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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3 : 하임이에게 할퀴었어요

2024.01.20 12:59

관리자 조회 수:79

5303하임이에게 할퀴었어요.

동물원 구경 갔다가 턱 안쪽을 쓸긴 하임이를 데리고 빠방 태워서 피부과를 다녀와 밥 먹여주고, ABC song 같이 불러주고, 장시간 함께 놀다가 지쳐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안아 달라고 해서 누워서 팔을 내주고 ABC song 같이 부르며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귤 한 조각을 가져와 포크로 찍어서 입 벌리던 하임이 입에 넣어 주지 않고, 내 입에 넣어주던 순간, 하임이가 세발 낙지 열 손가락으로, 어서 다시 토해 내라며 내 입술 주위를 마구마구 할퀸 바람에, 왼쪽 입술 위쪽에 찰과상을 입었답니다.
할머니가 하임이 입에 귤 조각을 넣어주지 않았던 건, 아이가 누워 있던 상태라서 목에 걸릴까 봐 할아버지 입에 넣어준 건데, 그 깊은 할머니의 지혜로운 배려를 알 까닭이 없는 영아이기에, 제 입이 아닌 할아버지 입에 넣어준 할머니를 째려보며 손톱 거친 손가락으로 할아버지 입을 마구 후빈 겁니다. 황당했고, 당황했고, 민망했던 등등, 생에 첨으로 뻗친 기묘한 망신살에 경악(?)하여, 자다가도 깨어 우린 억지로 웃었답니다.
먹잇감 앞에서는 애 어른이 없습디다. 하임이 퍼스트만, 읽혀온 금쪽 같은 옥체이기에 아직 경험한 적이 없는 after you 문화와 뜻밖의 할머니의 배반에 더해 배려의 끝판왕 할아버지까지 양보 없는 제 입 챙기기가 아이를 골나게 한 겁니다. 알사탕 같으면 토해내 물로 씻어서라도 녀석 입에 넣어줄 수 있었는데, 입 안에서 으깨진, 이미 녹아 버린 감귤 조각을 위생상 어떻게 꺼내서 순결한 그 입에 넣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우와 어서 토해내, 열 손가락 총동원해서 벌 떼처럼 드세게 꼬집는데 방어할 기력도 없더이다.
손톱 긴 손가락 행진곡도 무차별적이었지만 그 배신감에 절어 째려보는 아이의 매서운 눈매도 감당하기 어려웠답니다. 이내 내 품을 떠나더니 방을 나가면서 기어이 문을 꼭 닫고 나가더군요. 꼭두새벽 맹추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머니에게 문 닫고 나가라고 했다고 할머니가 엄청나게 서운해했었는데, 할부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참 할아버지에게 사과도 안 하고, 외면하더니
할머니가 너 그러면 할아버지가 빠방 안 태워줘 라고 던진 말 듣는 척도 안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빨개 할아버지 빨개 라며 공격수(ㅋ)로서의 자기반성을 혼잣말처럼 내 귀에 들리게 내뱉더니, 이리와 할아버지 끌어안아 줘 라고 했더니 뛰어와 내 품에 안기더군요.
진심일까? 이런 생각도, 누가 이긴 거지? 이런 계산도, 내리사랑에 눈 먼 할아버지나 할머니 보다는 녀석이 더 승한 것 같더이다.
아직은 그런 적이 없었지만 선교원에 가서 친구들 얼굴을 이런 식으로 할퀴어대면 안 된다며 지 엄마한테 할머니가 손톱 깎아줘라 당부하더군요.
애가 뭘 안다고 그래 말들 하지만 말만 못할 뿐이지 젖먹이도 알 건 다 안다고, 다 알고 있다는 영아원 원장의 말에 씁쓸한 동의를 표했답니다. 먹잇감 앞에서의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이젠 무조건 영아 퍼스트랍니다. 신 삼강오륜이랍니다. 이상은 하임이 퍼스트 정글에서 당한 깨소금 같은 봉변이었습니다. 일시는 지난 13 토요일에 있었던 해외토픽이었습니다. 주책을 떨어서 지~송합니다. ㅎ
2024.01.15(월) 양광에 기대어 주접을 떨었습니다. 해량하소서!!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