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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자기절제의 뼈저린 사례를 공개하시니, 변화의 가능태로서의 제자도가 얼추 피부에 와 닿습니다.

오늘 권사연합성회에서 장로님들과 FTA에 대하여 횡설수설 했습니다. FTA가 실행되면, 의료진료비와 처방, 처치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아질 거라며, 이제 늙어 약발에 의지해야할 우리 노인네 신세가 처량해질거라며 염려와 푸념들을 늘어 놓았습니다.
제가 비방을 일러 주었습니다.
"아프면 안 된다, 아프지마, 아빠 병원비 없어!"
정목사님께서 자녀들에게 엄명하신 당부를.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부자아닌가요?

교단이 썩었다고 탄식하던 청량리교회 남장로님께서, 어디 비방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두들 한마디로, 없다, 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지리시간에 배운 판구조론을 떠올려 봅니다.
이번 쓰촨성의 참사도 판이 흔들려 일어난 사고랍니다.

새 판을 짜는 수 밖에 없습니다.

총회가 새 판을 짤 수 없다면, 지방회 단위로라도 새 판을 짜야 합니다.
정목사님께서 제시하신 제자도의 그림자라도 밟아 보려면,
단언컨데, 현 지방회로는 불가능합니다.

그 제자도를 모토로 판을 짠 새공동체가 탄생될 수 있다면, 행여 그 흉내라도 내 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적 자기 변혁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귀한 답글 감사히 받습니다.

허파꽈리에 물이 찼는지 이내 숨이 가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