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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이겨낼,

말씀 한 모금-에덴 이야기 (19) 2020.03.28(토)

 

에덴 살기(2) 기독 신앙 윤리와 기풍을 진작하기. 

 

찬송/ 96(새) 94(통) 예수님은 누구신가

말씀/ 창 2장 8,15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2:8)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한 조각가의 집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자기가 힘써 빚은 걸작품과 자기를 닮은 개구쟁이 아들 중에 누구(어떤 것)를 구해 내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생명 없는 조각품을 건져내리라 상상치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생명 없는 조각품이 아닙니다. 공중 나는 새보다, 들에 핀 백합화 보다 더 귀한 존재입니다.(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런 놀라운 성경의 가르침에서 인간의 권리에 대한 개념, 전 인류의 단일성 그리고 인간의 우주적인 위엄에 대한 견해와 사상이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천하 만금보다,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비아프라의 눈이 퀭한 어린 아이 하나가, 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동의를 표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한 ‘참사람’에 대한 이해로 빌레몬서에 기록 된 대로 노예를 형제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몬1:16).”

 

역사적으로도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된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 재임 시에, 성서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경적 교훈을 따르고자, 범죄자나 빚진 자들의 이마에 인(印)을 찍던 악법을 폐기하였습니다. 또한 초대 교인들의 각성과 윤리적 실천으로 영아 살해가 금지되고, 그 대신 기독교도들에 의해 고아원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8:15~1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22:22~24).”

 

이처럼 성경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그들을 염려하며 그들 편에 서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 성경에서 언제나 거듭해서 강조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적 약자들을 염려하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는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즉 그는 세상의 사고 방식, 척도, 행동 양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5:13~16).”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19,20).”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교회가 세상에 덕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백송교회는 2월 중순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자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이순희 담임목사(59)는 함께 주일(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대신 마스크를 제작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이 목사는 “코로나19로 지교회인 대구백송교회가 폐쇄되면서 신자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 모두 크게 힘들어했다”며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마스크 제작법을 봤는데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교회는 6일부터 교역자와 신자들이 모여 마스크 만들기에 나섰다. 처음에는 재봉틀도 1대밖에 없었고 솜씨도 서툴러 하루 꼬박 마스크 100개 만들기가 벅찼다. 지금은 재봉틀 6대에 1000개를 거뜬히 제작한다. 이 목사의 꿈은 1년 내내 낮밤으로 예배드리는 교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담당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동아일보, 예배는 멈췄지만 '마스크 재봉틀' 돌아가는 교회 by. 인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3.23. 03:01)

 

이상과 같은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결단과 실천은 인간의 온전한 가치를 말해주고 있는 이 창조 기사에서 기인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아름다운 고백과 행위가 말입니다. 사람이 에덴의 면류관이요,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무엇보다도 창조의 면류관이자 에덴의 문화를 창출해 내야할 건축가인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창조적 인간관에 기초한 윤리적 기풍(ethos)과 윤리(ethics)를 진작시켜 왔습니다. 

 

건강한 문화(culture)를 경작(agricuture)하여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 기독 신앙이 빚어 온 창조적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강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고등한 기독교의 윤리요, 기풍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신앙인의 자세와 일에 대해서 묵상하기.

적용/ 오늘 여기에서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찾아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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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96(새) 94(통)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자의 위로와

없는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 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