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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 작은 거인, 작은 천국

2011.06.22 22:41

김성찬 조회 수:1764 추천:51





위 사진은 초등학교를 총 8개월 정도 밖에 안 다닌 소년 박성철군이 전국학력경시대회에서 전라남도에서 일등을 차지해 받은 상금 15만원으로, 모교에 그 상금으로  세운 이순신장군동상 동상 뒷면에 적힌 글 중의 일부다. 1950년대. 이젠 이 동상이 지역문화재로 선정되어 반영구적으로 보존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혼일기 748: 작은 거인, 작은 천국
2011.06.22(수)

제103년차 총회 지방회장단 제 5차 컨퍼런스가 서울에서 지난 6월 20일(월)-22(수)까지 있었다. 그 세부 프로그램은 위에 게시한 내용대로다.
우리의 모임은 공적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이젠 매우 자연스런 친교공동체로 변환되었다. 여기엔 그 어떤 의무란 없다. 단지 자발적 연대와 우호적인 상호 격려만 있을 뿐이다. 그저 함께하면 마냥 좋은 죽마고우들의 모임 같은, 믿음과 사랑의 연대일 뿐이다. 이런 작은 천국 같은 교제의 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 일원이 된 서로를 우린 축복한다.

그래서 나는 금번 서울 컨퍼런스에 전국 48개 지방회에 소속되어 있는 동기들을 초청하는 인사말의 모두(冒頭)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원더풀! 우리 103년차는 정말 맛나고, 때깔 고운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손과 발이 이렇게 환상적 조합을 창출해내는 기적을 보면서, 새삼 그 의미를 실감합니다.(下略).”

그렇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각기 손 되고, 발되어 서로를 다투어 섬기는 일 외에 우리에게는 다른 관심들이 없다. 그래서 매사 절로 굴러간다.

이번 서울컨퍼런스도 실로 훌륭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서로 나누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먹고,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초대교회 신도의 공동생활을 우린 103년차 동기회를 통해 맛보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한 103년차 동기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런 귀한 사랑과 섬김의 연대를 허락하셨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단지 서로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뿐이다.

그래서 겨우 1년 반 사이에 우리는 벌써 5차례나 경향각지에서 모였다. 2009년 총회 지방회장단 해외연수 이후, 제주, 증도, 보령에 이어 이번 서울컨퍼런스까지 2년도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벌써 5차례나 우리는 도타운 연대를 과시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자신의 공적이나 기여를 자랑하지 않는다. 더 나누지 못해서, 더 만나지 못해서, 더 보살피지 못해서 안타까워할 뿐이다. 이는 가감없는 실제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서울컨퍼런스에 대해서도 여기서 특정한 그 누구누구의 공적을 거명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최선 다해 섬긴 모든 분들에 대한 합당한 예의라 생각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미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103년차의 사심 없이 도타운 상호 신뢰와 보고 싶어 죽을 뻔한 애틋한 연모란,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청 지역 동기들만이 아니라, 초청받은 동기들의 최선 다한 협력이 이번에도 빛나는 컨퍼런스 되게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참석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형편에서도 동기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가비만은 몸 대신 그냥 보낸 동기, 신장투석을 하면서도 동참해 준 동기, 상경하다가 도중에 교우의 부음을 듣고 되돌아 간 친구의 애통함에 문자세례로 위로를 날린 동기들. 이런 각별한 상호 관심과 배려에 우리는 모두들 감격해 했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참석 못한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한 사실에 무척 애석해 했다.

그러나 딱 하나, 이런 서울컨퍼런스의 산파역을 해준 서울성암중앙교회 당회와 성도들의 물심양면의 전폭적 지원과 봉사만큼은 높이 치하하며, 귀 교회의 부흥과 성도들의 형통을 103년차 동기회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리고 주최 측이 된 서울지역 동기분들의 물심양면의 협력과 상호 부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 친교공동체로서의 103년차 동기회는 항상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맛보는 묘미를 컨퍼런스 때마다 누려 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들 촌사람 되어 한강 유람선도 타면서 서울의 멋진 야경도 구경했고, 63빌딩 관광 3종 세트 - 전망대, 아이맥스 영화관람, 씨월드도 관람했다. 해질녘에는 잔디구장에서 전국 거의 4강 수준에 버금가는 서울북지방회 축구 정예 멤버들과의 일합에서 하마터면 일 낼 뻔 했던, 야구로 치면 케네디스코어를 방불할 만한 6:7의 스코어를 기록한 박진감 넘치는 실력들을 발휘했다. 장 메시를 비롯해 모두가 최 메시, 김 메시 된 메시 천지에다가 특히 거미손 오세현 선수는 준비 된 골키퍼였다. 오성문, 한선호, 김기환, 최병문만 가세했더라면 우리는 큰일을 낼 뻔 했다. 남자들이 볼에 미쳐있는 사이에 여인네들은 남대문 쇼핑도 즐겼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시간조정으로 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가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물질적으로도 십시일반 자원해서 내놓은 물질로 전혀 부족하지 않는 물질적 풍요도 누렸다. 그래서 여기저기 먼 데서 온 친구들에게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물질 나눔의 배려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서울컨퍼런스의 백미는 63빌딩에서 있었던 박성철 장로님의 간증예배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 서울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우리 103년차 동기 부부들에게 꼭 그분의 간증을 들려주는 시간을 갖길 간절히 염원했었다. 그런데 그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순적이 허락해 주셨다. 뷔페 파빌리온에서 오찬과 곁들인 그 간증의 시간은 우리에게 전인적 은혜와 감격을 선사한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예수에 미친, 십자가 보혈의 복음 전파가 사업의 제일 가는 목표인 대기업의 회장 박성철 장로님의 간증은 우리를 충만케 헸다.

대농이었다가 기운 가세로, 가난한 유년시절 초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돕는 품팔이 시절을 보내다가 목포로 나가면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친구들의 정보에 목포로 탈출했다가, 다시 배타고 고하도 감화원(요즘 소년원 같은 곳)에 끌려 들어갔었단다. 그 열악하고, 공포스런 환경에서도 그는 영적 스승을 만났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기도해라,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나라와 민족, 세계를 위한 큰 일꾼 되게 해 달라고 하루 세 차례 꼭 기도해라. 그리고 성경을 읽고, 날마다 전도해라. 이런 영적 권면을 그 어린 소년 박성철은 곧이곧대로 믿고 순종했었단다. 기도한다고 핍박하는 친구들을 피해 그 누구도 지나치기도 무서워하는 공동묘지에 들어 가 홀로 기도를 했고, 저녁 끼니를 거르면서도 어린 소년이 동네에 들어 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전했단다. 그 결과 놀랍게도 어린 감화원 아이가 밥도 굶어 가면서 끈질기게 전도하자, 그 정성에 감읍한 마을 어른 십 수 명이 박성철 어린이를 위해 교회에 나가 교회를 가득 채우는 기적을 이뤘다고도 간증 하셨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초등학교를 1학년 중퇴 후, 감화원에서 6학년으로 들어가 6-7개월 다녀, 초등학교를 총 8-9개월 정도 다닌 것이 전부였던 박성철 어린아이가 전국학력경시대회에서 전라남도 1등의 영예를 차지했다는 거다. 정말 그분은 그때 그 학교 선생님이 “너는 특별한 아이다”라는 평가처럼 "박성철 어린이는 예수를 조로 모신 특별한 아이"였다. 학력경시대회 장원 상금이 당시 돈 15만원이었다. 굉장히 큰돈이었다. 그래서 학교 측의 권유로 학교 운동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했단다. 그런데 그 동상이 지금도 남아 있고, 지역 문화재로 등재되어 반 영구 보존 관리 될 것이라고 한다.

담임 이신웅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분이 지난 해 전도한 인원이 무려 4백명이라고 했다. 창사 이후 신원의 최대 매출이 지난 해에 있었단다. 십자가와 오직 예수의 복음 전파를 위한 헌신에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사업을 지켜 보호하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락을 신원에 허락하셨다.

영상을 통해 본,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베트남이나, 무슬림이 지배하는 인도네시아 공장은 예배당이었다. 그 사상과 종교가 다른 나라에다가 교회를 세운 과정은 한마디로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다. 그분은 사업은 포기해도 기독신앙의 포교는 포기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맞서 그런 기적을 창출해 내고 계셨다. 북한 땅 개성에 세운 교회당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히 기록하지 않겠다. 남북관계의 긴장이 날마다 더 고조되어 가는 상황이라서 언급을 자제한다. 그러나 지구촌 곳곳 그분이 가는 곳은 사업장이 아닌 교회가 세워지고 있었다. 네팔에는 무려 100여개의 교회 6만의 신자가 신원의 이름으로 세워져 있다고 한다. 오전 3시에 기상하셔서 분초를 쪼개는 시간을 사시는 회장님의 우선순위가 복음전도였다.
우리 모두는 충격과 감격에 빠져들었다. 2백가지나 되는 63뷔페 음식이 현란하고, 맛났던 것 이상으로 그분의 간증을 우리에게 도전과 용기와 결단과 자부심을 선사했다. 내가 우리 사랑하는 103년차 동기 부부에게 그 간증을 들려 줄 수 있는 영적 교량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통성으로 기도했다. 만평 이상의 교회를 순적이 짓고 있는 신길 교회 신축공사와 신원그룹의 주안에서의 불같은 성장을 위해 한 목소리로 힘차게 간구했다. 이런 귀한 교회와 장로님을 터무니없는 시기로 탄압했던 못된 교권은 스스로 자신들의 수치와 죄악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보너스로 늘 그렇듯 박장로님께서는 목사님들에게는 개성산 고가품 남방과 사모님들을 위한 스카프도 선사해 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신길교회 이신웅목사님과 박성철장로님의 주안에서의 크신 배려였다. 영과 육이 충만하고, 풍성한 시간이었다.

함께하지 못한 동기들이 눈에 어렸다.

보고 싶었고, 맛 뵈기 천국잔치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 아렸다.

우리는 뜻밖의 제의에 다시 환호했다.
음성 대명교회 오세현 목사님께서 오는 8월 18일 목요일 말복 잔치를 배설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말복 탕도 먹고, 저녁엔 잡어 탕도 대접하겠단다. 우리는 당연히 그 초청 제안을 접수했다. 겨울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다시 뜨거운 재회를 하게 될 것이다.
해외 출국을 예정하고 있던 중, 그 제안에 해외 일정을 줄여서라도 시간 맞춰 들어오겠다는 강영주 목사님은, 그 일정조정이 순전히 아내 박미자 사모님 때문이라며 몸을 움츠렸다. ㅎ,ㅎ 그 일정조정 안하면, 집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협박(?)했다나? 그랬단다.

우리는 적어도 그런 조직이다.
의리가 우선인 그런 조직 말이다. ㅋ,ㅋ
그러나 우린 조직엔 조직의 쓴 맛이란 없다.
단맛을 나누기도 여전히 바쁜 우리이기에.

하나님께 영광, 모든 이에게 감사.
그 감칠 맛 날 말복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