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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그 메마른 산고

2011.03.10 23:40

김성찬 조회 수:1558 추천:40

영혼일기 680: 그 메마른 산고
2011.03.10(목)


엊그제 꼬박 밤을 새운 후유증이 꽤 심각하다. 그 밤을 요한계시록으로 환히 밝힌 나는 원고를 전송해 놓고, 백주대낮에 편집자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었다.

왜나는만날막판밤을새우는걸까나무랄수도없고큐티하다가사람잡겠네오타는얼마나될는지누구잡는거아닌가잠깐깨어중언부언아슬아슬계시록을넘어서며∼휴∼굿나잇

그 후유증에 오늘 하루 종일 시달렸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드러누워 뒤척거리다가 최근에 산 i-phone을 눌렀더니, 정액제로 월 300건을 쓸 수 있는 문자가 무려 270여건이 남아 있었다. 아까운 생각이 들어 몇, 몇 사람들에게 문자를 날렸다.

나지금무너져있음말할힘도없어밧데리가다됐나봐마지막손끝에남은힘으로말을건네오긍휼을베푸시오긍휼을아이허기를어떻게메울까먹은게없으니토해낼것도없네인풋없는아웃풋의형벌이여 레미제라블∼흑,흑∼

선착순! 나는 속으로 외쳤다. 득달같이 전화와 문자들이 답지했다. 당장에 찾아와, 맛난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서남방의 귀인에서부터(난 그 극진한 호의를 적극적으로 사양했다. 매우 고마웠으나, 나는 움직일 힘도 없었다.) 문자로 안부를 묻는 공사다망한 분들에 이르기까지 그 깨소금 같은 우정들은 죽어가던 나를 소생케 했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모두 선착순 1위였다. 그들은 나에게 낚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를 낚았다. 내 감사와 신뢰와 우정을 그들은 낚았다. 내가 양치기 소년처럼 이후에 또 덫을 놓을지라도, 다시 나를 낚아 달라.

그러다가 문득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 이 허기를 어떻게 메울까?
먹은 게 없으니 토해낼 것도 없네.
인풋 없는 아웃풋의 형벌이여 레미제라블 ∼흑, 흑∼

허기?
인풋(input)없는 아웃풋(output)?
입력 없는 출력의 산고?

그랬다. 나는 그 밤 채운 것 없는 상태에서, 밤새 토해내느라, ☓물까지 토해냈구나.
그래서 탈진했구나, 탈진.
레미제라블.

그랬다. 내 탈진은 입력 없는 출력의 메마른 산고였다. 말씀을 해석해 가면서 나는 내 성경 지식이 얼마나 일천한지를 가늠하게 되었다. 막막한 밤이 속절없이 깊어갔고, 한줄 이어갈 수 없는 아득한 절망에,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해법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학 문제지 앞에서 느낀 무명(無明)에 하얗게 질렸던 그 어린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요한계시록, 너무 깊어질까 외면했다가, 너무 몰라 그 밤 나는 질식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날 각성케 한 성찰은 이랬다. 요한계시록은 먼 훗날 일어날 사건을 이야기한 책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 먼 훗날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 알았다. 오늘을 외면한 내일은 없듯, 내일은 오늘이 해설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도 모른 내가 내일의 묵시를 파헤치려 했다니. 그래서 아득했고, 침이 말랐었다. 때 아닌, 체질도 아닌 나의 타계적 서정에로 의도적 굴신이 날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렸다. 이 나이에 무슨 체질개선을 한다고. 세속현실정치에 대한 의도적 외면이 세속현실세계의 속앓이까지 외면하게 만들어 버렸던가 보다. 지옥 같은 오늘에 짐짓 초연한 척 해 대면서, 저자거리 장삼이사의 지옥 같은 현실을 나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지내왔다.

나는 내 의식 속에 똬리를 튼 아리안 족의 우월성. 나는 히틀러의 우월 허기가 유대인을 잡아먹는 광기로 퇴행했던 역사를 오늘에야 겨우 기억해냈다. 그 광기를 발현케 한 극악무도한 독재자의 우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저들의 타자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에 기반 했다는 사실이다. 니들은 죽어도 싸. 그랬다. 이와 같은 자기도취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고상한 도덕적 외관을 띠고 나타나는 것임을 나는 발견했다. 그리고 내 안에 이미 그와 같은 망령된 허위가 둥지를 틀고 있음을 본다. 그랬다. 나는 저들 무명색한 천출들의 남루한 행색과 천박한 언행을 하대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애환을 나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말로는 가난한 자의 벗이며,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 체 했으나, 나는 저들의 곤궁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니들은 교회 안 다녀도 돼. 니들은 내 신자 안 해도 돼! 그랬었다.

그런데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야기는 젊은 문우가 내가 일전에 써놓은, 구제역에 외면당한 강원도로 진입해 들어가다가 느낀 단상을 형상화 한 시(詩) ‘저건’을 읊조리다가, 내게 송경동 시인의 시집,『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권했었다. 그 이력만큼이나 바닥에 닿아 있는, 노동 시인 송경동의 리얼리즘을 조명해 보라는듯했다. 내가 세상현실에 던진, 단 동정표 한 표만 보고, 그는 나를 졸지에 송경동과 동격화 해 줬다.

그랬다. 나는 그들을 천시하는 것만큼, 내가 우월해 지는 거라 생각해 왔다.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세속현실의 병폐를 나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할 생각은 않고, 감기 환자만 멀리한 꼴이다. 그리고 더 어리석은 것은 계시록의 짐승은 나와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땅의 임금들의 불신앙과 불의, 그리고 음행과 사치는 나와 무관한 거라 여겨왔다. 심판은 저들만의 것이고, 재앙은 나만은 피해 갈 거라 여겨왔다. 그런 오판이 신앙이 아니라, 재앙임을 나는 몰랐다. 계시록을 해석만 하려들었지, 나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는 묵시 속에 재앙이 덮칠 때에도 나는 항상 노아의 방주에서 노닥거렸다. 오늘에 대한 무감각이 이내 닥칠 내일의 재난임을 나는 망각했다. 영적 유비무환까지도 충족되는 신앙현실이 온전한 신앙임을 나는 간과했다. 미래를 논하기 전에,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고린도 전후서와 야고보서를 지나 요한계시록이 있음을 알아야 했다. 히틀러의 유아독존적인 이상주의가 패망으로 끝난 역사적 교훈을 읽었어야 했다.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고달픈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는 애정이 종말론적 신앙임을 깨닫는다. 그네들과의 합일이 장차 임할 당신과의 합일이다.

나는 탈진해 몸져누워 있다가, 허기(虛飢)운운하다가 벌떡 일어나 심령의 허기를 메울 작업을 강행했다. 송경동의 시집도 신청하고, 바른 서정의 이해를 위한 책도, 사막 같은 현실세계를 묵묵히 걷고, 걷는 낙타를 형상화한 작품집도 그리고 탈(脫)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역사책도 한 권 주문했다.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소프트웨어적 비방도 묻고, 물어 강구했다. 과학만능의 세상이 전혀 망할 것 같지 않는 빛나는 도구들로 천국인양 날 현혹시켰다. 그랬어도 나는 탈진 속에서 날 구원해 내려는 계시와의 접속을 오늘 간신히 이어갔다. 뒤늦게 'Daily Bread'도 정리해 올려놨다.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여전히 맘 불편한 현실세계를 기웃거린다.
밤 열 한 시 뉘우스도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