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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1 : 너 수박이지?

2024.01.20 12:50

관리자 조회 수:81

5301너 수박이지?

시인詩人 류근(柳根) 류(類)의 시어(詩語 ?)에 대한 유감
쉼보르스카의 <단어를 찾아서> 패러디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오늘. 1987년 1월 14일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 군이 군사 독재 정권에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날이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고, 이는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수박>이지?
노덕술, 이근안 류의 고문 기술자들이 멀쩡한 독립투사와 민주 인사를 <수박>을 조작하려다 물고문으로 죽여 왔고, 죽였다. 그런데 21세기 소위 <민주> 정당에서, 자기 당 인사들을, 유신 독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불고문, 물고문 하듯, 대표 이재명 입장과 다르다고, 빨갱이로 몰아 출당시키고 있다.
너 <수박>이지?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단어를 찾아서> 부분)
‘가장 잔인한 단어’조차 쉼보르스카, 그녀의 조국 아우슈비츠가 위치한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현실에 비하면, 지극히 ‘자비로운 단어’였다는 말이다.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는 쉼보르스카,를 오늘 대한민국 민주 정당 <수박> 매도에 패러디 해보면,
빨갱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살갑고,
<수박>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싱그럽다.
박종철로 대표되는 대공분실이 고문으로 조작해 낸 싱그러운 단어, <수박> 너 속 빨갱이지? 물고문, 불고문에, 민주 청년 박종철이 죽음으로 항거하며, 거부했던 <수박>.겉 다르고 속 다른 수박이라는 단어조차, 저들이 표방한 민주공화국 대공 분실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정체성 보다, 더 싱그러운 단어였다는 말이다.
:
대공 분실의 빨갱이 구분법 3가지.
세 부류의 빨갱이
토마토, 사과 , 수박
토마토 빨갱이는, 표리表裏가 동일同一한, 겉도 속도 빨간 빨갱이다.
사과 빨갱이와 수박 빨갱이는, 표리表裏가 부동不同한, 겉과 속이 다른 빨갱이다.
사과 빨갱이는 빨갱이 연하는 겉만 빨간 빨갱이이고,
수박 빨갱이는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속이 빨간 빨갱이다.
너 <수박>이지?
너 속 빨갱이지?
공화당에게서 <수박> 집단 이라고 의심 받는 민주당 안에서, 자기 당내 비주류 세력을 가리켜 <수박>이라고 부른다. 언어도단 [言語道斷]이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말이다.
복기해 보면, <수박> - 속 빨간 빨갱이임을 자백하라고 유신의 후예 군사 독재 정권은 애꿎는 청년에게 물고문까지 가하며 압박했었고, 난 절대로 수박이 아니다 결백을 주장하다가 의로운 청년이 죽임을 당했다. 바로 이렇게 인간 영혼까지 유린하는 잔인한 용어가 <수박>이다. 아닌데 그렇다고 말하라고 숨통을 짓누르는, “잔인해서 차라리 자비로운 단어”가 <수박>이다.
민주당에서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간 인사들이 제일로 견디기 어려웠던 게, <수박> 고문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내뱉는다.
잔인하고, 집요한 사상 검증, 집단 공개 린치.
민주당의 남영동 대공분실화(化).
내가 이재명과 개딸들의 민주당을 버린 이유가 <수박> 고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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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과연 우리에게 언어와 상관없이 존립하는 현실이 있는가? 카시러(Cassirer)는 “우리는 언어가 형성해 주는 현실만을 갖는다.”라고 말한다.
기대하지도 않는, 재판정으로까지 끌고 간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의 판결 결과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것 없이, 놀랍게도, 이 땅의 자칭 진보적 시인들조차 <수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이 땅의 일부 시인들이 바른 언어의 퇴보 현상을 선도하고 있다. 눈 먼 언어의 식자공들. “X발”이 상투어인 뉴스공장 전주와 일용직들. 그자들에게 환호하는 이재명과 개딸들. 여야 불문 우리 정치판에는 더 이상 바른 국가적 목표를 표현해 줄 수 있는 묵시론적 언어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네 말의 노점(露店)엔, 37년 전 오늘, 순전하고, 의로운 젊은이 박종철의 숨통을 막아버린 <수박>이라는 망령어만 난무하고 있다.
너 <수박>이지?
숨통이 조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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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언어가 퇴조하고 있는 교회 현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교회가 이런 세상을 선도했다, 하고 있다. 욕설(辱說)이 강단의 언어인, 기독교 탈을 쓴 영남 패권주의자에 의해서 욕이 설교 언어로 정당화 되어가고 있다. “미래의 교회는 아마도 점점 게토(ghetto)화된 존재가 되어 자그마한 요새와 친구 하나 없는 집단들로 변할 것이다(George A. Lindbeck).”
그 누구나 그다.
왜냐하면, 비트겐스타인 지적대로,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2024. 01.14(주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37주기 추모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