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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헨델의 메시아

2009.12.07 22:41

김성찬 조회 수:1709 추천:24





영혼일기 442: 헨델의 메시아
2009.12.07(월)


오늘은 청춘예찬을 부르고 싶은 날이었다.

오늘은 홀사모돕기 기성교역자부인 찬양단 자선 음악의 밤이 저녁 7시부터, 대신성결교회(박현모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전국교역자 부인 성가단이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찬양을 자선음악회 형식으로 공연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무대에는 성가단 소속 교역자 부인의 남편 목사들이 그네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청년 시절 이후, 찬양대에 서 본 적이 없는 나는 민망스럽고, 자신이 없어 계속 거절하다가, 후환이 두려운 남자들 틈에 끼어 찬양을 했다.

사전 연습이라곤 단 두 번.
그것도 낯선 '영광의 새 노래 A NEW AND GLORIOUS SONG'(DON BESIG)만 주만간산 격으로 두 번 연습했을 뿐, '할렐루야'는 한 번도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청년 시절 귀동냥으로 배운 멜로디를 기억해 내야만 했다. 그냥 입만 벌린 셈이다. 

그랬어도 오랜만에 함께한 합창은 내 풋풋한 청춘을 다시 불러내고 있었다.
하모니를 제일 가는 목적 삼는 합창의 묘미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감격이었다.

특히 할렐루야, 영원히 라는 단 두 단어만이 숨가쁘게 반복되는 할렐루야는, 그 신성성에 흠씬 젖게하는 감동, 그 자체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해설을 뒤적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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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이아 또는 구세주라고도 한다. 헨델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고금(古今)의 종교음악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대본은 성서를 바탕으로 영어로 씌어졌으며,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3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서사적 묘사라기보다도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강력히 호소한 작품이다. 알기 쉬운 웅장한 표현 속에 생생한 종교적 감동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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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서사적 묘사라기보다도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강력히 호소한 작품이다. 알기 쉬운 웅장한 표현 속에 생생한 종교적 감동이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 그 작품은 알기쉬운 웅장한 표현 속에 생생한 신앙적 감동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서서적 묘사라기 보다는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강력히 호소한 작품이다, 라는 해설에 난 전적으로 동의한다.

헨델은 그 웅장한 작품을 단 24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그 작품이 인간 헨델이 지어 낸 작품이 아니라, 주어진 영감의 선물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영감은 그의 간절한 갈망과 접선한 것이리라. 

단 두 단어, 할렐루야와 영원히 만을 목청 높여, 쉼없이 불러대는 그 단순한 흠모가 그분을 사모하는 열광으로 날 고양시켰다. 그래 다시 말해 생생하다.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입으로 시인하며, 천지사방에 선포하는 쾌속질주. 그 원시 신앙고백이 내 영혼을 휘감았다. 
 
헨델의 메시아가 초연되던 공연장에서 영국의 왕 조지 2세가 이 곡을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이 감동적인 고사(古事)에 따라 오늘 우리 청중들도 할렐루야 합창이 시작되자 그 자리에서 다같이 일어섰다.

할렐루야!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의 해설 중 이런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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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광명과 영광 그리고 열광을 되찾았던 것일까? 그것은 헨델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혹독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곡이 작곡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풍의 오페라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음악양식을 갈구하던 영국의 청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소외당하고, 한때는 온 영국을 지배했던 헨델도 이제는 음악회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영어의 대사를 사용한 오라토리오를 몇곡 작곡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누렸던 왕년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그에게 되안겨 주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빚은 더욱 가중되었고 날이 갈수록 더욱 혹독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및 정신적인 불안으로 마침내 그는 갖가지 병을 얻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로 악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기거가 부자유스러울 정도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던 듯 하다.

이러한 역경속에서 그는 더블린의 자선 음악단체인 필하모니아 협회(Philharmonic Society)로부터 의뢰를 받고 '메시아'의 작곡에 착수했다. 헨델은 언제나 자선단체에 협력해 왔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차 그는 자선 사업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털어주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을 작곡한 뒤 그 초연을 위해 아일랜드로 여행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메시아'의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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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자선을 낳고.
이 밤 홀로 된 가난한 교역자 부인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자선음악회는 그래서 헨델의 메시아로 대미를 장식했다.

좋은 밤이다.
청정 영혼의 바다를 유영한 느낌이다.

노래가 좋다.
찬양이 좋다.
성가가 좋다.
합창이 좋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알 레엘 루우우우우 야

__________

오늘 우리가 찬양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시간에
큰 체제는 무려 8시간이나 걸린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있었단다.
다행히 다른 부위로 전이는 안되었다는 소식을 돌아 오는 길에 들었다.
24시간, 주의 일을 위해 힘쓴 그녀에게 치유하는 광선이 충만히 임하길 기도한다.
__________



헨델의 메시아-해설


헨델의 메시아가 초연되던 공연장에서 영국의 왕이 이 곡을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고, 갑자기 왕이 일어서자 다른 관객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메시아의 할렐루야 부분을 연주할 때는 모두 일어서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헨델의 오라토리오.

작곡 : 헨델

종류 : 오라토리오

제작연도 : 1741년


메사이아 또는 구세주라고도 한다. 헨델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고금(古今)의 종교음악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대본은 성서를 바탕으로 영어로 씌어졌으며,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3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서사적 묘사라기보다도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강력히 호소한 작품이다. 알기 쉬운 웅장한 표현 속에 생생한 종교적 감동이 잘 나타나 있다.


불과 3주일 만에 완성되어(1741), 이듬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자선행사로 초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헨델이 죽기 전부터 자주 자선단체를 위하여 상연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세계 각처에서 자선연주회를 개최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제2부의 마지막 곡 <알렐루야 코러스>가 특히 유명하며 런던 초연 때는 조지 2세가 너무나도 감동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선 고사(古事)에 따라 오늘날도 그 대목에서 청중이 일어서는 습관이 있다.


Sympony (Ochestra)

Comfort ye my people (Tenor)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Tenor)

And he shall purify (Chorus)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lto)

O thou that tellest good tidings to Zion (Alto)

O thou that tellest good tidings to Zion (Chorus)

For unto us a child is born (Chorus)

Pastoral Sympony (Ochestra)

There were shepherds abiding in the fields (Soprano)

Glory to God in the highest (Chorus)

He shall feed his flock (Alto,Soprano duet)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Chorus)

thy rebuke hath broken his heart (Tenor)

Behold, and see if there be any sorrow (Tenor)

The Lord gave the word (Chorus)

why do the nations so furiously rage (Base)

Halleujah (Chorus)

I know that my Rredeemer liveth (Soprano)

Worthy is the Lamb that was slain (Chorus)

Amen (Chorus)


Oratorio By. G.F. Handel

오라토리오 '메시아'

Messiah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감격스러운 음악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메시아'는 헨델이 57세가 되던 해 (1742년) 4월 12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서 초연되었다.


메시아란 말은 구세주라는 뜻이나, 본래는 기름을 부은 자란 뜻인데, 그것이 다시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자 혹은 괴로운 자를 해방하는 자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더블린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그 공연에서 헨델 자신도 상당한 수익을 얻기는 했으나, 그 음악회가 애초부터 자선음악회였던 만큼 그 수익의 대부분은 자선사업의 기금으로 쓰였다.


'메시아'가 종교음악임에는 틀림없지만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거의 다 그렇듯이 '메시아'또한 교회를 위한 교회음악이라기 보다는 극장에서 상연할 목적으로 작곡된 연주회용 작품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기독교 신자거나 비신자거나를 막론하고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가장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종교 음악이라는 한계를 아득히 벗어나 인류 공유의 위대한 음악적 유산으로 승화되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광명과 영광 그리고 열광을 되찾았던 것일까? 그것은 헨델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혹독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곡이 작곡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풍의 오페라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음악양식을 갈구하던 영국의 청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소외당하고, 한때는 온 영국을 지배했던 헨델도 이제는 음악회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영어의 대사를 사용한 오라토리오를 몇곡 작곡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누렸던 왕년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그에게 되안겨 주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빚은 더욱 가중되었고 날이 갈수록 더욱 혹독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및 정신적인 불안으로 마침내 그는 갖가지 병을 얻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로 악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기거가 부자유스러울 정도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던 듯 하다.


이러한 역경속에서 그는 더블린의 자선 음악단체인 필하모니아 협회(Philharmonic Society)로부터 의뢰를 받고 '메시아'의 작곡에 착수했다. 헨델은 언제나 자선단체에 협력해 왔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차 그는 자선 사업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털어주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을 작곡한 뒤 그 초연을 위해 아일랜드로 여행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메시아'의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메시아의 대사는 거의가 구약성서에서 추린 것이지만 그것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다만 그 대사를 헨델에게 전해준 사람이 제넨즈(Charles Jenens)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제넨즈는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우겼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대로 믿고 있지만, 제넨즈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그 선택이나 배열이 너무나 잘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평이다.


부유해서 별로 하는 일없이 문학에 골몰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문학의 천재이자 진정한 이해자라고 우쭐거리고 있었던 제넨즈라는 자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개작하는 등 어줍지 않은 짓을 하기 일쑤였는데, 말하자면 사소한 금전으로 과대망상증을 사들여 착각속에서 만족을 얻고 있었던 딜레탄트였다.


동시대의 석학 존슨(Sanuel Johnson)은 그에 대해, "그는 자신에 도취되어 마침내 머리가 돌아버린 천치여서, 그의 머리속에 가득찬 것은 허영심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를 성스러운 존재라 착각하고 있는 그는 거리에 나갈 때면 속된 사람들의 입김이 행여나 그의 옥체에 스며들지 않도록 향수를 뿌린 솜으로 코를 막고 다닌다는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어쨌든 '메시아'의 대사가 하이든의 '천지창조'와는 비길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헨델의 영감을 크게 자극했으리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메시아'의 작곡은 1741년 8월 22일에 시작되어 24일만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대작이 고작 24일만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저 경탄하는 대신에 그것을 작곡하는데 헨델이 얼마나 열중했었던가를 좀 더 생생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새로운 감회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헨델은 24일 동안 거의 침식조차 잊은 채 마치 열에 뜬 사람처럼 열광된 상태에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실의와 좌절이 거듭된 끝에 창조된 그 드높은 세계, 일찍이 어떤 음악도 성취하지 못했던 영광의 구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나 견줄 만한 그 웅장한 스케일과 구도..곡 하나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환희의 눈물이 양 볼을 가득 적셔 흘렀고, 다시금 열에 떠서 다음 곡을 스케치했다는 그 때의 정황을 굳이 되살려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슴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감격과 열광을 느끼지 않고서는 이 곡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웅장한 스케일을 운운하는 것으로만 '메시아'를 이야기 할 수는 결코 없다.


전 3부로 구성된 '메시아'는 제1부가 '예언과 탄생', 제2부가 '수난과 속죄', 제3부가 '부활과 영생'으로 되어 있다.


제1부

'예언과 탄생' 전체적으로 밝고도 온화한 분위기에 싸여 있으면서도 그 저변에서 조용히 맴돌면서 솟구쳐 오르는 열띤 흥분과 열광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게 하는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제2부

예수의 '수난과 속죄' 극적인 긴장감이 더욱 제고되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전곡을 통해 합창곡이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도 제2부의 특징이다. 복음의 선포와 그 최후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할렐루야 코러스.(이 작품이 런던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영국의 왕도 입석했는데, 할렐루야가 나올 무렵에는 감격한 나머지 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3부

'부활과 영원한 생명' 부활에 대한 신념이 부각되어 전체적으로 밝고도 빛으로 충만된 분위기를 엮어주고 있다. 굳은 신앙의 고백으로 시작하여 영생의 찬미로 끝닌다. '우리는 아느니 속죄자의 영생을...' 최후에 아멘의 코러스로 끝난다. 이러한 제3의 분위기는 비단 제3부에 국한되지 않고 마치 전곡이 제3부의 부활을 준비하는 양 작품 전체에 그러한 빛이 깔려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조가 지배적인 바흐의 작품과는 달리, '메시아'는 가장 비감적인 제21번의 알토 아리아에서조차 장조로 되어 있으며, 전반적으로 더욱 밝고 화려한 색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에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서와 같이 우리들의 깊은 오열을 유발하는 요소가 적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 14곡의 소프라노 레시티티브, 제8번의 알토 및 소프라노 아리아, 제20곡의 합창, 제36곡 및 제43곡의 소프라노 아리아 등, 그 명상적인 아라베스크, 그 천사의 숨결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뉘라서 바흐의 작품에 견주어 손색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득히 높은 험준한 산의 아침 이슬과도 같이 맑고 깨끗하게 울리는 그 영롱함을 우리는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가?


'메시아'가 더블린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청중들이 너무나 쇄도하여 부인들은 후프(스커트를 펑퍼짐하게 벌어지게 하는 버팀살-당시에는 부인들이 공식석상에 나들이 할 때는 그런 의상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를 착용하지 말아야 하며, 신사들은 칼을 차지 말도록 광고를 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한 신문(Falkners' Journal)에서는 '장내를 메운 청중들에서 '메시아'가 안겨준 황홀감은 뭐라 표현 할래야 표현할 길이 없다'고 최대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메시아'가 초연된 이래 그것이 음악 애호가들과 음악가들에 끼친 영향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했던 것도 '메시아'에서 느꼈던 감동에 자극되어서였고, 베토벤 또한 이 메시아의 작곡자를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존경했다. 그가 임종이 가까워 병석에 누었을 때 조차 헨델의 악보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미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때 그를 돌보던 의사 봐부르흐(Wawurch)가 봄이 오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만일 나를 소생하게 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기적(Wonderful)일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메시아'의 제12곡에 나오는 구절(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이것으로 보아도 베토벤이 '메시아'를 얼마나 속속들이 연구하고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나 '메시아'에 열광한 사람은 비단 베토벤이나 더블린의 시민들만은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영원토록 '메시아'를 사랑할 것이다.

(연주시간 : 2시간 20분)

http://k.daum.net/qna/view.html?qid=0DEBV&q=헨델의%20메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