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노숙 행복
2008.09.09 18:21
영혼일기 59: 노숙 행복
2008.09.09(화)
오늘 오후 그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 67번지.
정선희 남편 안재환이 죽은 장소다.
남편…….
내게도 너무 익숙한 길.
난 그 재 넘어 사래 기―인 밭, 우리 지하교회로 가는 그 언덕 초입을,
그 근 십 여 년 동안 내 집 마당처럼 오갔다.
어쩜 그간 죽어가던 그날도 난 그 옆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 무덤 된 차량은 치워져있었고, 그 차 유리파편 가득한 담벼락 밑 주차공간엔 덜렁 국화꽃 한 다발만 그 슬픔을 애도하고 있었다. 세간의 큰 관심사를 반향 하듯, 몇몇 기자들이 서성이며 주민들과 낙수거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좋은 말이 오가는 것 같지 같았다. 한 노인네가 “그 30억밖에 안 되는 돈 때문에 한 여자의 일생을 그렇게 망가 뜨려도 되는 거냐”고 대꾸 없는 그 누군가에게 울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난 그 길로 오가는 것을 즐겼다.
요즘은 덜하지만, 대로를 놔두고, 난 그 교회당엘 갈 적마다 그 골목길을 택했었다.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미로 같은 그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이어지는 한적한 산길이 나에게 큰 위로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천 년 전, 어느 주일이었다.
난 갈 곳이 없었다.
기도원엘 간다고 집을 나섰지만, 정작 기도원에도 난 가지 못했다.
사람을 만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일날 기도원에 머무는 내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어느 깊은 숲속에 차를 박아놓고,
달팽이처럼 웅크리며 죄인처럼 하루를 넘긴 적이 있었다.
이젠 고인 된 안재환이 그렇게 말했다던가?
“멀리서나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행복으로, 노숙자로라도 살아 가고픈데, 워낙 얼굴이 알려져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죽었고, 덜 유명한 난 살아남았다.
그래 역사는 저명인사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갖은 수모와 고통 속에서도 얼굴 덜 팔려 노숙이라도 할 수 있는 잡초인생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아니 죽을 용기도 없는 이들이 죽기보다 어려운 삶을 감내한 열매가 역사다.
그렇게 난 살아남았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난 한 가지 만고불변의 진리를 발견한다.
이것이다.
‘세월이 약이다.’
그래 세월이라는 약보다 더한 특효약은 없다.
나보다 날 더 아파하는 어머니도 먼저 가셨고, 친구연 했던 친구들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 세월이라는 약만은 값없이 내 목숨을 지탱하게 했다.
만일 그 안재환이 세월에 그 부채를 맡겼더라면…….
그러나 세월은 약이지만,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다는 말처럼,
그 세월이라는 약도 부작용을 동반했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그 세월이 처방한 마취제 때문이었다.
그 독극물은 내 기억력을 둔화시키는, 시력을 약화시키는 마약이었다.
그 몽롱한 세월에 기대어, 미동도하지 않는 그 천일야 동안,
내 복부가 남산만 해져 왔다.
최근 한 친구에게 돌아 갈 교회당이 없어졌단다.
집마저 없어지고.
오갈 데 없는 줄 알았는데, 노숙도 할 만 하더라고 말했다.
안심이 된다.
그는 적어도 노숙할 수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거기다 더해,
구걸하듯 전도일념으로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 그는 남산도 볼 수 없겠다.
세월에 기대어,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비벼대며,
움직이며 견디는
노숙 행복!
그대여, 부디 살아남아라.
언제까지?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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