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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 룻의 향기가

2013.05.12 17:26

김성찬 조회 수:716 추천:8



영혼일기 1291 : 룻의 향기가 

2013.05.12(어버이 주일) 

 

 

특별한 헌금을 대했다.

어버이 주일 오전 예배 헌금 시간에 강단에서.

 

▼▼▼

감사헌금 

 

좋은 부모님 주심에 감사

좋은 기회, 사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 

 

봉헌금 50,000원 

 

이름 김나리

▲▲▲

 

강단에서 봉헌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두 번 놀랐다.

 

하나, 하나님께 좋은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는 헌금을, 나는 난생 처음 대했기 때문이다. 

 

어버이 주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의무적으로 지키는 주일이다. 그래서 어버이 주일에는 수평적으로 자녀가 부모에게 선물을 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좋은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는 이같은 수직적 봉헌 내용에 익숙하지 않다. 다시 말해, 눈에 뵈는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주의 명령에 우리의 의식이 고착 되어 있기에,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을 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발상은 아주 낯설다. 

 

그래서  이 발상은 새롭고, 놀랍다. 

동서고금을 통해 우리는 부모에게 드려야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며, 

그 재물을 제것 삼는 자녀들의 불효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넘쳐 흘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이 특별한 영적 상상력. 나는 이 영적 상상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에 충만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계시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이 봉헌자는 하나님의 신에 충만해 있음에 틀림없다. 내용을 수정한다. 아이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넘쳐 흘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에 충만해져 있기에, 부모님을 허락하신 그분께 감사드리고, 그 은혜에 서서 바라 본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말이다.

 

둘, 그런데 그 특별한 봉헌자가 우리 막내 나리라는 사실에, 나는 더 놀랐다.

 

아이는 부모의 부모 됨이 아닌 부모 자체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존재 됨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즐거워한 까닭이다. 부모 노릇을 잘해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한다는 말이다. 그 기본에 아이는 굳게 서 있음에 틀림 없다. 이 같은 발상은 그 아이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매우 건강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 자체만으로 즐거워하는 하박국의 신앙고백 위에 그 아이가 서 있다는 말이다. 그런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행복한 신심에서 바라 본 부모는 무조건 좋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없고, 없고, 없고 없는.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한 작고, 가난한 교회 담임 목사인 이 아비를 그의 딸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말은, 다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 아이가 위로부터 내리는 은총에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아내는 그 아이가 요즘 말씀에 충만한 상태라고 해설하면서,

아내는 한 편, 부끄럽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당당하게 받아 누리자고 했다. 

 

룻의 향기가······♬

 

나는 아이가 올린 헌금 봉투에 카메라를 들이 댔다.

향내가 난다.

그 아이가 하나님께 올린, 「좋은부모주심 감사헌금봉투」에서 

룻의 향기가 난다.

 

이방 땅에서 대를 이은 과부를 양산한 나오미가 마라(괴로움) 되어 면목 없는 귀향을 서두르면서, 

볼 낯이 없는 며느리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한다.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1:11-13)

 

러나 시어머니의 이 같이 이유 있는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룻이 이렇게 그 결단을 고백한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 17)  

 

룻이 나오미의 인본주의적인 설득을 거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때문이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는 삶의 기쁨과 가치를 룻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일이다. 여호와를 가까이함이 내게 복임을(73:28) 그녀는 알았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영에 속한 여인이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룻은 가진 것 전무한 홀시어머니를 즐거워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나니. 좋은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나리는 하나님 존재 자체를 즐거워하는 아이다. 참 복 된 아이다.   

 

, 그녀의 깊은 효심 때문이다. 노모를 고려장하는 세태에 그녀의 효는 각별 하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죽는 일 외에는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가난함도 곤고함도, 고립과 괴롬도, 늙고 병듬도, 차별과 수모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의지하는 하나님)을 자기 것 삼아 동일시(Identification)한 결단에, 그녀의 신앙-효심 정체성(Identity)이 확립 되었음을 본다. 홀시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한 정체성에서 하늘을 울리는 효심이 발해졌다. 못 가진 부모를 무시하고, 차별하고, 홀대하고, 학대하고, 외면하는 차별 문화에서는 절대로 파생할 수 없는, 화수분 같은 효심이 분출했다. 그래서 당연히 그녀는 땅에서 잘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녀는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었다. 장수와 번성, 명예와 권력, 물질적 부요의 복이 예비 된 신앙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속사의 적통을 잇는 여인이 되었다.   

 

장수의 복, 번성의 복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출20:12)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번성의 복) 땅에 서 장수(장수의 복)하리라(엡6:1-3)     

 

명예와 권력, 물질적 부요의 복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명예와 권력) 네 목의 금사슬(물질적 부요)이니라(잠1:8-9) 

 

룻의 승리는 이런 절대적인 신앙과 극진한 효심으로 이미 예견되었다이 신앙고백이 구속사의 대서사 룻기를 낳는다. 이같이 철두철미한 신앙에 굳게 선 선택은 값지고, 아름답고, 복된 결실을 맺는다. 그래 이 고백은 룻의 예견된 승리의 고백이다. 

 

나리도. 

내 난생 (내 개인적으로는 창세 이후) 처음 보는,
「좋은부모주심 감사헌금봉투」가 만인에게 증거하는.  

그래서 이미 확증 된 룻의 향기를  

그 아이에게 맛 보았다. 

 

나는 이상과 같은  

나리의  하나님께 투사 된 극진한 효심에서 우러른

「좋은부모주심 감사헌금봉투」에서 물씬 풍겨나는 

룻의 향기를 맡으며,   

그 아이의 그 믿음의 부요로 이룰 대를 이을 구속사적 복락, 

그 예견 된 승리를 미리 맛본다.

 

좋은 부모를 주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각양 좋은 것으로 

그 아이 나리에게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임을

굳게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