                                                            쌀이 강제로 공출되는 것을 보고

                                                                                            면장 책상을 뒤엎었다가

                                                                                            일본 순사에게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맞고 기절 했던 일,

                                                                                            6.25직전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님과

                                                                                            정읍 고창 일대에서 반공강연 하신일,

                                                                                            군사정부 시절 기관장 연수 교육 중에

                                                                                            한 강사가 기독교를 폄하 할 때,

                                                                                            그의 바지춤을 번쩍 들어 끌고 가신 일,

                                                                                            전두한 대통령 면전에서

                                                                                            6.25 참상의 피해자가 확실하게 집계 되지 않은 것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말했을 때

                                                                                            다음날 아침 KBS에서 6.25 피해 상황을 접수합니다. 라는 자막이 나왔고

                                                                                            전국 몇 곳에 충혼탑을 세우게 하신 정의로운 목사님이셨습니다.


                                                                                            4.돈 안 쓰고 총회장 되신 분

                                                                                            54세 1971년 총회에서 서울과 광주 지방회가 대립하여

                                                                                            7번이나 투표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교단원로들이 양쪽의 후보들을 퇴진시키고

                                                                                            새로 두 분을 천거하여 투표한 결과 총회장이 되셔서,

                                                                                            차 한 잔 안사고, 뽑아 달라고 한마디 안하시고 총회장 되신 분,

                                                                                            본인을 하나님 은혜로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총회장이 되셨다고 겸손하십니다.


                                                                                            5.일 많이 하신 총회장님

                                                                                            1971년 26회 총회 본부는 교단 부채로 직원들 봉급이 몇 달씩 밀릴 때였습니다.

                                                                                            이 때 전국을 다니시며 상회비를 많이 걷고

                                                                                            몇 분 장로님들의 도움으로 빚을 완전히 청산 하셨습니다.

                                                                                            70세에 고희 기념집을 만들지 않고 교단 의정사를 (1945~1993)만드신 일,

                                                                                            교단 행사표를 만들어 오늘에 계속되게 한 일은 혜안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6.나라를 구원하신 목사님

                                                                                            1971년 26회 총회장 당시, 기도 중에 북한의 재침략 환상을 보고,

                                                                                            당시 각 교단 130여 총회장들을 모아 구국 기도회를 조직하고 삼

                                                                                            각산 임마누엘 수도원에서 1972년 정월 첫 주간에 금식 기도를 했는데

                                                                                            그후 외신보도에 의하면 북한이 그 주간에  탱크를 몰고 한탄강을 넘어올 계획이었으나,

                                                                                            60년 만에 처음으로 얼지 않아 넘어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7.四無를 실천하신 목사님

                                                                                            6.25 때 가족들이 22명 순교당하고, 7번 죽을 고비를 넘겨서 인지,

                                                                                            물질에 깨끗하셨고, 남김없이 다 쓰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생 無통장, 無토지, 無주택, 無패물을 고집하고 실천하셨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 흥남에서 사업자하여 벌었던 재산을 다 헌금하시고,

                                                                                            은퇴할 때 교회에서 받은 퇴직금도

                                                                                            순교지 기념 교회와 군산시 기독교 회관 건립을 위해 다 헌금하셨고,

                                                                                            마지막 살던 집도 중동교회가 뜻있게 쓰도록 헌납 하셨으며,

                                                                                            천국에 가시면서 각막과 시신도 전북대 의대의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 하셨습니다.

                                                                                              


                                                                                            8.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신 목사님

                                                                                            하나님이 여성은 도자기로 만드셔서 질이 좋다.

                                                                                            (7-8년 더 살고, 교도소에도 남성의 1/20) 의리도 있어

                                                                                            남편이 나병이 들면 함께 소록도에 가고 예수님을 끝까지 지킨 자들이 여성이다. 

                                                                                            40-50년 전부터 여성 국회의원, 여성 사장, 여성 파이롯트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성결교단에서 제일 먼저 여성을 장로 시키는데 주역이 되셨습니다. (김옥선 장로)

                                                                                            여성 인력을 활용하여 나라 발전과 교회발전에 활용하도록 하셨습니다.


                                                                                            9. 고아의 아버지

                                                                                            해방 직후 정읍 고아원을 설립하셨고,

                                                                                            군사 삼성애육원에 이사장으로 45년 동안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셨고,

                                                                                            고아들에게 개인 통장을 만들어 용돈을 넣어 주셨습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한 그 중에는 육군 군종감도 나왔습니다.

                                                                                            고아들의 머리를 항상 쓰다듬어 주면서 “잘되고 잘될 사람이다”(요삼 2절) 축복하셨습니다.


                                                                                            10. 장애인의 친구

                                                                                            전라북도에 맨 처음 맹아 학교와 농아학교를 세우셨고, 기초를 확립하셨습니다.

                                                                                            지체장애인들과 식사하다가 흘리면 그것을 주워 먹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한 나병환자와는 친구가 되어 그 아들을 수년동안 돌보기도 했습니다. 

                                                                                            군산 시민 가운데 장애우들은 목사님에게 찾아와 속사정을 털어놓으면

                                                                                            눈물로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 이셨습니다.


                                                                                            11. 재소자의 후견인

                                                                                            교도소를 방문할 때 마다 맛있는 콩떡을 만들어 가셨고(호박과 밤을 넣어) 세족식때는

                                                                                            발등에 입을 맞추고 눈물로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강단에 들어설 때마다 기립 박수를 받으셨습니다.

                                                                                            교정 자문으로 40년 봉사하신 것이 인정되어 교정대상을 받으셨습니다. 

                                                                                            한때는 재소자들이 출감하여 집을 같이 사용함으로 가족들은 불편이 많았습니다.


                                                                                            12. 목회에 전력질주 하심

                                                                                            중동교회를 개척하여 은퇴할 때 까지 38년 동안 새벽기도를 안 빠지셨고,

                                                                                            1,200평 교회를 건축하시고

                                                                                            1300명 장년 출석 교인의 숟가락까지 다 세실 정도로 교인들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한번은 군산시 현역 국회의원이 차기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전적으로 밀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목사님은 목회만 하시겠다고 거절 하셨습니다.


                                                                                            13. 명문가정을 만듬

                                                                                            둘째동생은 작은 아버지께서 마을 이장으로 소를 밀도살 했을때 대신 교도소에 가신 효자이시고,

                                                                                            셋째 동생은 자랑스러운 ‘성결인 상’을 받으신 총회장,

                                                                                            처가를 포함한 직계 목사와 사모로 25명을 배출한 일은 명문가정을 만드는 데,

                                                                                            축복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김용은, 김용칠, 김용례,  김영곤, 김헌곤, 김신정,  김혜순, 김곤, 김혜숙, 김명곤

                                                                                             김재곤,  장중렬, 장창렬, 장화자, 장봉렬, 장만렬,  박상준, 박병주,  유영일,

                                                                                             김태곤, 김진오,  옥주호, 옥형호, 옥병호, 옥명호 송제혁 고성학 서동환)


                                                                                            14. 목사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를 받아 나갔을 때

                                                                                            교회 장로님께서 인도자에게 이 젊은이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인도자 김근주 권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과 김창호 목사님

                                                                                            (서울증가교회 개척자 신억년 전도사님의 아들)이 목사님은

                                                                                            보통사람의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에 대하여 한 번도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15. 목사님은 자리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자리를 얻으신 분이십니다.

                                                                                            교단에서 조직적인 정치활동을 하지 안했습니다.


                                                                                            16. 마지막이 더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은 10%가 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 중에 마지막이 아름답게 끝나는 사람이 매우 귀합니다.

                                                                                            목사님은 살아 생전에 일을 많이 하셔서 성공하신 분일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성공하신 분이십니다.

                                                                                            미국에 사는 손녀딸이 환송예배에 참석한 후

                                                                                            할아버지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일들을 이루셔서 보다도 마지막 시간들을 자녀손들의 사랑과 섬김을 받으시면서

                                                                                            하나님 나라로 입성 하신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동교회 성도님들의 지극한 사랑으로 환송예배가 드려졌다는 것은

                                                                                            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으신 마지막이 아름다우신 분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