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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3시집 평 사막은 박정규 교수 

 

뜻밖에 박정규 선생께서 내 시집에 대한 글을 엊그제 페북에 올려놓으셨다. 여기에 옮겨본다. 과분하다. 감사하다.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
박정규 명예 교수(서울과기대 문창과)
김성찬 시인/목사의 시집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를 읽었다.
내게 시집을 읽는 일은 ‘벅찬 과업’이다. 여기서 ‘벅차다’라는 말은 ‘감당하기 힘들다’라는 의미와 ‘감격, 기쁨, 희망 따위가 넘칠 듯이 가득하다’라는 두 가지의 사전적 의미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즉 내 둔해진 감수성으로는 언어의 가장 높은 차원의 쓰임으로 이루어진 시어들이 싱싱한 고기떼처럼 날렵하게 유영하는 심해의 장관 속에서 그 몸짓의 의미를 찾아낼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한 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시를 대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설렘 때문일 것이다.
우선 이 시집의 표제로 쓰였던 시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를 읽어보자.
하늘 덮은 슈바르츠발트 내 검은 숲 정수리에는
상투 튼 흔적도 없어 뵈고
날랜 푸트워크로 경쾌한 몸놀림은 시종여일해 뵈나
보이는 대로만 믿는 보이는 것만 전부로 아는
신기루를 좇는 대상들 틈바구니에서
알려줘도 알 수 없는 의문부호 내 속의 숲은
온갖 병충해 공세에도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썩지도, 썩을 수도 없는 묵시록의 검푸른 낯빛
1965년 5월 25일 보스턴
인간 기관차 소니 리스튼을 1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 댄 젊은 케시어스 클레이를
젊은 날 기억으로 추억해 대고 있는 내 나이테를
감히 세어 보려드는
무하마드 알리의 수전증만을 기억하는
단 하루 밤새 사막에 세계 최고의 162층 거탑을
거침없이 쏘아 올리는 세상을 구가하고 있는 세대들은
열사의 땅에 뿌리내린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는
모진 풍화작용을 헤아릴 길 도무지 없는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은
지문 뭉개진 엄지처럼,
손금 없는 손바닥처럼
바위산이 모래벌이 된 억겁의 사막에는
나이테가 없는 절박을 알까?
알 수 있을까?
(김성찬 시집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 中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全文)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치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본이다.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낸 풍요로운 물질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행복의 척도라고 믿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질 숭상의 가치관은 눈앞에 펼쳐진 현상과 성과만을 추종하게 하고 지금의 현상을 만들어낸 근원을 따지는 일에 무관심하도록 만들며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본질적인 세계를 아예 부정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질적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새 세상에 대한 소망을 지닌 자는, 그 오랜 고난의 세월을 견딘 뒤에 질곡도 환희도 무화(無化)된(나이테가 없는) 세계를 볼 수 있는데도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하느라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시적자아의 안타까움이 그려져 있다고 읽혀진다.
이 시집을 소개하는 한 작가의 글을 첨부하여 이 시집에 대한 이해를 돕기로 한다.
「단호한 턱 선을 가진 사람의 예기치 못한 속울음이 이 시집이다. 다만 순백의 하늘을 바라는 영혼이 땅에서 육체로 살면서 얻은 내상의 기록이 이 시집이다. ‘항상 길 위에만 있’는 낙타가 걸어간 순례의 발자국이 이 시집이다. ‘길 없는 길에 길 되어’ 가기를 자처한 이 순례자는 예레미야처럼 고뇌하고 운다. 성과 속을 오가며 흔들리며, 그 흔들림으로 균형을 맞추며 이 목회자/시인은 사랑을 말하지 않으려 애쓴다. 알겠다. 그의 시어는 사랑을 말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사랑의 언어이다. ‘더러는 의무처럼, 더러는 은혜처럼’ 이 일각의 문장 아래 있는 빙산의 문장들을 상상하는 것이 이 시집을 읽는 기쁨이다.」-소설가 이승우(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여러 인연으로 곁에서 이 시인을 지켜본 작가 이승우는 불의(不義) 앞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단호한 성격을 지닌 이 시인의 성정을 ‘단호한 턱 선을 가진 사람’으로 간결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이 시인은 불의가 판치는 세상과 불화(不和)의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교단(敎團)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단지 포즈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그것도 앞장서서 저항하고 바로잡으려 한다. 이럴 때 이 시인의 목소리는 크다. 그것이 매우 강렬하고 울림이 있는 것은 깊은 내면에서 숙성된 고뇌의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위에서 이승우 작가가 언급했듯이 이 시인은 성직자이지만 자칫 선입견을 가질만한 성경구절의 빈번한 인용도 기독교의 교리를 상기시키는 문구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시가 품고 있는 시의 고갱이를 결국 ‘사랑<博愛>’에 귀결시키고 있다. 그 ‘사랑’이 부족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의 언어가 그의 시가 아닐까.
불의한 세상과의 불화로 마음이 지쳐 공감을 통해 위로 받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성찬 시집
사막은 나이테가 없다
2021.9.15. 열린문학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