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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울렁울렁, 북경반점(北京飯店)에서

2007.11.03 14:04

김성찬 조회 수:698 추천:37

울렁울렁, 북경반점(北京飯店)에서


음습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다 맘 다잡아먹고 밀고 들어 선 땟국 자르르한 북경반점(北京飯店). 달랑, 탁자 두 개가 온 살림 밑천인 을씨년스런 홀엔 일생(一生) 단 세 번의 정결 예식만을 치른 듯 꾀죄죄한 몰골로 졸고 있는 주모(主母)와 사환. 덜컹거리는 탁자 위엔 오대양 육대주가 질펀하고 저 칸막이 넘어 밀실에서는 쉬파리들이 쉬슬고 있을 터이고 …… 느글거리는 내장. 나가 말아 울렁울렁 점화된 갈등은 불꽃같이 목구멍까지 타오르는데 순간, 주방 칸막이 개구멍을 뚫고 半대머리된 사내가 곡예사처럼 넘실넘실 찌그러진 양은 쟁반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 무릎을 꾸푸린 채 온몸을 낮추어 사력을 다해 세상 속으로 틈입해 들어오고 있다 한 그릇 자장면에 명운(命運)을 걸고 낮은 포복으로 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고 있다.

눈을 돌려 자장면 면발을 벌건 춘장에 버무르다
一瞬, 벌건 피를 본다
핏빛 면발
피로 삶아 낸 핏빛 면발
피다, 피!
땀으로도 모자라 피범벅 된 벌건 자장면
그 피 터진 삶의 적혈구 덩어리들
피된 땀에 덕지덕지 절은 저들의 핏빛 몰골

꾀죄죄하다니, 지저분하다니, 감히 쉬파리라니……

아니, 아니다
고소한 저들의 땀 냄새. 순결한 저들의 백옥(白玉)같은 손.
동맥경화 없는 저들의 정갈한 피. 무죄다 무죄.
저들은 무죄다.  

세상이,
피비린내 나는 저들의 속적삼을 기피하는 세상이
참된 미추(美醜)도 분간 못할 만치 가치전도(價値顚倒)된 사시(斜視)인
내가, 속화(俗化)된 내가
유죄다, 유죄(有罪).

순간, 내 안의 오욕질이 뚝 ― 멈춰지며 휙, 식욕(食慾)이 돈다
동시에, 내 안 속울음이 확 솟구쳐 올라 눈물 되어 식도를 타고 흐른다
따스하다 피처럼 따스하다

오메, 이 달짝지근하고 쫀득쫀득한 면발
눈물 젖은 빵처럼 피에 적신 면발은 참 고소하다

정말 고소하다
진짜 고소해서 눈물겹다
하염없이,
시리도록,
눈부시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