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8: 정방원, the Visionary!
2013.05.17 21:06
영혼일기 1298 : the Visionary 정방원!
2013.05.17(금)
시름시름 무병을 앓듯
시름시름 예수을 앓던
비전교회 담임목사
정 방 원
세속 도시 된 종말 교회에
주主, 하늘 당신의 유일한 기대주라고
우리가 어쩔 수없이 동의하고, 인정하는
그 물건,
the Visionary 정방원이
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이레여드레아흐레
열~흘열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이레여드레아흐레
스~물스무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이레여드레아흐레
서~른서른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이레여드레아흐레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도록 금식하라고 하신
예수의 티내지 않는 금식 기준에 따라(마6:16-18)
장장 서른아홉 날 동안이나
시름시름 금식을 앓으면서도
전혀 표가 나지 않게
모든 공(公) 예배 인도, 대(大)심방 강행 거기다 더해 먼 데 타인의 조문행렬에까지 끼어들면서
간섭하지 않은 일 하나 없이 목회적 업무를 죄다 성가시게 챙기면서
복음 증거, 그 본디 사명에 몸살을 앓던 안디옥 교회가
오직 주를 섬겨 시작했던 금식을(행13:1-3)
소리 소문 없이 즐기며 끝냈다는 전언을 들었어도
아직은
밥 한 끼 같이 먹는 일이 일생일대의 대사大事 같은 일이 된듯하여
그 영광의 광채를 덧입은 그를 만나는 일이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는 그 기회가 쉬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도 못 건네고 있던 참에
뜬금없이
산자의 목소리를 접수했다
밥을 먹잖다
밥을
그새 밥 먹을 힘을 얻었는가
반사적으로 이는 의구심 일단 접고
다시 오실 주님의 얼굴 뵙는 첫 영예를 내가 얻은 듯
버선 발로 길 나서며
사십에 하나 감한 날들에
예수를 앓아 누린 the Visionary 정방원이
이젠 살 발라 낸 영험한 부활체로 거듭한 영감, 그 번뜩일 그 영감에
골수를 뢴트겐에 투사하듯
내 영체를 그 영감에 노출시키고 싶었나니
지난 3월말 고난주간에
하루이틀정도만 그 고난을 상기하려 했던 금식이
날마다 더해지는 그 힘의 강력에 끌려
순풍에 돛 달듯
이 맘 설랜 항해 언제까지 지속 되려나 들뜬 영감에 휩싸여
예까지 이르게 된
자기 자신도 놀란
무려 서른아홉 날을 하루 같이 여기게 되는 기이한 신비를 맛보았다며
체중이 16kg이나 줄어들었어도
금식 스무 아흐렛날과 금식 서른 번 째 날에
욥바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먹을거리 환상이(행10:9-16)
오늘 그에게 재현되었다며
환상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신
그 신비를 토해 냈다
스무 아흐렛날이었어요.
비몽사몽간에 주께서 내 입에 단 것을 물려 주셨어요.
내가 좋아하는 닭도리 탕과 고등어 졸임으로 내 배를 채워 주셨어요.
이어 다음 날 서른 번째 날에는,
윤기 자르르 흐르는 쌀밥에다가 "정방원만 너만 먹어라"시며 계란 프라이를 얹어 주시고는, 푸짐한 겉절이를 곁들여 주셨지요.
그날 이후로 놀랍게도 매일 0.5kg씩 줄던 체중이 더 이상 줄지 않았고, 만복감에 전혀 허기를 느끼지 않았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담담했다.
그 담담함은 은밀한 중에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갚아 주신 보상이 선사한 든든함이다.
지난 5년 동안 하루에 4~5시간씩 말씀을 묵상해 왔어요. 이제 성경 66권에 대한 묵상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이에요. 그래서 말씀에만 치중하는 편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신 것 같아요. 갈수록 진국이다. 숨이 막힌다. 말씀과 (금식) 기도로 짝을 이룬 영적 체질 강화를 그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십 일에 하루 감한 삼십 구일을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말했다.
27일 째부터 입에 쓴물이 나서 무척 힘들었어요. 밤만 되면 더 속이 뒤집어져, 밤이 두려웠어요. 그 속 뒤집히는 마라의 기간이 열흘이나 지속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식 이후, 미음이 아니라 바로 죽을 먹고 싶어서 아내와 다투기도 했단다. 미음으로는 쓴 물을 어거할 길 없었고, 죽을 먹으면 그나나 진정이 되어서 그랬단다.
삼십 구일만 금식 했던 것은, 감히 주님이 채우신 사십 일을 할 수 없어서 그랬는데, 사십 일째 되는 날 몸의 마비가 와서 혼났다며, 만일 사십일을 욕심으로 채웠다면 건강에 큰 이상이 올 뻔 했다며, 그는 삼십 구일을 금식하게 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렸다고 했다.
그래 사람인데, 삼십구일 동안 곡기를 끊었는데, 구름에 달 가듯 쉬 그 기간을 보냈겠는가?
우리는 능이버섯 오리 탕을 먹었다.
그는 국물만 훌쩍였다.
그런 그 앞에서는 그 맛난 오리 탕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영험한 그는 나를 그렇게 영·육간에 압박해 들어 왔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인가?
이젠 자기 반성할 군번도 훨씬 지난 제대 말년 병인 내가 아닌가?
그가 전한 무용담은 숭고했으나,
단풍나무에 거름 줘봐야 별 볼 일 없듯
난 적어도 물들지 않았다.
이미 나는 물들 이유가 없는,
먹어도 금식이고 안 먹어도 금식 인
나는 천연 단풍 된 자이기 때문이다. ㅋㅋ
암튼 모처럼 신선했다.
그 맛난 성찬에 그 누구를 부를까 싶었는데,
금식 겨우 마친 분 앞에서
게걸스럽게(쏘리ㅋ) 먹어 댈 것이 틀림없어,
난 묵현리 촌장을 호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정방원 목사에게
누가 불러 밥 먹을 일 생기면, 꼭 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오늘 그 눈치 보느라 다 채우지 못한 허기를 나는 살아가면서 마저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떠 먹여 주신 그 신령한 음식을 맛 본,
그 천상의 음식 맛을 맛 본 그 입맛의 쾌감을,
대신 세상 입맛이나 음식 맛으로라도
나에게 채워줘야 한다.
그는.
누구를 위한 금식이었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거였냐?' 물으실 거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스가랴 7:5).”
아뇨.
그럼 너, 정방원을 위한 거였냐?
아뇨,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위한 금식이었냐?
네, 내 이웃들. 특히 그 누구.
(너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라(스가랴 8:19).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
허기에 절어 비쩍 마른, 그 누구. ㅋㅋ
the Visionary 정방원!
그는 묵시 없는 시대에 그는 한 통찰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람이 반기는 참된 금식을 선보였다. 그 환상이 그를 통해 우리네 현실이 되길 소망한다. 그 금식을 통해 이 신실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나는 고대한다.
,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8-12)
무엇보다도
속히
정방원 목사의
육체적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되길
주께 기원 드리며.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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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혹은 개인적으로 간절한 소원이 있어서 금식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며 주님을 섬겼던 것처럼(행 13:2), 순전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묵상하며 주님을 섬기기 위해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힘주시는 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하루 이틀 금식을 했는데, 39일(2013. 3. 25~5.2)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40일을 채우지 않은 것도 주님이 거기까지만 인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40일을 금식하신 주님을 감히 흉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지난 39일 간의 금식은 나에게 자랑스러운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목회적인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금식을 마친 후에야 금식을 하게 된 세 가지 이유를 깨달았을 정도로 나는 아주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뒤늦게나마 참회하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첫째, 내 속에는 ‘조악한 나’가 있었습니다. 내 속에는 상반된 두 가지 기질이 있습니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같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에게서 후천적으로 물려받은 선비 기질입니다. 청렴결백하고, 강직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기질을 갖고 신앙의 세계와 목회의 세계에 들어왔는데, 바로 청교도 정신과 성경에서 말하는 성결 정신과 접촉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선비 같은 목사’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폭 기질입니다. 한번 수틀리면 물불 가리지 않고, 끝장을 볼 정도로 갈 때까지 가고, 맘에 들지 않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판을 뒤집는 성향이 있습니다. 야성도 강하고, 고집도 세고, 권위 자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든 CEO든, 부자든 유명한 자든, 박사든 전문가든, 총회장이든 지방회장이든, 원로이든 중진이든, 내 눈에는 웃기지도 않은 것들입니다. 뭐나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권위 부리고 잘난 체 하면,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엿 먹여버립니다. 세미나 같은 것도 참석하지 않습니다. 별 볼 일도 없는 것들이 설치고 장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 속에는 두 가지 기질이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었고(롬 7:24), 성경의 표현대로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딤전 1:15). 조폭 기질이 죽어야만 선비 기질이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주님이 나에게 금식을 요구하신 것은 내 속에 ‘조악한 나’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내 속에는 ‘안일한 나’가 있었습니다. 20여 년을 목회하는 동안 위기를 크게 겪은 적이 딱 한번 있었습니다. 메가톤급의 태풍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사임의 변’이라는 글을 쓸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당시 나의 멘토였던 목사님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그 위기를 하나님 앞에 침묵과 인내로 우직하게 이겼습니다. 그 위기는 오히려 나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목회의 평안함과 행복함으로 보상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 평안하고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었던 교회와 교인들이었는데, 그리고 목사를 시험 들게 할 만한 교회와 교인들이었는데, 이제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강단과 목사의 권위를 세우고 교인들을 제자훈련 시켜서 평신도 사역자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목회의 평안함과 행복함은 분명 은혜와 축복이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 끊임없이 염려와 불안이 있었습니다. ‘솥 안의 개구리’ 혹은 ‘밑둥이 텅 빈 고목나무’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었습니다. 시골길보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음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었습니다. 평안함과 행복함은 필연적으로 나태함과 안일함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하지만, 골리앗처럼 상대하기 버거운 적은 바로 ‘나’였습니다. 목회의 복병은 마귀 사탄을 넘어 ‘안일한 나’였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주님이 나에게 금식을 요구하신 것은 내 속에 ‘안일한 나’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내 속에는 ‘메마른 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분석하고 쪼개기를 즐겨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 나는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나 홀로’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신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평신도 때였고, 두 번째는 시골에서 3년 동안 단독 목회를 할 때였고, 세 번째는 목회 후반기를 준비하는 최근 5년 동안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의 전문가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 할수록 내 안에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3년 동안 직접 예수님에게서 말씀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뭔가 심각할 정도로 내 안에 부족과 갈증이 있었습니다. ‘머리는 날카롭게, 가슴을 뜨겁게!’는 단지 구호에 불과했습니다. 금식 기간 중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르고 또 불렀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그런데 금식 20일 째였습니다. 숙변까지 다 배설하고 장이 깨끗이 청소된 듯 했습니다. 뱃속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몸도 날아갈 듯 아주 가벼웠습니다. 그 동안 매일 생수만 먹었기 때문에, 내 뱃속에는 오직 생수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 순간 ‘뱃속에 성령의 생수가 강 같이 흘러야 한다’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땅은 메마르고 황폐하고 사막이 되는 것처럼, 성령의 생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내 심령은 메마르고 황폐하고 사막이 된다는 성령의 강한 책망과 경고의 음성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주님이 나에게 금식을 요구하신 것은 내 속에 ‘메마른 나’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