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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말씀이 말씀인 것은, 적시에 만인의 만사에 적합한 말씀이 되기 때문이라고, 재삼 확인케 되는 말씀을 대합니다. 우리가 레마라고 부르는.

먼데, 제주선교 60주년 기념교회 공동설립 헌당예배 마치고 돌아 와, 홈피를 열었더니, 가슴 저린 말씀 사건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단숨에 읽어냈지만, 가슴이 아파 창을 닫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나도 묻고 싶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자신의 실패가 생각나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하나님의 성전터로 선택하게 하셨을까?

이는 덧난 상처, 더 덧나게 하는,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서라는 잔인한 인본주의적 형벌이 아닌가?

알 수 없는 천일야를 보내고 있는,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데,

"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하나님이 인간(나)을 만나 주시는 곳입니다.
재앙이 끝나고 은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불로 응답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곳입니다.
새로운 중보 기도 헌신자들의(그 사람을 포함해서) 기도에 불로 응답하시는 곳 입니다."

오늘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발가벗고 선 영혼을 대합니다.

품어야 하는 생명,
자신을 다 내줘야 품을 수 있는 생명,
품을 수 없어도 품어야 내야만 하는 만 신 창 이.

나는,
신적 수동태로 가시를 품은 '선유도 아이들' 영혼에 '비친,'
인간적 능동태로 꼴사나운 인간들 죄다 매다 꽂는 '나.'의 몰골이,
속상하고, 부끄러워,
이렇게 악담을 쏟아 냅니다..

바보, 멍청이, 쪼다 선유도 아이들.

넌, 밸도, 자존심도 없냐?
그래서 넌 섬에서 살지?
탈출구없는 도둑고양이를 어쩔 수 없이 끌어 안고 잠들어야 하는,
그 형벌(?)의 섬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