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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1시<시>가 지닌 힘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가장 큰 힘은 ‘치유’가 아닐까요? 내 안에 그득한 고통과 슬픔을 시로 풀어내지 못했다면 저는 진작 무너졌을 거예요. 물론 술도 한몫했지요.*
고개를 비튼다.
선교 구역인 산등성이 달동네에서
뜬눈으로 날밤을 새우던
패잔병 같은 백열등 불빛을 대하던
날마다의 새벽
원근법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으로
가슴앓이를 즐겼다.
어느 한날 새벽 소스라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짓누르는 흉통을 펜을 들어 꾹꾹 누르며 시 한 편을 완성했다
일순 마술 같이 흉통이 가셨다
한동안 시적 치유라고 생각했으나 마술이었다
달동네의 백열등은 여전히 대낮에도,
퀭한 눈 벌겋게 부릅뜨고
형형(熒熒)
또, 하루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만이었다
연탄 한 장 건네줄 힘도 없이 누리는
종이 위의 자기 치유
그득한 고통과 슬픔 완화에
술이, 술독에 빠진 종이 한 장이 한몫했다는
나를 구원했으니, 너도 구원했을 거라는 주사酒邪
이 고백이 진솔한 한 편의 시라면 시다
시 전문지 무려 352쪽
가득한 불가항력적인 자기기만
여긴 호스피스 병동이다
모르핀 투여 제한 없는
2023.12.1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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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시, 치유하고 사람을 살리는 힘>(사이펀 문학 토크 14, <<사이펀>> p. 65).
** 김성찬의 시, <10번 종점>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