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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종(種)은 종(種)을 낳고

2011.08.02 23:44

김성찬 조회 수:1633 추천:19

영혼일기 763: 종(種)은 종(種)을 낳고

2011.08.02(화)

이아침 온누리교회 담임 하용조 목사님(65세)께서 소천하셨다. 나는 그분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한다. 그분에 목회 족적에 대해 쏟아 낸 신문기사로 그분을 영적 면모를 뒤늦게 대한다. '문화선교' 큰 발자취 남긴, 사도행전적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성경과 본질로 돌아가야"한다고 설파한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전파자 등등으로 그분을 소개하고 있다.

1980년 간경화 발병 이후 오늘까지 그분은 일곱 차례 간암수술을 받았고, 당뇨 등의 질병을 앓았으며, 합병증으로 신장이 약해서 5년 전부터는 주3회씩 신장투석을 해 올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지난한 투병생활 중, 지난 1일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도 그분은 주일 예배 설교를 인도하는 등 마지막까지 선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하 목사는 지난 5월 17일 트위터에 올린 마지막 메시지에서 "바쁘다는 것과 피곤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좋아하는 것을 할 땐 신이 나지요. 그러나 의무적으로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바쁘지 않더라도 피곤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쁘지만 즐겁고 재미있고 흥분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사십시요"라고 당부했다. 종합병동이었던, 그분은 보기 드물게 Wonderful, joyful life!를 살았던 분이다.

종(種)은 종(種)을 낳고

그분에 대한 신문기사 중 나는 이 내용을 주목한다.
“고 옥한흠 목사,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목사, 이동원(지구촌교회) 원로목사 등과 함께 교계에서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운 하 목사는 1965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입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 목사는 1965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입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신앙적, 목회적 멘토는 C.C.C 총재였던 고(故) 김준곤 목사님이시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신선한 구호로 한국 대학생들의 가슴에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키신 C.C.C의 고(故) 김준곤 목사님의 선교적 영향력은 한국교회 근현대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교계 ‘복음주의 4인방’의 직·간접적인 영적 멘토가 고(故) 김준곤 목사님이셨다. "사과 한 알의 씨앗을 셀 수 있어도 씨앗의 씨앗은 셀 수가 없다."며 선교의 영적 폭발력을 늘 강조하셨던 고(故)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늘 종(種)은 종(種)을 낳고, 류(類)는 류(類)를 낳는다며 선교적 마인드의 영적 계승을 강조하셨다. 그분의 중국 선교사 10만 명 양병의 비전선포는 70년 초 간간이 C.C.C.에서 신앙훈련을 받았던 내 귀에도 쟁쟁하다. 그런데 그의 영적 제자들이 오늘 한국교회와 지구촌 곳곳에 뿌린 사과 씨앗은 고(故) 김준곤 목사님의 영적 전사 10만 명 양병설을 거의 충족시키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사도행전적 '바로 그 교회'의 꿈을 가지고 시작됐고, 지난 20년 동안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꿈꾸며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온누리교회 홈페이지 中) 2일 소천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온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교회 이름처럼 해외 선교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목회자였다. 1994년 '2010년까지 2천 명의 선교사와 1만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세운다'는 '2천/1만' 비전을 선포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재생산해 온누리에 복음을 전한다'는 Acts29 비전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 1천220명에 이르는 선교사를 파송했다. 생전에 성경 구절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구절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라는 예수의 마지막 당부가 담긴 마태복음 28장 18-20절이었다.(연합뉴스
yunzhen@yna.co.kr)

내 신앙의 원초적 뿌리

고(故) 하용조 목사의 신앙적, 목회적 멘토는 C.C.C 총재였던 고(故) 김준곤 목사님이시다. 그분들의 웅대한 선교적 비전은 섬마을 순교자 고(故) 문준경 전도사님에게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고(故)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내 원초적 신앙의 뿌리’가 섬마을 순교자 고(故) 문준경 전도사님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섬마을 순교자 고(故) 문준경 전도사님께서는 나룻배를 타고 다니며 일 년에 아홉 켤레의 신발이 떨어지도록 섬사람들을 돌보며 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다. 그녀의 죄명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다.

“이 작은 글을 통해 나의 추모와 사랑과 존경을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전에 드립니다. 또한 문 전도사님이 제게 심으신 믿음의 씨앗을 퍼뜨려 10만 명 대학생을 중국 땅에 보내고 싶습니다. -김준곤-(『순교자 문준경』이현갑 저|청파 1990-08-01)”

한 여인의 생명과 바꾼 전도의 열정이 한국 청년들을 말씀으로 사로잡아 땅 끝까지 나아가게 한 김준곤 → 홍정길, 옥한흠, 하용조 → 선교2세기 사역자들 → ∞로 구속사적 계보가 이어졌음을 우리는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순교자 문준경→ 어머니 고(故)전납실 전도사님 → 나 → ∞. 그렇다. 고(故) 김준곤 목사님의 통찰처럼 “씨앗의 씨앗은 셀 수 없다.” 노방전도에서 문화선교에 까지 이른 그 구속사적 계보의 선교적 횡보는 주님이 오실 그때까지 이어질 것을 확신한다.

나와 우리의 믿음의 멘토들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는 비전을 꿈꾸었고, 맛보았다. 그리고 그분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고(故) 하용조 목사님께서도 그의 양떼들과 그의 제자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to God and to the word of His Grace (ACTS 20;32)”에 의탁하고 흔연히 떠나셨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사랑하는 친구 하용조 목사가 마지막 영원으로 떠나는 순간을 곁에서 지킬 수 있어 감사했다"며 "그는 정녕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1-12).”

이제 이지러짐 없는 하늘 평강을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