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 암연(暗然) - 흐리고 어두움.
2011.10.24 22:09
영혼일기 834: 암연(暗然) - 흐리고 어두움.
2011.10.24(월)
벌써 난 돌아 와, 세수하고 발 닦고, 허기도 메우고, 나가수에서 만난 맑고 시원한 록커 김경호가 공들여 가다듬은 절제된 창법으로 숨넘어가며 부른, ♫암연(고한우)♫을 반복해서 들으며, 난 안식을 취하는데, 넌 지금도 그 먼 길을 돌아가느라, 힘에 겹겠지. 아득한 귀가를 서두르는 그네들을 생각하며, 홈피를 열어 뭔가를 퍼 올리다가, 그만 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적어도 해질녘엔 떠나야 원점으로 회귀하는 차편을 놓치게 않게 된다던데, 만일 그 시간을 넘기면, 한대(寒帶) 정거장 플랫폼에서 졸며 고된 몇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던데. 문득 네가 내 앞에서 흘린 졸인 맘이 내게로 전이되어 날 시리게 한다. 그래도 오늘은 좀 일찍 찢어져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뭔 사명이 그렇게 대단하기에, 그 나이에 그 먼 길을 오가며, 그 모진 사명을 죽어도 감내하려드는 걸까? 그래 이젠 그 생의 가을도 깊어 막차라도 타야, 그 사명의 끝이라도 부여잡을 터. 뒤늦게라도 반드시 감당해야 할 그 사명처럼, 이 온 밤을 지새우며 돌아가야 하는 너의 먼 기적소리가 내 심사를 애잔하게 적신다. 내 가슴을 스치는 바람이 차다.
청승을 떨고 있다.
그렇다. 문득 내가 청승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 설움에 우는 소쩍새처럼,
난 너인 나를,
울고 있다.
암연(暗然)이란 뜻이, 흐리고 어두움이란다.
그래 오늘은 가을비도 설핏 스쳤지.
이젠 흐리고 어두움 밖에 뭐가 더 올 수 있을까?
환경에 절망하고,
사람에 절망하고,
한생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샛노랗게 멍든, 밤 새워 고단한 몸을 이끌고,
흐리고 어둔 생의 질곡으로,
마지못해 되돌아가는,
제 아무리 용을 써대며, 작심하고 튕겨져 나가려드는 무한 원심력에,
자신을 흔쾌히 투신해도
결국
마지막엔
제자리만 파고 돌다 스러져 가는 모진 팽이의 구심력처럼
제대로 마실 한 번 돌지 못해 본 생(生)이
가을을 타고 도는데
이젠
그랬어, 오늘
롯데월드에서 물경 만원씩이나 한다는 형광 팽이를 단돈 삼천 원에 판다고, 쌩쌩 지하철 열차 바닥에 내돌리던, 장돌뱅이의 그 현란한 팽이를 나는 나를 위해 사고 싶었어. 근데 못 샀지. 들킬 리가 없는데, 남들의 눈이 무서워 못 샀어. 대봉만한 큼직한 형광 팽이를 정말 사고 싶었는데. 대봉만한, 거함같이 둔중하나 쌕쌕 돌고 돌던, 제 자리에서도 씩씩한 구심력의 정염을 한껏 토해내던 그 때깔 나던 팽이를.
그랬어, 오늘
☀
나도 뒤돌아서서 눈물만 흘리다
이젠 갔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
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
☀
먼 길을 왔다가
쉼 한 번 없이
다시 먼 길을 되돌아가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을
난
안식에 겨워 흐느끼는 데
넌
흐느낄 안식도 없이
그저 돌아가기에도 바쁜
훠이, 훠이
이삭줍기도 어려운 늦가을 밤길을
왜 그리도 재촉 하는가?
내 맘에 그대는 아직도 그 자린데.
달아날수록, 조여드는
그 자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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