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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대도무문(大道無門) : 대도무문(大盜無門)

2009.12.04 22:18

김성찬 조회 수:1548 추천:14

영혼일기 439: 대도무문(大道無門) : 대도무문(大盜無門)
2009.12.04(금)

고래가 그 풀(pool)에서 튀어 올랐다.

식인 상어, 해파리로 들끓는 그 풀장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그 물을 떠나겠단다.
죽으면 죽으리라. 일사각오로 그 물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저녁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역설한 나와 대도무문(大盜無門)의 심사로 염려를 시비한 그 어떤 위인과 그 물을 떠난 고래의 영입문제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는 알지 못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작은 자에게 맘을 여는 것이고,
대도무문(大盜無門)이란 작은 자를 문 밖에서 내치는 것이라는 것을.ㅁ

 

맘을 열면, 맘을 빼앗길 수 없다.
맘을 열지 않으면, 그 맘을 빼앗긴다. 도적질 당한다.
도적질 당하기 전에 먼저 내어 줘라.
그러면 그건 사랑이 된다.
그래 열린 맘이 사랑이다.

그 풀(pool)을 떠나려는 고래는 큰 자이나 작은 자다.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심판의 표준과 근거를 우리가 기억한다면, 큰 자이나 작은 자 되어 우리 풀장 앞을 서성이는 그 고래를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받아 주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공동체다.

기득권 고수. 우리 안에 도사린 가나안 7족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영역을 파고드는 그 고래와 머지않은 장래에 다투게 될 헤게모니 쟁탈전을 극히 염려했다. 그럴 수가 있다. 거물을 영입하려들 경우 거물이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져야 한다. 그 고래는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나 좀 살려 주세요. 그 고래는 물을 떠나 모래 밭으로라도 튀어 나갈 형국에 처해 있단다.

어머니는 늙고, 작아져도 어머니다.
모(母)교회, 모(母) 지방회는 늙고, 작아도 모교회요, 모지방회다.
그러니 본질상 경쟁이란 없다. 고래가 튀어 들어와도 모교회는 영원한 모교회다.

살려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그 상처받은 상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제 터전을 옮기려는 우리 형제를 우린 따뜻하게 영접해야 한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없는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이 찬송 가사는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

이런 의미도 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심령 없는 공동체에서는 그 누구도 살아 남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설령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사는 기적이 일어날지라도, 예수님 맘을 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사람이 살 수 없다 라는 말이다.

우리 서울중앙지방회는 이른 아침부터 그 크나 작은 고래를 위한 인공호흡? 아니 신공호흡에 동원됐었다. 그리고 우린 결의했다.
그 고래를 살리자고. 하여 내일 이른 아침에는 대회동을 하자고 따뜻한 다짐을 서로 나눴다.

나는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다.
맘을 열어 달라고. 맘을 도적질 당하지 말고, 맘을 열어 사랑의 자선 공동체의 일원이 되자고.
다들 대도무문(大道無門) 되자고.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좁은 문은 갈 수록 넓어지는 문이라고.
밖으로 나가려면(큰 일을 하려면, 주체가 되고, 기수가 되고, 어머니가 되려면),
그 누군가에게 틈을 내어 주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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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 오가며 진종일 핸드폰을 이어폰 삼아 질주했다.
아플 수 없을 것 같은 아픈 처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왔다.

죽으려고도 참으셨는 데, 살려고 못 참겠느냐 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떠올리며 그 고통을 참았다고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 반드시 다시 회복될 것이다.
족구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편 103편을 묵상했다.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은택을 기억하여 감사, 송축하면<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실 것이다.

그 믿음의 기도가 응답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