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 망중투한(忙中偸閑)
2011.04.12 22:41
영혼일기 701: 망중투한(忙中偸閑)
2011.0412(화)
여기 올린 사진들은 자작극을 벌린,
산협(山峽) 하이디 하우스 촌장네 저물녘의 망중투한(忙中偸閑).
나는 망중한(忙中閑)이라는 말보다, 망중투한(忙中偸閑)이라는 용어를 더 즐긴다.
둘 다 비슷한 의미이나,
망중투한(忙中偸閑)이라는 단어의 음절들
忙 바쁠 망/中 가운데 중/偸 훔칠 투/閑 한가할 한, 네 음절 가운데 그 중,
‘偸 훔칠 투’ 라는 음절이 맘에 들어서다.
偸 훔칠 투.
훔치다. 떨림과 긴장감이 감도는 스릴과 서스펜스(thrills and suspense).
훔친 에덴의 사과가 달콤하듯, 물건은 훔쳐야 제 맛이 난다.
偸 훔칠 투-閑 한가할 한.
그런데 한가함을 훔친단다. 한가한 겨를을 훔치다.
감성을 자극하는 멋진 말이다.
나는 오는 봄을 맞이하러 동구(洞口) 밖으로 나갔다.
망중투한(忙中偸閑)
바쁜 가운데서도 한가한 겨를을 얻어 즐겼다.
그동안 나는 너무 무리를 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수행했지만,
심신의 피로가 엄습해 오늘은 운신하기가 싶지 않았다.
그랬어도 오전 내내 짬을 못 내다가, 오늘 오후 늦은 시간에 투한(偸閑) 했다.
나를 훔치고, 그 누군가를 훔쳤다.
나는 혼자서 잘 못 노는 사람이다. 그 누군가를 훔쳐내어 동행한다. 다소 병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훔쳤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느냐이듯,
무엇을 먹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먹느냐이다.
밥 맛나고, 말 맛나는 이들과 산수유 향기가 샛노란 산협(山峽)을 파고들었다.
촌장님에게 드리는 헌시도 낭독하고, 앞서 간 님을 그리는 여인의 애틋함도 낭송했다.
여전히 그리운 장작불을 보듬어 안고, 우린 미친 흥을 나눴다.
오는 가 싶으면,
이내 가버리는 봄을,
훔쳐서,
심실(心室)에 우겨 넣었다.
봄꽃을 향한 내 미친 흥은 단풍나무의 소갈증이다.
샘솟는 자연미가 아니라, 파내려가도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 노역이다.
그랬어도, 그 노역의 시간을 훔칠 수 있는 행운을 얻음이 행복이다.
함께 소갈증을 앓으며,
저물녘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는,
가쁜 숨이 정겹다.
외려 정겹다.
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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