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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목민

2010.08.10 00:28

오해춘 조회 수:975 추천:44



 

새로운 유목민

 

거리개념이 이처럼 하찮게 취급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월 스트리트가의 중역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일주일이면 나흘을 제트기를 타고 출근한다. 캘리포니아의 목장 주인들은 매일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연안 집에서 임피리얼 계곡에 있는 목장까지 120마일을 날아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귀가한다.

 

시카고대학의 철학자 메키온 박사는 뉴욕에 강의하기 위해 한 학기 동안 매주 한 번씩 편도 1,000마일의 거리를 통근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어떤 청년과 호놀롤루에 사는 여자친구는 주말마다 교대로 태평양 2,000마일이나 가로질러 가 데이트를 하고 지낸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연간 1만 마일을 주행하며 평생 300만 마일 이상을 이동하며 생활 한다. 1인당 공간 이동량의 증가는 말을 타고 다니던 1900년대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38시간 동안 2,000마일의 거리를 자동차로 달려 보았다.

 

 나에게도 짦은기간 동안 광주 모대학에 겸임교수 시절이 있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강의 자료를 챙겨 새벽공기를 가르며, 냅다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4,50분이면 광주에 도착하여 오전강의를 마치고 곧장 천안에 있는 모대학교에 오후강의를 하고 남양주 집으로 귀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짧지 않은 거리를 2년씩이나 다녔으니, 생각해보면, 드라이브하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던 갔다. 근데 넓디 넓은 대륙에 살면서, 자동차로 대륙을 횡단하는 꿈 쯤은 늘 꾸고 있다면 사치일까.

 

올초 사랑하는 형제가 시카고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에 한걸음 달려 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워낙 춥고, 도로사정이 만만하지 않다는 소식 때문에 추운겨울이나, 이른봄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기라 쉽사리 집을 나서는 일이 망설여졌다. 마침 박사학위를 받고, 뉴우런 사이언스를 연구하고 있는 조카가 MIT에서 연구과정을 마치고, 시카코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도시 어반 샴페인 대학교의 연구원으로 초빙을 받았다기에 겸사 겸사해서 시간을 내었다.

 

시카코야 말로, 미국의 3대도시로 오대호를 끼고 하늘을 찌르는 기상천외한 모습의 마천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건축학자들이 으당 학습하는 도시로 손을 꼽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가는 길이기에 시카고 거리도 거닐고, 마천루에 올라 도시풍경도 감상하고 싶은 생각에 서둘러 출발했으나, 군데군데 속도위반 경찰이 유난히 많이 보여, 우리가 시카고에 다다른 것은 4시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였다. 시카고 도시는 정말 아름다웠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우뚝솟은 다운타운은 지나치게 넓지 않은 지역에 보석처럼 세워져 있었다.

 

형제와 약속시간을 맞추어 시카코 다운타운에 진입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서울 못지 않은 자동차 정체현상만 보면 서울 한복판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 였다. 형제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 형제를 반갑게 만났다. 때가 저녁이고, 시장한 때라 일단 우리는 시카코 한 복판에 있는 근사한 불루 오션(Blue Ocean) 일식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대부분 백인손님들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까스로 우리 일행의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친절하고, 단정한 웨츠레스의 호의를 받아 풍성한 스끼다시며, 싱싱한 사시미, 각종 바다회감을 얹어 미감을 돋구게 했던 스시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일행은 시카고 외곽도로를 타고 잠시 야경을 감상하게 되었다. 주변엔 오대호 호수가 둘러 싸여 있었고, 화려한 불빛아래서 물놀이를 즐기는 젊은이, 호화찬란한 요트, 화려한 레스토랑의 샤인, 거기다 마천루에서 뿜어내는 위용, 그야말로 시카코의 야경은 우리들의 동공을 확대하게 했고, 우리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시카고의 겉모습만 훑고  형제가 안내한 곳은 시카고 한인의 삶의 터전 한인타운이었다. 거리거리 한글간판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고, 그곳은 동족들의 숱한 애환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한인타운을 거닐다가, 고국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한인이 운영하는 커피샾에서 해후의 정을 나누며, 그 동안의 안부를 소상히 나누었다. 그 동안 겪었던 미국생활, 앞으로 각오하며 겪어야 할 미국생활, 이왕 미국에 왔으면, 도전하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젊었을 적에 해볼 수 있는 기회이며, 큰 자산이 되지 않겠느냐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되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니, 새벽 1시가 다 되어 아쉽게도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람선이라도 승선해서 시카고 야경을 함께 감상하고 싶은 생각 간절했지만, 무엇보다 촉박한 일정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건너와 3년이나 형제처럼 지내던 감리교 목사 가정이 시카고로 임지를 찾아 왔지만, 하지 말아야 할 전화질만 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충분한 일정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올 적에 18시간을 운전을 했던지라, 우리는 졸음운전으로 그 넓디 넓은 고속도로를 지그제그로 달려 보는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눈꺼풀 때문에,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침대처럼 펼쳐진 시트에서 잠을 자는 1시간은 꿀맛은 저리 가라였다.  90번 유로도로를 따라 인디에나주, 오하이오주를 거처, 필라델피아주, 메릴렌드 주,웨스트 버지니아주를 내리 달려 집에 도착하니 밤 9, 20시간을 운전하고 온 셈이었다.

 

그  그 후 나는 부족한 잠을 며칠간 깊게 잘 수 있었다. 그래도 만나고 싶고, 보고싶은 사람을 보고오니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청춘남녀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데이트에 빠져 지내는 가보다. 자동차의 왕국일 수 밖에 없는 미국의 도로망은 마치 대륙만큼의 큰 장기판, 바둑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 다듬어진 고속도로 위를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이곳 저곳 넘나들며,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현대인의 이동현상은 또 하나의 산업사회의 현상으로, 새로운 유목민으로 현대인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