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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이겨낼,

말씀 한 모금-에덴 이야기 (32)  

2020.04.23.(목) 

 

인간의 타락 8 – 네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찬송/ 534장(새) 324(통) 주님 찾아 오셨네  

말씀/ 창세기 3장 9,10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9,10).” 

“But the LORD God called to the man, "Where are you?" /10 He answered, "I heard you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so I hid."(3:9,10).”

 

먼저, 하나님의 심방이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움직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앞장 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광야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앞장 서 가셨듯이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벗었으므로, 하나님을 피하여 두려워 숨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움직이셨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난 후, 당신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은 그분의 음성(the voice)을 듣기도 전에, 단지 그분의 거니시는 소리(the sound of the Lord God)에 놀라 피했습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니 살강의 밥그릇들이 터드렁터드렁하며 부엌 바닥에 굴러 떨어지듯,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하나님께서 헛기침에 그분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부엌에서 숨어들어 생선을 훔쳐 먹다가 들킨 도둑고양이처럼 놀래서 날래게 피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데 말입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을 찾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전지(全知)하신 창조주께서 아담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담아, 네 중심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아담’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담은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단절 되어 있는 인간은, 자기 중심이 자신의 본질인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아담은 그 자신의 중심입니다. 그가 그의 세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과 동심원을 이루는 인간의 거룩한 중심성은 인간에게 위대함과 존엄을 선사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숨은 의지로 그만 자기 긍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죄란 덜 진화된 짐승의 껍데기라며, 이는 교육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오만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후기근대주의(post-modernism)는 절대를 상대화시키고, 중심을 해체하려 들고 있습니다. 하여, 만물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인간의 문화적 창조성을 남용해서, 인간을 갓ㅇㅇ, ㅇ느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문화적 창조성과 자기 것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예들은 시대를 이어가며, 인간 중심이라는 영적인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중심 신앙에 등을 돌리게 하고 있는 ‘교만’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야 콤플렉스(Messiah Complex)에 빠져 있습니다.

 

하워드 클라인벨(HOWARD Clinebell)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자기 우상화와 자기 도취적 교만은 모든 관계 대상으로부터 소외되는 절망을 자초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바 되었지만, 인간이 하나님이 아님을 아는 인간의 전인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인간과 하나님의 바른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롤로 메이는(Rollo May)는 “우리는 유한하며 우리의 성장은 우리의 삶의 변경시킬 수 없는 “주어진 것들”, 예를 들어 우리의 유전, 우리의 사회-문화적 맥락, 우리의 역사적 배경, 우리의 연령과 육체적 건강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다는 자각은 우리를 계속해서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건설적으로 겸손(겸손을 뜻하는 영어 humble은 “흙의”를 의미하는 humus로부터 유래하였다)하도록 돕는다.“라고 말합니다.  

 

흙의(humus) 사람은 본질적으로 겸손(humble)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지각은 우리의 자기 도취와 교만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 같은 진리를 잘 표현했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40:6-8) 

 

“네가 어디 있느냐?”

 

홀로 전지(全知)하신 나의 창조주께서 묻습니다. 

 

“네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묵상/ 네 중심이 어디 있느냐? 묵상하기

적용/ 본질상 흙의(humus) 사람임을 알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부복하기(hum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