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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6더조이유니언 이야기 335 엄정순

여전했다. 천년 전,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신학교 교정을 오가던 풋풋했던 그녀는 오늘도 그 결곡한 기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허나, 외양은 호수면은 고요했으나 그 심사는 파란이었음이, 질곡 많은 삶이었음이 한눈에 들었다.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었다.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을 써내고 있었다. 아무나 살 수 없는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허접하여 술 생각 꼬리 물 땐/인정이 고파서랍니다/목이 터져라 괴성 질러댈 땐/숨 막혀 죽을 것 같아서랍니다/그냥 안아 주세요 꼬옥//성난 사자처럼 짜증이 치밀 땐/아무도 내편 엾음이 두려워서랍니다/포악한 욕설로 게거품 북적일 땐/쌓인 한을 토해내는 발작이랍니다/그냥 안아 주세요 꼬옥//허깨비 좇아 미친 듯 달아 날 땐/초라한 자신이 미워서랍니다/방탕한 몸 휘청이며 돌아올 땐/그대 품이 그리워서랍니다/그냥 안아 주세요 꼬옥//그냥 안아 주세요 꼬옥(<그냥 안아 주세요 꼬옥> 전문)
그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다. 교정矯正 선교. 신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재소자 접촉이 그녀를 교정할 수 없는 모진 인생사를 쓰게 만들어 버렸다. 갇힌 자를 돕다가 갇힌 자에게 갇힌 세월을 살아야 했고, 오늘 방범창 장착한 병상에 갇힌 자들을 돕느라 다시 갇힌 삶을 그녀는 살고 있었다. 인생사가 완벽한 수미상관식 구성이다.
푸른 숲에 가냘픈 파동이 인다 악몽과 혼돈에 시달린 나무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민다 말라비틀어진 몸통으로 요양원 밖 세상을 엿본다(김연종 <숲속의 세계> 부분)
몇 해 전, 페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주고받던 안부가 오늘 대면으로 이어졌다. 동두천 주사랑 요양원 원장 엄정순 목사. 담담하게 살아온 삶의 이력을 털어놓는 그녀의 신앙고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의 고백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녀는 만나러 길 나서기 전, 경춘선숲길을 걸으며, 에베소서 맨 마지막 절을 떠올렸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리하셨기에 그녀는 변함없이 이웃된 작은 예수들을 그냥, 꼬옥 안아주고 있었다. 인정이 고프고, 숨 막혀 죽을 것 같고, 내 편 하나 없는 외톨이라 세상이 두렵고, 쌓인 한이 넘친 허랑방탕했던 재소자 남편을 그냥, 꼬옥 안아 주었듯이 오늘 그녀는 외론 세상을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변함없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너를.
그녀는 주께로부터 생각 밖 큰 보상/복을 받았다고 했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외줄 타듯 위태로워 보인 그녀에게 받은 극진한 환대가 맘 짠했다. 아직도 가야 할 1마일이 기도 제목이었다.
우리 더조이유니언 임원들과 같이 다녀왔다. 다녀왔는데, 큰 후원금이 입금됐다. 추석 명절에 교회에서 떡값조차 못 받을 목회자 가정에 보내 줄 떡값을 채워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주께서 동두천 주사랑 요양원 원장 엄정순 목사님의 손길을 통해 일부를 채워주셨다. 감사하다. 나눠 본 사람이 나누는 법이다. 주께 받은 위로로만 너를 위로할 수 있는 법이다. 법!! 동두천 주사랑 요양원이 주 안에서 나날이 번성하길 기도한다. 우리의 답례는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5).”
아멘 아멘,
그 은혜가 엄정순 목사의 사역 위에 차고 넘칠 줄 믿으며, 함께 기도한다.
2023.08.31(목)
그녀의 며느리(라오스 댁)가 주방장인 마라타나 쌀국수가 참 맛있었다. 동두천에 가면 꼭 맛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