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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 선의, 논쟁

2017.02.24 08:05

김성찬 조회 수:99 추천:1

2101:
2017.02.23(목)

대선 정치판에서
뜬금없이 선의, 논쟁이 일었다.

의문이 든다.
선의,란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하나?
더군다나 약육강식의 정글 조선 정치판에서.

선의란 없다.

좌우 
그 어느 쪽도 선의가 아닌 선의로 포장한 
이기심만 있다.

자기 이해(이익)와 충돌했다 여겼기에,

촛불을 들고
국기를 들뿐

예를 들어,

공부하고 싶어 촛불을 들었다는
청소년들의 호소는,
대입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공정하게 이룰 세상을 희구하는 
이기심의 발로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주부도
제 아이들에게
차별없이 공정하게 나누는 세상을 마련해 주고 싶은 
이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출정했다.

이 의도가 <선의>인가?

이같이
자신의 이기심이 보다 선의 같이 비춰지는 경우는

자신의 이기심이 공익적일 때
자신의 이기심이 보편적일 때
자신의 이기심이 역사적일 때
이다.

이기심의 긍정적 측면일 뿐이다.

천국도 이기심 덩어리다.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는 복이 천국이다.

참, 김목사는 욕심이 없어
맞아, 김목사는 사심이 없는 사람이야

하여,
난 이땅에서도 
한 평 제대로 된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천국에 가서도 삼층천을 누리기엔 언감생심일 거다.

내가 선한가?
아니다.

덜 악할 뿐, 욕심이 바닥일 뿐
아니, 
선악의 정의가, 욕심의 색깔이 다를 뿐
달리 말해, 
내 이기심의 한계일 뿐
결국, 나는
이기심에서조차 경쟁력이 없는 품종이라는 말이다.

함부로 선의, 운운하지 말찌어다.

선의,는 
우물(well)이 아니라 샘(spring)이기 때문이다.

인의적이지 않고 천연적이다.

선의란
모든 이의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완전한 것이고,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임으로,
파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솟아나는 것임으로,

밤낮이 다르고, 시차가 다르고, 동네가 다른
이 땅엔 없는 것이다.

밤낮이 다름으로
밤은 낮을, 낮은 밤을 욕망한다.
밤낮이 다른 생물들은 욕망이 맞선 강 건너에 있다.

선의는 
그림자도 없어야 한다.
배후에 도사린 이기심.

회전한 그림자도 없는 이가
선,이다.

선의, 논쟁은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다.
빙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선(영광)에 이르지 못나니(하더니),
-성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에, 
-자크 라캉-
ㅠㅠ

2017.02.23(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