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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나라 안에서 교회를 향하여 많은 소리가 외쳐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내는 소리들이 그렇게 달갑지만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들을 만한 소리도 있지만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그런 소리가 나올 만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요 몇 년 사이에 기독교는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지고 읽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서 누구 탓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듣고, 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자 많은 무리들이 들었지만 참되게 들은 자들은 많지 않았다. 자신의 상식으로 듣고 자신의 생각으로 듣고 자신의 마음으로 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살리는 말씀으로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계속 외쳤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그 결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자기들의 주장과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극단의 방법이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리를 외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교회 밖에서도 그렇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고 외치는 것일까?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복음인가? 살리는 것인가? 사람들은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가지고 자기의 주장을 외치고 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도 그렇고, 가진 것이 없이 살아도 그렇다. 잘못된 것을 들추어낸다거나 그것을 거듭 말한다 해도, 아무리 외쳐도 들을 귀가 없다면 또 초점이 빗나간 소리가 되고 만다.(듣는 자에게는) 복음의 본질을 찾지 못한 나머지 자기 소리를 말하므로 생명 없는 외침만 가득하다. 그렇게 자기 소리를 내어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치는 것은 소리일 뿐이다. 진리는 외부의 영향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진리는 그 자체가 진리요 진실이며 바름이다. 진리는 설명이 필요 없고, 진리는 동정도, 야유도 필요 없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는 것은 진리이다. 호화생활이든 극빈생활이든 내가 정죄할 것이 아니고 세금을 내는 일이나 안내는 일도 각자의 양심에 맞기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그래서 과거에 목사로서 10년이나 세금을 내어본 경험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 있었을 만큼 정기적인 수입이 있었다. 물론 교회에서 사례비로 주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예수님도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눅20:25)고 하셨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의 삶이란 것(빌3:20)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사는 자가 아니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다.(고후5:7)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7-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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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그 말씀 끝에 굳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을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못하는 이들이 가이사의 것 가지고 시비하는 모습이 가소로워서 그렇게 덧붙이시지 않았을까, 라고.
그래서, 이 본문에 방점은 가이사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라 라는 후자에 그 액센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 것입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청지기들일진데,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안 바친다고 시비하는 인간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우리 믿는 자들이 먼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