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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2 : 시 자술서를 쓰는 밤

2023.09.10 10:52

관리자 조회 수:160

5142시 자술서를 쓰는 밤 

 

시방 오전 2시 39분이다. 지난 세월과 인연을 홑이불처럼 뒤척이다 불을 밝혀, 손에 잡힌 <<생명과문학>>을 마구잡이로 펼쳐, 시인 김림의 기획 내 시에 담긴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다.

“입 안에서 미끄러지던 홍어의 연골은 잘 씹히지 않고 슬픔처럼 질겼으며 짙은 폐허가 담긴 맛이었다. 바다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납작 엎드린 슬픔, 바닥을 기어본 존재만이 가지는 저항의 맛.”에 밑줄을 긋는다.
열여섯 살 겨울 성탄절 전야/•••/엄마의 부고를 전하러 간, 외삼촌 집에서 받은 밥상에 올랐던 <홍어무침>에 대한 설운 인상을 시인은 바닥을 기어본 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언어로 빚어내고 있다.
마흔넷 누이의 죽음 앞에/슬픔으로 밥상이 차려졌다/그래도/산 자는 밥을 먹는다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계절이다. 자다가 깬다는 건 애초에 잠들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예 깨어 있었기에 다시 잠든다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다. 마냥 뜬눈이었기에. 일생이. 시인도 잠들 수 없는 밤에 <홍어무침>을 곱씹었을 거다. 시인은 불면이라는 무한 형벌을 누리는 존재다. 밤새워 자전적 에세이를 자진 진술해야 하는 형벌을 마냥 즐기는 존재다.
자술서를 쓰는 밤. 오지 않는 밤의 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씨름하며 벌써 지친 하루를 가불하고 있다. 손수 차린 제삿밥을 먹으며. 현세의 부활도 꿈꾸며.
2023.09.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