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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말씀의 육화(肉化)

2011.05.20 20:07

김성찬 조회 수:1542 추천:32

영혼일기 728: 말씀의 육화(肉化)
2011.05.20(금)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론을 그 시원에서부터 살피고 있다.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보기를 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했는데, 오늘 두 번째 가진 엘림성경공부를 통해 그 선언을 다시 확인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전통도 성경과 불일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교회를 구속자인 그리스도 위에 확립하려고 노력한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에 선 오리지널리티가 오늘 강의에서 넘실댔다.

 

그랬다. 그래서 오늘 같이 군더더기나, 사족 없는 원시적 강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철학적, 사회학적, 비교종교학적 등등 학문적 관심사나 신비주의적 체험에 기초한 자기 신념이나 확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제 멋에 겨워 제 자랑만 일삼거나, 예화로만 엮는 말씀 없는 약 선전 같은 역겨움도 없어 좋았다. 담백하나, 깊은 맛이 났다. 주제별이나 귀납법적인 접근이 미시적 관점에서 나무만 보는 분석적 현란한 칼질에 매료되는 성경연구라면, 성경을 통째로 관통하는 이 구속사 여정은 구연동화처럼 구수하고, 재미있었다.

정각 오후 4시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홀로” 남은 장면에서 수업을 칼같이 끝내는 도회적 절제도 우리에겐 보너스 같은 거였다. 그래서 끝나는 시간에 우리는 함께 아 재미 있어라 선생님의 말씀 어쩌면 아 어쩌면 이렇게도 잘하시나 고맙습니다 ♬ 제창을 했다. 이틀 일정과 모아진 회비를 만나처럼 남김없이 모조리 공개적으로 청산하고 우리는 해산, 수고를 외쳤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서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간데마다 보호하며 양식주시기를 바라네

위태한일 면케하고 품어주시기를 바라네
사망권세 이기도록 지켜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밤에,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일에 앞장 선 후배와 긴 통화를 했다. 나는 그의 무차별적인 용기를 감당할 수 없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그래서 그 누구도 안 믿는다며, 그렇기에 그 누구에 대해서도 섭섭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너무 늙었다. 기독교 교리사를 결정지은 A.D 325년 5월 20일 콘스탄티노플에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소아시아의 작은 도시 니케아 제 1차 공의회(Councils of Nicaea)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를 비판할 때 아리우스는 75살의 늙은이였다. 황제의 후원을 받고 있던 노회한 늙은이였다. 아타나시우시, 그는 겨우 30살이었다. 그리스도가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아리우스의 이론을 비난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인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는 죄와 죄의 저주인 사망을 용서받을 수 있으며, 새 생명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경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성경을 그리스도와 그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派)에 맞서, 5번이나 교구장직을 박탈당하고, 17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절불굴의 견인력과 비타협적인 명확성으로 황제정권과 결탁한 아리우스파에 맞섰다. 권력에 대항해 오랜 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믿음의 수호에 앞장 선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래 복음은 순수한 자에게 순전하게 임하시고, 온전하게 역사하시는 거다. 세상 맛, 권력 맛-돈 맛 본 늙은이들에게 무슨 성령의 감동이 일겠는가? 오욕덩어리. 엘리 제사장은 그래서 의자에서 고꾸라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나, 어린 사무엘은 그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가?

오호, 통재라 늙기도 서러운데, 복음 수호에 대한 열정과 기백조차 쇠했다니, 벌써.
내 눈에 일순 그 어떤 탐욕이 어른거렸었지.
다시 전화를 들어 나도 함께 그 종결자가 되어 주겠노라 했다.
나직이.

낮, 점심시간에 중앙성결교회 담임 목사실에서 장시춘 목사님을 모시고 담임 한기채 목사와 맛난 커피를 마시며, 나는 장시춘 목사님을 ‘말씀이 육화된 분’이라고 소개했다.
Embodiment!
한기채 목사는 그렇게 받았다. 말씀이 체화된 이. 성육신을 뜻하는 Incarnation은 감히 예수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고유명사라 우리는 여기고 있기에, Embodiment였다.

말씀의 육화(肉化)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권능과 영광을 몸소 비워내심으로써, 인간과 동일한 몸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죄 된 나를 위한 거룩하심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자기 비움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 피둥피둥하다. 꽉 찬 오물덩어리다. 성경이 깨끗하면 심령이 더럽고, 성경이 더러우면 심령이 깨끗하다고 장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많이 듣던 말씀이다. 말씀으로 채워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비워내야 한다. 삶으로 말씀을 구현해 내야한다. HERE & NOW, 바로 오늘 여기에서. 그런 말이다. 결국 오늘의 구속사 이야기는 지식 축적이나 흥미진진한 주말드라마가 아니다. 그 원로가 우리의 심령에 간간이 꽂는 촌철살인의 비수에 말씀의 육화의 실제지침이 내재되어 있다. 그 비수가 말씀의 체화를 돕는 그의 비기(秘器)다. 오금이 반짝거렸다.

말씀의 육화(肉化)로, 타락한 인간은 상실하였던 은총을 회복 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인간의 본성적 상태인 죽응으로부터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원의 상태를 아타나시우스는 ‘신화’라고 말한다. 말씀의 ‘육화’로 우리를 ‘신화’로 우리를 이끄신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권세를 찬양한다. Inner my heart!

PS

고맙다. 구재천. 그대는 사력을 다했다. 천안구장에서만 아니라, 오늘 엘림성경마당 에서도. 건강해라. 그럴러면, 신약신학만 먹지 말고, 신약을 먹어라. 회비는 2만원 공제해 준다.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순교의 피로 타오를 6월 23(목)-24(금)에 다시 만나자. 구재천 외 에브리바디! 멀리서 오면 기름 값도 보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