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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 아가페 밀

2013.05.20 22:23

김성찬 조회 수:724 추천:7





영혼일기 1301: 아가페 밀

2013.05.20(월)

 

행여, 오해하지 않을까?

수업을 대충한 약점을 물질공세로 보충하려고 한다는, 오해.

 

행여, 날 가볍게 보지 않을까?

너무 정에 무른 심약한 사람이라고 날 가볍게 보지 않을까 라는. 염려.

 

행여, 시비하지 않을까?

교수들이 김성찬 당신만 튀면 어떡해, 당신 돈이 그렇게도 많아 라는 시비.

 

나는 지난 4월 8일 '부요한 심사'라는 시 한 편을 쓴 적이 있다.

 

(전략)

눈조차 내리는 않는 가난한 들녘에 선  / 호주머니 헐거운 / 나는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

 

가난한 맘만으로는 도시 배설할 길 없는 지상의 만찬을

붓을 들어 지하철 차창에 데생해 본다 

 

춘궁기 / 영동에 내렸다는 나타샤를 위한 눈이  / 박엽지 같은 내 사랑에도 감응해 

푹푹 / 내리고 있는 


내  부요한 심사를

 

 

목신원 수업을 가다가 구로역에서 환승하던 순간, 그 플렛폼 칠미 빵을 허기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사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그냥 지나쳤던 순간의 애잔함을 형상화 했던 詩다. 그후 나는 하루 종일 수업에 시달리는 가난한 전도사들의 뱃속을 한 번 든든하게 채워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일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할까 생각해 왔다. 그리고 내 호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만 했다. 더 나아가 모두에 쓴 것처럼, 그런 일을 벌이다가 오해를 받거나 쉬운 사람 취급 받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적당히 잠재워야만 했다. 그리고 동료 강사분들의 눈치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오늘 결행을 했다. 아내에게 아내만이 구워낼 수 있는 특판 보름달 빵을 세 판만 쪄달랬다가, 너무 늦게 부탁한 바람에 그 모의는 수포로 돌아 갔다. 그래서 언젠가 맛나고, 배부르게 먹었던 학교 부근 순대국밥집이 생각이 났다. 전활 넣었다. 한그릇에 7천원인데 학생들에게는 6천원만 받겠단다. 그러다가 결국 학생 대표에게 알아서 주문하라고 연락을 했다. 오후 5시 30분 경 마지막 수업 시작 시간에 나는 학생들을 그 국밥집으로 죄다 불러냈다. 약 삼십 여명의 학생들에게 뼈다귀 감자탕 전골을 대접했다. 4인 한 상에 3만 원씩하는 식탁은 공복을 달래는 학생 전도사님들의 불같은 식성으로 화기애애했다. 한 달 강사료의 절반이 날아갔다. 이런 낭비를 말리지 않는 아내는 과연 천사다. 부창부수. 주머니가 일순 헐거워졌어도, 마음 만은 부요해졌다. 학생들은 이런 감동은 난생 처음이라며, 오래 기억에 남을 소중한 날이라고들 했다.

 

뒤늦게 부르심을 받아 지방신학교에서 4년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위해 2-3년 여의 수학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전도사인 학생들은 월요일 수업을 위해 파김치가 된 상태로, 대구, 김천, 창원, 부산, 목포 등지에서 이곳 부천까지 수업을 받으러 온다. 오전 9시 부터 시작하는 수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저들은 주일 밤에 올라 오거나, 월요일 새벽 2시 부터 움직인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수업을 받고 저녁 7시 20분  수업 종료와 함께 저녁도 못 먹고 서울역으로 뛰어가 막차에 몸을 싣고 귀가한다. 밤 12시를 넘긴 담날 새벽에서야 안식에 이른다.  

 

이렇게 강행군을 치르는 전도사들의 마지막 수업은 내가 이번 학기에 맡았다. 

하여 늘 죄짓는 기분이었다.   

두 번 다시 마지막 시간에 수업하지 말아야지 .

두 번 다시 정주지 말아야지. 

공부도 공부지만, 문제는 그 늦은 시간 허기진 공복이 늘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여야 할텐데.

 

나는 학기 초에도 내가 쓴 책을 교재로 삼아 출판사에 단체로 책을 주문해 왔다. 그때도 나는 필자 가격으로 산 책값조차, 그들에게 받을 수 없어 책을 공짜로 선사하고 말았다. 참 부자 되긴 틀린 사람이다. 나는. 

 

그런데 이런 자선(?) 행위를 해 놓고도 나는 염려가 앞섰다.

너무 내가 심약해, 큰 일을 못하는 것 아닌가?

 

그래, 큰 일이 따로 있는가?

내가 금과옥조와 같이 여기는 말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니라(마25:40)는 

주님의 말씀 위에 나는 굳게 서고자할 뿐이다.

 

학생들이 정말 행복해 했다.

나도 기뻤다. 

그리고 감사했다. 

 

내게 평범한 식물로 비범한 주의 사랑을 

나보다 가난하고, 작은 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학생들에게 감사해 했다.

 

 

벳새다 들녘의 허기는
전능하신 당신의 권능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다

벳새다 들녘의 허기는
땅엣 것들을 내려다 보시고
땅에 것같이 되시어
땅을 짚고 일어서는 긍휼에 의지한 눈물어린 간구의 대한
하늘 응답이니

지난 4월 8일
구로역을 지나다가
차창에 함박눈 내린 내 심사를 써내려 가던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벳새다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제 상황 되게 하기 까지

들었다놨던
쑥스런 용기
흔들어봤던
호주머니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내가 누렸던 만복감을
저들과 함께 나눔으로 

내가 누리게 될 만족감을 외면할 길 없어 
 


내 베품의 욕망을 채우고자
평범한 식물로 비범한 자애심을 발휘하기로 했나니

네가 가져 내가 만족스럽고
네가 얻어 내가 자랑스럽고
네가 먹어 내 배가 부른

너와 내가 없는
너와 내가 하나인
합일의 충만

학교 가는 길
공동의 식탁을 대하러 가는 길
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를 남 길
벳새다 들녘으로 가는 길

땅에 서서 하늘을 누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