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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4: 나는 부자다.

2013.05.14 23:00

김성찬 조회 수:662 추천:8





영혼일기 1294: 나는 부자다.

2013.05.14(화)

 

그 어린 후배는 내가 카드로 선결재한 음식 값을 현찰로 되돌려 주며, 끝내 자신이 밥값을 치렀다.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나만 만나면 제 호주머니를 턴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나를 내버려 뒀어야 했다. 그는 내게 시래기(?) 밥도 한 번 못 사게 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다.

지나쳐서 예의가 아닌, 차고 넘쳐서 무안한 그 역습.

 

그 측은지심에서 휘발 된 후배의 막강한 위세를 어거할 심적 여력이 없는 나는, 완력조차 나보다 월등해 힘으로도, 능으로도 그의 과공비례를 막아 설 수 없었다.

 

나를 우습게 본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재정개발구조가 서로 빤해서 가정 경제 규모가 오십 보, 백보인 목회자들 사이에, 항상 자신이 밥값을 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나만 만나면 말이다. 정말 기특하나, 공정하지 못하다.

 

나는 우스운 사람이다.

 

왜 형님이, 왜 목사님이 돈을 내느냐고, 내 호주머니 사정을 염려하는 후배들의 애정 어린 핀잔을 동서사방에서 받으며, 나는 살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도 살고 있다. 그래서 살고 있다. 참 우습다. 우스워 눈물이 난다. 희극이 최대의 비극임을 내 인생이 연출해 내고 있다. 

 

다른 일례로 어느 후배는 아예 내 앞에서 일찍이 이런 선언을 했다. 앞으로 밥값과 찻값은 죄다 자신이 낼 거라고. 그리고 그는 그 다짐을 나에게 한 번도 어겨 본 적이 없다. 나는 단돈 일이만원도 내 본적이 없다. 나는 당연하게 그 호의를 누리고 있다. 그의 언약을 언약되게 하기 위해서. 허니 내가 얼마나 언약에 신실한 선배인가? 언약을 언약 되게 하기 위해 불편을 끝내 감수한 내 인내와 낯짝이 얼마나 단단하고, 두꺼운지. 그러니 내가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지!

 

그 누구는 암소 같은 눈망울을 위아래로 굴리며, 돈만 생기면 동료 목사 부부 동남아 여행을 시켜주려고 한다며, 슬픈 다짐을 내뱉기도 했다.

 

근데 그들의 공통점은 한 결 같이 가난한 목사들이라는 점이다.

빚이 한 두 푼이어야지 아끼고 자시고 하지,

빚 가운데로 걸어가는 이 짜릿함을 니들이 알아?

그들은 이런 비애(悲哀)어린 농담을 당당하게 주고받는 이들이다.

 

많이 가져서 풍성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진 것 없어도, 나눌 맘 한껏 풍족해서 풍요를 구가하는 이들이다.

계산하고, 따지고, 흔들어 보고, 벗겨 먹으려 드는 수전노는 이해 불가능한 공존의 방식이다.

 

내 지난겨울을 따뜻했다.

세상은 세기말적인 기록을 남긴 혹독한 추위에 떨었지만,

나는 무척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나는 내의를 벗은 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유달리 추위를 타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동면하는 반달곰 수준으로 겨울을 난다.

 

그런데 나는 지난겨울 참 따뜻하게 보냈다.

가볍고, 따뜻한 점퍼 덕이다. 그 누군가가 건네 준 그 온열 스토브 같은 외투는

맹추위를 나에게 잊게 했다.

 

그 솜털처럼 가볍고, 화롯불처럼 훈훈했던 그 점퍼를 입고 벗을 때마다, 

나는 감사하고, 부끄럽고, 미안한 맘에 눈시울을 적셨다. 

 

감사하고, - 내 겨울나기를 당당하게 만들어 준 그 어느 분께 

부끄럽고, - 남들은 홑이불을 덮고 자는데 나만 따뜻하게 보내는 눈물 나는 겨울이, 

미안했다. - 그 온열을 그 누구와 나눌 수 없어서

 

문득 이런 네 가지가 떠오른다.

내게 없는 네 가지다.(후배들이 내게 없어 뵈는 거라고 생각할 것 같은, 나의 없는 네 가지.)

 

돈도 / 힘도 / 욕심도 / 혹시 교회도 없는?

 

목사요, 선배요,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나는 참 세상 바보처럼 살았다. 살고 있다.

 

그래도 감사하다.

 

먹여주고, 입혀주면서도 나를 천시 여기지 않아서.

가진 것, 지닌 것 없다고 무시하지 않고 불쌍히 여겨 줘서.

늙고, 힘없다고 외면하지 않고 같이 놀아 줘서.

외롭고 험한 미로(迷路)같은 세상에 어깨를 겯은 길동무가 되어 줘서.

 

하여

나는 부자다. 사람 부자다.

너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 모두에게 뜨거운 입맞춤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