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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분노를 넘어 슬픔이, 라는 수사를 듣습니다.
님의 글을 어젯밤 늦게 읽었으나, 댓글을 달 수가 없었습니다.
그 슬픔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만 드는 그 왜곡된 엄격주의 때문에.

"증오는 '화해'의 부정적 측면이다. 유대교에서 화해는, 최상의 개념으로서 화해의 의미는 전적으로 기다림Erwartung 이다" 라고 아도르노는 말했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는 그 끝을 볼 수 있을까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다 변절한 이들의 조바심이 삭신에 스며들어 옵니다.

짦은 만남, 내뱉은 허튼 소리
돌아서며 후회했습니다.
담엔 말씀 앞에서 만납시다.

이 추악한 현실태에 차라리 소리된 '돌'이고 싶은 그대에게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