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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 '나미'감각으로

2008.07.23 16:25

김성찬 조회 수:1568 추천:34

영혼 일기 15 : 그 '나미' 감각으로

2008.07.21


오늘은 죽마고우 김명환 장로를 만났다. 우린 근 3년여를 만나지 못했다. 서로를 사모하면서도,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사람 만난다는 것이 맨손, 맨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서로 탐색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던 젊은 날의 동행이 실로 그립다. 강봉구 목사와 함께였다. 함께 맛난 유황오리 먹고, 그 친구네 교회로 향했다. 정릉골에 있는 원정교회. 7층 거탑이다. 그 교회 지하 1층엔 탁구대 넉 대와 당구대가 하나있다. 볼 공급기(Table Tennis Robot)도 있었다.


한때, 그러니까 거의 30여 년 전에, 300다마를 쳤다(당시 집 한 채 값)는 강봉구 목사와 거의 200을 자랑하는 김장로, 80도 과분한 나, 이렇게 셋이서 오랜만에 4구 당구를 놀았다. 레크리에이션이 아니라, 리-크리에이션을 놀았다. 우리 젊은 날에는 기존 4구인 모아치기(요새다마)에서 시작하여 몇 달 후엔 빨간 공치기(아까도리)로 발전해 나아갔는데, 요즘엔 모아치기 같은 것은 거의 잘 안하는가보다. 한식경(?)에 걸쳐 한게임을 치뤘다. 역시 옛 감각을 되살린 강봉구 목사가 1등을 했다. 히끼, 쫑, 오시, 히네루, 다대 등등 일본식 당구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다가 서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나미' 운운하다가, 그 '나미'에 얽힌 한 사건에 대해 내가 입을 열었다.


이런 사건이다. 


근 십년 전의 사건이다.

그 여름, 난 서해안 고속도로를 쾌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룰루랄라 모처럼 고향 가는 길, 우리 일행은 마냥 신바람에 들떠 있었다. 무려 시속 110km가 제한 속도인, 시멘트로 단장된 서해안 고속도로는 낡은 경부선보다 노면이 깨끗해 나의 질주본능을 자극해댔다.


 그 제한 속도를 넘나들며 스릴 넘치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눈앞에 굼벵이처럼 굴러가는 승용차 한 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바로 그 승용차가 문제였다. 시속 6-70km 정도로 서행하던 그 승용차는 3차선 고속도로에서, 1차선인 추월선, 2차선인 주행선을 오가며 나의 질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추월선으로 치고 나가려고 하면 슬그머니 그 1차선으로 파고들고, 다시 2차선으로 접어들면 일부러 그런 것처럼 다시 핸들을 2차선으로 꺾는 곡예를 앞에서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한동안 돌파와 방어를 반복해 나아가다, 내가 다시 2차선으로 접어들자, 그 승용차는 이내 눈이 뒤에 달린 것처럼 황급히 2차선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러면서 갑자기 속력을 확 줄이더니, 그만 끼익하고 코앞에서 멈춰 서 버렸다.

 난, 그 기이한 운전자에 대해 인내하며 적당히 속력을 줄여가며 방어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돌연한 고속도로에서의 급정차는 날 극한 상황으로 몰아세워버렸다. 외통수. 이대로 그 차를 들이 받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위기에 난 봉착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제 우리 죽는구나. 내 승합차 안에는 대여섯 명의 친척들이 타고 있었고, 아내는 바로 옆 조수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모골이 송연해졌다. 순간, 1차선인 추월선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앙선 분리대인 시멘트 담벼락뿐이었다. 핸들을 좌로 꺾는 순간 그 분리대에 들이 받쳐 비명횡사할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시 황급히 눈길을 오른편으로 돌려 본, 조수석 백미러에 비친 3차선의 상황은, 쏜살같이 질주해오는 흰색 승용차의 위용뿐이었다. 전후좌우 사방이 벽이었다. 정말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죽었다. 우린.


 그런데 갑자기, 이젠, 앞 차를 그대로 들이 받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아찔한 생각을 날래게 비집고, 일순 이런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간간이 출입했던 당구장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곤 내안에서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내가 그때 '나미'라는 당구기술을 정말 잘 구사했었지.' (그 '나미'라는 당구 기술은 앞 다마를 아주 얇게 스친 후, 뒤 다마를 때려내는 기술이다.)


 정말 뜬금없이, 처참한 사고를 눈앞에 둔 바로 그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거의 30여년 가량 잊고 있었던 그 앞 다마를 스치듯 치고나가 뒤 다마를 때려내는 그 '나미' 감각이 일순 확 살아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 '나미'를 벗기는 것처럼, 2차선과 3차선 사이 그 흰색 점선을 중심삼아, 2차선에 정차한 승용차와 지금 3차선을 질주해오는 흰색 승용차 사이를 뚫어 버리자. 내가 이런 극단적인 모험을 결행하리라 결정한 것은, 그 '나미' 감각이 몸에 살아난 후, 불과 0.001초된 안 되는 찰나적 결단이었다. 그것은 불과 3-4초전에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운동감각적 확신이 내게 확 엄습했다. 마치 내 한 몸이 바람처럼 그 두 차량 사이를 휘익 빠져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확신한 것이다. 정말, 나는 내 자신 스스로 놀란 홀연히 임한 그 감각적 확신에 일순 충만했었다.


 하여, 나는 촌음도 지체할 틈 없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확 꺾었다. 그리곤 감각적으로 그 흰색 점선을 타고 올랐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오른쪽으로 꺾인 핸들을 다시 원점으로 휙 돌리곤 이내 액셀(accelerator)을 사력을 다해 확 밟아댔다. 부르릉, 이를 악물고, 눈을 찔끔 감고선, 내 한 몸 빠져 나가듯, 비호처럼 그 '나미'의 확신에 붙들려 액셀을 밟아댔다. 요란한 경적과 핏발 선 굉음 속에, 오른쪽 3차선에서 질주해 오던 흰색 승용차가 끼익 갓길 쪽으로 급 핸들을 꺾었는지 한참이나 오른편으로 확 멀어져 가는 그림이 얼핏 눈에 비쳤다. 그리곤 정확히 그 2,3차선 흰색 점선을 정중앙선 삼아 50여 미터나 앞으로 치고 나가 탁 멈춰선 내 차를 발견했다. 마치 한강 철교 사이를 비행기로 빠져나간 곡예의 주인공 김 신 장군의 기예(技藝)가 연상됐다. 그 3차선에서 질주해오던 흰색 승용차는 다행히 갓길 쪽으로 밀려났다가 정신을 차린 모양인데, 제 주행속도를 이기지 못했는지 뭐라뭐라 고래고함을 지르면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신을 추스른 후, 난, 이 서늘한 사태를 유발시킨 승용차에 항의하러, 그 차 50여 미터 앞, 동일한 2차선에 차를 세우곤, 뒤돌아 그 문제의 승용차를 향해 코를 씩씩 불며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놀라 맥박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그 문제의 승용차에 다가가 한마디 욕설을 내 뱉으려든 차, 운전석의 차창이 스르르 내려지면서 뜻밖에 허연 노신사 부부가 얼굴을 내밀었다. 죄송해 죽겠다는 듯, 두 어르신이 싹싹 손이 발되도록 빌고 비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짐을 느꼈다. 자초지종을 고하는 영감님의 말을 듣고 난 되려 난감해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초행길인데 그만 빠져 나가는 길을 놓치는 바람에 당황하여 우물쭈물하다가 되돌아가려고 그 고속도로 2차선에 차를 정차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안타까운 사정은 정말, 나를 한심스럽고 난감하게 했다. 그 황당한 사태를 겪고 난 후, 어떡하면 좋으냐고 함께 염려해 마지않다가, 그 서해안 300여 킬로미터를 운전해 내려가면서 난 내내, 그 황당함은 잊고, 그 노부부가 그 무서운 현장에서 과연 어떤 후속조치를 감행 했을까 심히도 염려해 했다.     


 난, 지금도 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어떻게 그 위기 순간에 그 수십 년 전의 그 운동감각이 확신되어 불타올랐을까?

 확신이, 그 큰 확신이 나를 구해냈다.

 확신이 생명이다.


 그러나 그 확신은 무에서(ex nihil) 나오지 않는다.

Nothing comes from nothing. (《속담》 무(無)에서는 아무것도[유(有)는] 나오지 않는다.)

 확신은 그 언젠가 내가 지녔던 그 어떤 자부심에서 기인했다.

 훈련되어지고, 연마되어진 자부심.

 그 무의식적인 의식.


 혼이 혼미해가던 생의 종착역에서

 울 엄니는 이렇게 무의식적인 의식을 발하셨지.

 엄마, 천국가면 젤로 보고픈 사람이 누구야?

"예수님."

"………과연 예수에 절은 삶!"


 이는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1:5)


 또 너희가 많은 환란 가운데서(숱한 훈련, 연단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6)


 큰 확신을 얻기 위해, 이 환란의 연단과 훈련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날 그 심판대 앞에서 큰 확신의 언어를 발할 수 있도록,

 한 몸 빠져 나가듯, 그 '나미' 감각으로 바람처럼 그 관문을 통과하길.

 이 시간도 주기도문처럼 절로 읊조리는 구주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